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크 웹
주연 : 앤드류 가필드, 엠마 스톤, 리스 이판, 마틴 쉰
개봉 : 2012년 6월 28일
관람 : 2012년 6월 28일
등급 : 12세 관람가
추억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을까?
2002년에 처음 저를 찾아온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당시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야근을 거부했고, 결국 팀장의 이단 옆차기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깟 영화보기를 뒤로 밀면 되었을텐데, 그땐 도대체 무슨 똥고집이었는지...
암튼 그 이후로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은 제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영화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 2]는 물론이고, 2007년에 개봉했지만 가장 시리즈중 가장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은 [스파이더맨 3]까지... 저는 가슴 설레이며 찌질남 피터 파커가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샘 레이미 감독은 [스파이더맨 3]를 마지막으로 떠났습니다. 제작사는 리부트를 선언했고, 그 동안 저와 '스파이더맨'의 추억을 나눴던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도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제작 소식을 듣고 기대보다 걱정을 먼저 했던 이유입니다. 추억이 많은 영화인 만큼 그 추억의 빈자리를 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테니까요.
일단 감독은 [500일의 썸머]로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마크 웹이 맡았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연당한 남자의 이야기를 밝은 분위기로 그려냈던 [500일의 썸머]를 꽤 인상깊게 봤던 저는 일단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마크 웹이라면 무조건 스펙타클로 밀어부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 역과 엠마 스톤이 맡은 그웬 스테이시도 개봉 전의 스틸을 보고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 제겐 추억의 영화인 [스파이더맨]의 리부트를 향한 걱정의 시선이 점점 기대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개봉날 구피와 함께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흠... 뭐랄까요. 재미없지는 않았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과는 같은 듯, 다른 듯한 매력이 오묘했고, 마크 웹 감독의 세밀한 연출력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만족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2%가 부족한 듯한 아쉬움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구피가 이야기하더군요. '재미는 있었는데, 이전 [스파이더맨]이 더 좋았어.'라고... 저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운명
일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좋았던 부분부터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확실히 드라마적 이야기에 강한 마크 웹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습니다. 그는 피터 파커(앤드류 가필드)의 캐릭터를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피터 파커는 전형적인 찌질남이었다가 우연히 거미에게 물려 초인적인 힘을 가진 '스파이더맨'이 됩니다. 사실 그런 설정은 아무리 코믹스 히어로 영화라고해도 무리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진 슈퍼 거미가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되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슈퍼 거미가 우연히 피터 파커를 물어서 그를 '스파이더맨'으로 만들었다는 설정 자체도 너무 우연에 치우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크 웹 감독은 여기에 살을 더 붙입니다. 샘 레이미 감독이 미처 하지 못했던 그의 피터 파커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 들어서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한 초반 설정이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우연히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 파커보다는 아버지가 숨겨온 비밀 때문에 운명적으로 '스파이더맨'이 되어야 했던 피터 파커. 드라마적 이야기에 강한 마크 웹 감독의 역량이 발휘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1편의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커트 코너스 박사(리스 이판)의 설정도 좋았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을 좋았하지만 1편의 악당인 그린 고블린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샘 레이미 감독의 입장에서는 '스파이더맨'의 대표적 악당인 그린 고블린을 1편부터 출연시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피터 파커와 그의 절친인 해리 오스본(제임스 프랭코)의 악연이 시리즈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섣부른 고린 고블린의 등장은 그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기회를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나 마크 웹 감독은 그린 고블린의 굴레에서 벗어나 [어메이징 스피이더맨]을 시작합니다. 물론 히든 영상에 따르면 2편에서는 드디어 그린 고블린이 나올 것 같습니다.(아쉽게도 저는 히든 영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T-T) 1편에서 시리즈를 정착시키고 2편에서 본격적으로 그린 고블린을 등장시킨다는 마크 웹 감독의 선택은 박수를 받을만 합니다.
게다가 그린 고블린의 자리를 메꾼 것은 리자드맨입니다. 한쪽 팔이 없는 커트 코너스 박사가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팔을 향한 뒤틀린 욕망이 낳은 괴물인 도마뱀 인간인 리자드맨. 그러한 리자드맨의 탄생에 피터 파커가 한 몫을 함으로써 그의 책임감은 더욱 커집니다.
커트 코너스 박스의 뒤틀린 욕망과 그러한 욕망을 안고 태어난 리자드맨은 돈과 성공에 대한 욕심으로 탄생한 샘 레이미 감독의 그린 고블린보다 매력적인 악당임에 분명했습니다.
