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아부의 왕] - 코미디는 이렇게 만들면 안되는거다.

쭈니-1 2012. 6. 27. 11:48

 

 

감독 : 정승구

주연 : 송새벽, 성동일, 김성령, 이병준, 고창석, 한채아

개봉 : 2012년 6월 21일

관람 : 2012년 6월 26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는 아부를 할줄 모르는 남자이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더운 6월. 하필 짜증나는 외근까지 일정에 잡혀 있었습니다. 반포동까지 땀을 삐질거리며 차를 몰아 짜증나는 외근을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 순간 제 머리 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로 복귀해야할까? 아님 그냥 집으로 직행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야 할까?

만약 직장 상사한테 잘 보이려면 당연히 회사로 복귀했어야 했습니다. 비록 회사에 들어가면 퇴근시간 직전의 시간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직장 상사에게 오늘 외근의 결과를 설명하며 제 성실함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 선택은 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회사에 복귀해봤자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근 결과에 대한 보고는 다음날 아침에 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참 아부라는 것을 할줄 모릅니다. 직장 상사의 의중을 파악해서 그에 맞게 말하고 행동을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직장에서 인정을 받을텐데... 저는 그것이 서투릅니다. 하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저는 그랬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는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세운 회사였습니다. 취업이 어려운 국문학과 학생들을 위해서 국문학을 토대로 수익을 내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인 회사였습니다.

당시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된 대표이사는 국문학을 토대로 수익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고심을 했었습니다. '국어능력시험'을 실시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맞이해서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한지로 된 우리나라의 고전 소설을 발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회의때 일입니다. 대표이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아바타 작명 서비스와 자기소개서 글 보정(혹은 대필) 서비스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하는 것입니다. 서울대 출신의 다른 직원들은 모두들 대표이사한테 좋은 아이디어라며 박수치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전문대를 나온 저는 '과연 사람들이 아바타 이름을 짓기 위해, 혹은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돈을 지불할까요?'라는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당연히 못 배운 티를 낸다며 무시당했고, 나중에 그 사업이 잘되지 않은 다음에는 저 때문에 재수가 없어서 그랬다며 면박을 당했습니다.

 

 

진정 '아부의 왕'이 되고 싶은가?

 

어쩌면 제가 [아부의 왕]을 보고 싶어한 이유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부를 할줄 모르는 탓에 곧잘 직장 상사와 충돌을 일으켰고, 한동안 직장을 여러번 옮겨야 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패기 넘치는 2, 30대 직장인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고, 그로인하여 직장 상사와 충돌이 생기면 주저없이 사표를 집어 던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직이 어려운 40대이고, 부양해야할 가족도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아부가 필요한 시점인 셈입니다.

비록 현실성을 결부되었겠지만 아부를 할줄 모르는 동식(송새벽)이 아부의 대가 혀고수(성동일)를 만나 인생 역전을 하는 광경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 무더위를 한번에 날려 버릴 시원한 웃음도 역시 기대했고요.

하지만 막상 [아부의 왕]은 제게 실망감만 안겨주었습니다. 동식의 반격에 의한 대리만족은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시원한 웃음은 커녕 미지근한 웃음조차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제게 세상에서 가장 짜증이 나는 영화는 웃기지 않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웃으려 극장을 찾았는데 단 한번도 웃지 못했다면 그것만큼 최악은 없는 셈입니다.

 

일단 [아부의 왕]은 동식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일평생 아부라는 것을 할줄 몰라 교감으로만 살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교장으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사채를 빌려 쓰고, 결국 집으로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는 일을 겪게 됩니다.

동식은 아버지 몰래 사채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사정도 결코 좋지 않습니다. 보험회사 개발부로 들어갔지만 아부를 하지 못하는 탓에 상사에게 찍혀 영업직으로 밀려났습니다. 고지식한 동식이 영업을 잘 할리가 없죠.

사채업자들을 시시각각 동식을 압박하고, 보험 영업은 되지 않습니다.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동식은 전설적인 아부의 대가인 혀고수를 찾아갑니다.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제자로 받아달라고... [아부의 왕]은 이 부분에서 '피식' 수준의 웃음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저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혀고수의 아부 비법을 전수 받은 동식의 반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설명을 위해 초반부는 충분히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혀고수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동식은 예정대로 보험왕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재계 큰손 이회장(이병준)에게 접근해서 작업을 펼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대리만족과 속시원한 웃음을 안겨줘야 하지만 [아부의 왕]은 전혀 그러지 못합니다.

 

 

야망이 너무 컸다.

