감독 : 오키우라 히로유키
더빙 : 미야마 카렌(이선), 니시다 토시유키(김준현), 야마데라 코이치(양상국), 초(안윤상)
개봉 : 2012년 7월 5일
관람 : 2012년 7월 8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웅이 친구가 놀러 오기로 한 날
초등학교 시절 저는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습니다. 특히 방학 때가 되면 강욱이라는 친구네 집에서 살다시피했습니다. 당시 저희 부모님은 양복점을 운영하셨기에 항상 바쁘셨습니다. 하지만 강욱이네 집에 가면 항상 어머니가 집에 계셔서 맛난 간식도 챙겨 주셨고, 장난감도 많았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저는 아침밥만 챙겨 먹고 곧장 강욱이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동네에 흔치 않던 아파트에 살았던 강욱.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안에서 강욱 어머니의 호통 소리가 들렸습니다. '쟤는 왜 매일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오는거니?' 결국 그날 이후로 저는 강욱이네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죠.
토요일... 웅이와 오랜만에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을 보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웅이가 토요일에 친구가 놀러 오겠다고 했다며 영화는 일요일에 보자고 하더군요. 조금 섭섭했지만 웅이에겐 아빠와 영화를 보는 것보다 친구와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저 역시 알고 있기에 '그럼 영화는 일요일에 보지 뭐.'라고 웃어 넘겼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바쁩니다. 학원에도 가야하고, 주말마다 부모님들과 함께 현장 학습을 다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웅이가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일도, 친구가 놀러 오는 일도 그리 흔치 않습니다.
친구가 놀러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웅이. 하지만 그 친구는 결국 놀러 오지 않았습니다. 웅이는 친구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왜 안오냐고 물어봐 달라고 했지만 저희는 압니다. 그 친구도 놀러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겠지만 학원을 가야하거나, 부모님과의 스케쥴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실망한 웅이에게 제 어렸을 적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방학 때면 아침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이야기, 그러다가 문 밖에서 친구 어머니의 호통 소리를 듣고 상처 입었던 이야기. 제 이야기를 듣던 웅이는 '아빠는 왜 그렇게 매일 친구네 집에 놀러 갔었어?'라고 묻습니다. '당시 아빠 한테는 혼자 놀 수 있는 게임기도 없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바쁘셔서 아빠와 놀아주지도 않았거든.' 제 씁쓸한 대답에 웅이는 그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만 짓습니다.
결국 웅이의 친구는 일요일에 놀러왔고,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던 저희 가족은 예정되었던 외식도 포기하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부랴 부랴 집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 녀석으로 인하여 저희 가족의 주말 계획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웅이가 친구와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더군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도시에서 자란 모모(이선)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하여 어머니와 작은 섬에 이사를 오면서 시작합니다.
배에서 앞으로 자신이 살아야할 작은 섬 시오지마를 바라보는 모모의 표정은 심드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에겐 더욱더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저 역시 아버지가 양복점을 접으시면서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처음엔 낯선 서울 생활이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산으로 산딸기를 따러 가고, 강으로 물고기를 잡으로 다녔었는데, 서울로 이사를 오고나니 주말에 갈 곳이 없었고, 친구들과도 쉽게 사귈 수도 없었거든요.
모모도 그랬을 것입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모모에게 시오지마는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사귀려면 바닷물로 다이빙을 해야하는데, 도시 생활에 익숙한 모모가 다이빙을 할 수 있을리가 없죠. 결국 모모는 친구들과 사귀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도망칩니다.