같은 듯... 서로 다른 매력
이처럼 마크 웹 감독은 캐릭터 설정에서 샘 레이미 감독을 넘어서는 매력적인 연출력을 발휘합니다.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였던 메리 제인 왓슨(커스틴 던스트) 대신 똑똑하고 당당한 신여성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을 피터 파커와 짝을 이뤄준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마크 웹 감독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완벽하게 분리시킬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을 리부트하면서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은 물론,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과도 확실한 선긋기를 한 것과는 다른 선택인 셈입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면서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피터 파커가 삼촌인 벤 파커(마틴 쉰)의 죽음으로 인하여 큰 힘에는 큰 의무가 따른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깨닫는 장면이라던가,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의 힘을 자유자재로 쓰게 되는 과정 등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리부트가 아닌 리메이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크 웹 감독은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과 선을 그어 나갔습니다. 피터 파커의 캐릭터 설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앞서 설명한 피터 파커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그가 '스파이더맨'이 될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루저였던 피터 파커의 성격도 확 바뀌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이 되기 이전에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만 당하던 샘 레이미 감독의 피터 파커와는 달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는 훨씬 밝고 당당합니다. 그가 놀림을 당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려다가 플래시에게 얻어 맞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마크 웹 감독은 피터 파커가 전형적인 루저는 아니었음을 강변합니다.
'스파이더맨'이 악당이라고 생각하는 그웬의 아버지에게 적극적으로 '스파이더맨'을 옹호하는 장면이라던가, 영웅의 무거운 책임감에 힘겨워하던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과는 달리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영웅이 되려 하는 모습 등은 마크 웹 감독만의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탄생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부터입니다.
너무 저돌적인 피터 파커
분명 제작사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보다 밝은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원했던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하지만 '배트맨' 리부트의 실패와 성공 사례를 참작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너무 밝아진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이 철저하게 실패했음을 제작사도, 마크 웹 감독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은 분명 밝아졌지만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켰습니다. 그럼으로써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과 너무 멀찍히 떨어지지 않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밝은 분위기에 대한 이 영화의 열망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유일한 아쉬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피터 파커는 밝아진 대신 너무 가벼워졌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너무 커다란 책임감을 짊어져서 시리즈 내내 고뇌하고, 힘들어하던 샘 레이미의 피터 파커와는 달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는 마치 영웅 놀이를 즐기는 듯이 보입니다. 다치고, 악당이라 오인을 받아도 그의 얼굴에는 고뇌보다는 여유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웬과의 로맨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와 메리 제인의 로맨스는 3편이 되어서야 이뤄집니다. 해리 오스본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으로 인하여 메리 제인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피터 파커의 고민이 이 두 커플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지만 마크 웹의 피터 파커는 그러한 답답함 따위는 필요 없다며 그웬과의 사랑에 주저함을 버립니다. 그는 그웬에게 직접 자신이 '스파이더맨'임을 밝혔고, 영화의 마지막엔 그웬의 아버지와의 약속마저 파기하며 본격적으로 그웬과 사랑 놀음을 시작할 것임을 알립니다.
샘 레이미가 시리즈의 3편을 통해 조금씩 어렵게 진행해가던 피터 파커의 사랑을 마크 웹 감독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단번에 진행시켜버립니다. 물론 그것은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나눠질 것 같습니다. 샘 레이미의 피터 파커가 답답하다고 느꼈던 분들이라면 이렇게 저돌적인 새로운 피터 파커에 환호를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사랑을 진행하던 샘 레이미의 피터 파커가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피터 파커와 메리 제인이 이어진 [스파이더맨 3]에 환호를 보낼 수도 있었고요. 반대로 마크 웹의 피터 파커와 그웬 스테이시의 사랑은 조금 가벼워보였습니다.
너무 많은 패를 까버렸다.
영화가 끝나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너무 많은 패를 꺼내 보여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터 파커의 사랑은 이뤄졌고, 이 저돌적인 틴에이저에게 영웅의 책임감에 대한 고뇌 따위는 없어보입니다.
아직 벤 파커를 죽인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노먼 오스본과의 악연이 남아 있지만 샘 레이미 감독이 시리즈 전체를 통해서 했던 이야기를 마크 웹 감독은 단 한 편의 영화에 모두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게 이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1편보다 앞으로 이어질 2편이 더욱 걱정되고, 반대로 기대됩니다. 1편이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영화라면, 2편은 본격적으로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이 펼쳐질 것입니다. 마크 웹 감독이 2편의 악당으로 그린 고블린을 예고한 것은 그런 당찬 선언과도 같습니다.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새로운 조커(히스 레저)를 탄생시킴으로서 팀 버튼의 [배트맨]과 차별화를 선언한 것처럼, 마크 웹 감독은 새로운 그린 고블린을 통해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차별화를 선언할 것으로 보입니다. 1편은 그 준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새로움이 성공을 거둘지, 실패를 거둘지에 따라서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진정한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성급했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2% 아쉬웠지만, 아직은 실망감보다 기대감이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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