 

문제가 뭐였을까요? 코믹 연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성동일이 자신에게 딱 맞는 맞춤옷과도 같은 혀고수를 연기했습니다. 여기에 떠오르는 코믹 연기계의 샛별 송새벽도 그 특유의 어눌한 연기로 맹활약합니다. 이병준, 고창석 등 코믹 조연들이 뒷받침해주고 있기까지합니다. 그런데 왜 웃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일단 정승구 감독의 욕심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정승구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인 [밀양]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그가 장편 영화 데뷔를 하기 전에 만들었던 단편 영화들 역시 코미디와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감독 데뷔를 하기 위해 코미디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비록 감독 데뷔를 하기 위해 [아부의 왕]이라는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의 야망은 관객을 웃기는 것보다 더 높은 곳에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는 [아부의 왕]을 통해 아부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부를 할줄 모르는 사람은 도태되어 가는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야망은 [아부의 왕]을 웃기지 않는 코미디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신인 감독의 의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흥행이 어느정도 보장된 코미디 영화로 어쩔수없이 데뷔하지만 그저 웃기기만 하는 막장 코미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정승구 감독의 욕심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일단은 웃겼어야 했습니다. 관객을 먼저 웃게 하고나서 정승구 감독의 야망을 펼쳤어야 했습니다.

혀고수가 동식에게 아부의 비법을 전수하는 장면은 미지근했고, 그로인하여 동식이 보험왕이 되는 과정은 대부분 생략되었습니다.

결국 기대할 것은 동식이 혀고수, 예지(김성령)와 손을 잡고 이회장을 공략하는 부분인데... 그러한 하이라이트에 갑자기 동식의 첫사랑인 선희(한채아)가 등장해서 오히려 분위기를 다운시킵니다. 사채업자인 성철(고창석) 일당 역시 너무 과도하게 동식의 일에 개입이 되며 영화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동식이 이회장의 뒷통수를 치는 과정입니다. 혀고수는 그렇다치고 예지가 갑자기 동식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도와주는 것도 개연성이 부족했고, 첫사랑인 선희를 위한 동식의 결정 역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건 도대체 어디에서 웃으라는 것인지 영화를 보며 고민을 하게 만들더군요.

  

 

코미디는 이렇게 만들면 안된다.

 

저는 기왕 웃기려면 차라리 막무가내로 웃기는 영화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웃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캐릭터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웃기는 상황도 짜임새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웃음은 그렇게 쉽게 터져나오지 않습니다.

분명 정승구 감독은 코미디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그 어떤 장르보다 어려운 것이 코미디임을 신인 감독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웃기는 배우들을 전면 배치시키고, 웃기는 상황을 만들어내면 관객들이 알아서 웃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웃기는 배우들이라 할지라도 캐릭터 설정을 웃기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웃기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배우들의 코믹 연기와 맛깔스러운 대사, 그리고 전후 사정이 잘 조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저 웃기는 배우와 웃기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감독 자신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사회성 짙은 이야기를 해대면 [아부의 왕]처럼 이야기가 따로 놀면서 코미디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런 어정쩡한 영화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애초부터 정승구 감독이 코미디 장르를 포기하고 사회성 짙은 이야기를 했다면 사정을 달라졌을 것입니다. 능력보다 아부가 필요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분명 관객들에게 먹혀 들어갔을 것입니다. 당장 저만 해도 그런 사회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왕 코미디로 만들려고 했다면 잔가지들을 쳤어야 했습니다. 관객을 웃기는데 불필요한 캐릭터들을 쳐내고, 동식과 혀고수 캐릭터에 좀 더 막장스러운 과장을 섞여 냈어야 했습니다.

동식이 이회장에게 한방을 먹이는 하이라이트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러한 통쾌한 한방에 동식의 첫사랑에 대한 순애보를 집어 넣은 것은 무리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통쾌함이 반감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회장을 좀 더 악질로 표현하더라도 관객이 느낄 통쾌감을 증폭시켰어야 했습니다.

코미디 영화를 보며 한번도 웃지 않은 경우는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웃지 않은 경우는 진정 처음입니다. 그 만큼 [아부의 왕]은 영화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와는 달리 코미디 영화로서는 심각하게 부적합한 영화였습니다. 정녕 정승구 감독이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이렇게 만들면 안되는 것입니다.

회사에 복귀하는 것을 포기하고 본 영화였던 만큼 영화를 본 제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차라리 회사에 복귀해서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기라도 할걸 그랬습니다. -_-

 

 

웃기지 않는 코미디는 이제 제발 그만.

웃길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코미디 영화에 도전하지 말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