그런 모모 앞에 영화의 제목처럼 수상한 세 요괴가 나타납니다. 이와(김준현), 카와(양상국), 그리고 마메(안윤상)라는 이름을 가진 이 요괴들은 오히려 모모가 시오지마 생활에 익숙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한 과정은 꽤 흥미롭습니다. 사실 모모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모모의 어머니가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남편이 없는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쁩니다. 모모를 챙겨줄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는 셈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세 요괴는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마을의 과일, 야채를 훔쳐 먹고, 여자 아이들의 물건을 훔치는 취미를 가진 이 요괴 때문에 모모는 골머리를 썩히지만 그렇게 서로 치고 받고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모모는 점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기가 없어 다이빙을 하지 못하는 모모를 이와가 밀어버려서 결과적으로 다이빙을 성공하게 만드는 장면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와가 모모에게 다이빙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와 덕분에 모모는 다이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동네 아이들과도 어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낯선 환경에서 모모를 그렇게 방치해둔 모모의 어머니를 욕할 수 있을까요? 그 부분에서도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흥미로운 전개를 보입니다.
대개 요괴와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는 아직은 순수한 어린 아이들의 눈에만 보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모의 어머니는 모모가 이 집에 이상한 것들이 있다고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무관심한 표정으로 '그런 것은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무관심이 결국 모모를 화나게 하고, 불화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모모의 어머니에게도 그러하 모모의 말을 믿을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아버지를 잃은 어린 모모보다 남편을 잃은 모모의 어머니가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슬픔을 겉으로 표현해서도 안되고,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감정을 숨겨야 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모모의 어머니는 벅차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모모의 어머니가 폐병이 도져 쓰러지는 장면은 어른 관객인 제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남편과의 추억이 담겨진 사진첩을 보며 남몰래 혼자 울음을 삼켜야 했던 그녀는 요괴가 있다는 모모의 이야기가 모모의 반항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어린 관객들은 모모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그녀의 어머니가 야속했겠지만, 어른 관객인 제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를 악물고 힘들어도 안힘든척, 슬퍼도 밝게 미소를 지어야 했던 그녀. 어쩌면 그녀가 쓰러진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모모는 뜁니다. 폭풍우 속에서 의사를 데려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그녀는 뜁니다. 어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모모는 아빠도 그렇게 원망 속에서 보냈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엄마마저 그렇게 보낼 수가 없다고...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이렇게 어린 관객들과 어른 관객들을 공감시키며 힘차게 내달립니다. 모모가 폭풍우를 헤치고 무사히 의사를 데려오도록 응원하는 것은 어린 관객, 어른 관객 할 것 같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세대를 넘어선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 것이죠.
하늘 나라로 편지를 보낼 수만 있다면...
영화가 끝나고 언제나 그랬듯이 웅이에게 물었습니다. '넌 어느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어.' 제 물음에 웅이는 예상했던 대답을 했습니다. 카와가 방귀로 멧돼지를 쫓았던 장면을 지목한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쓴 웅이의 일기장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습니다. 요괴들이 하늘 나라로 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가장 신기했다고... 나도 하늘 나라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재작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웅이도 그리웠나봅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웅이와 놀아주셨고, 웅이가 장가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으시다고 말하셨던 나의 아버지. 너무 어려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웅이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나의 말에 그제서야 울음을 터트렸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미처 사과하지 못했던 모모처럼, 웅이 역시 할아버지에게 못다한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순간 가슴이 찡해진 제게 웅이는 말합니다. '하늘 나라로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이상한 춤을 출 자신이 없거든요.'
이상한 춤이란 이와와 모네가 하늘로 보고서를 올리며 췄던 우스꽝스러운 춤을 말하는 것입니다. 웅이는 하늘 나라의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기는 하지만 그들이 췄던 춤을 출 자신은 없었던 것이죠.
어느덧 10살이 된 웅이. 이제 키도 훌쩍 컸고, 가끔은 어른스러운 말도 하는 웅이. 하지만 이럴땐 영락없는 어린 아이입니다. 웅이의 순진한 대답에 웃음을 지으며 웅이와의 2012년 여덟번째 영화 데이트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P.S. 저는 한국말 더빙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모와 다락방의 요괴들]의 경우는 집 근처 극장에서 더빙판만 상영해서 어쩔 수 없이 더빙판을 봤습니다. 그런데 김준현, 양상국의 더빙은 꽤 수준급이고, 영화와도 잘 어울리더군요.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고뢔~'를 연발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웃고 즐기면서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런 면에서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우리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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