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미드나잇 인 파리] - 과거를 사랑함으로서 현재를 되돌아보다.

쭈니-1 2012. 7. 12. 11:50

 

 

감독 : 우디 알렌

주연 : 오웬 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 맥아담스

개봉 : 2012년 7월 5일

관람 : 2012년 7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상업적 취향에 따른 선택이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이다.

 

다시한번 고백하는데, 제 영화적 취향은 다분히 상업적입니다. 한때는 완벽한 영화광이 되기 위해 예술영화, 영화제 수상작, 작가주의영화, 독립영화 등을 억지로라도 챙겨보곤 했지만 대부분 제 취향과 전혀 맞지 않아 영화보는 내내 괴롭기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77세 노장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거장의 유쾌한 잔소리가 느껴집니다. 문제는 이 노장의 잔소리를 들을 땐 '그래, 맞아.'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막상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가 국내에 개봉했습니다. 2011년 미국 개봉 당시 1천7백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5천6백만 달러라는 흥행 수입을 올렸고, 월드와이드 흥행 수입은 무려 1억5천만 달러가 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디 알렌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작이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입니다. 

 

결국 그러한 [미드나잇 인 파리]의 흥행이 제 발길을 잡아 끌었습니다. 원래는 미국 개봉 당시 흥행 실패작 판정을 받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액션 [헤이와이어]를 볼 계획이었습니다.

다분히 상업적인 취향인 제겐 분명 [미드나잇 인 파리]보다 [헤이와이어]가 제 취향에 맞는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흥행에 성공한 [미드나잇 인 파리]와 흥행에 실패한 [헤이와이어]로 구분을 해보니, [헤이와이어]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 더 끌렸던 것이죠. 결국 상업적인 취향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인가? 아닌가?의 차이니까요.

이로써 제 인생 처음으로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를 관람비를 지출하고 봤습니다. 이전에는 시사회 초대라던가, TV, 혹은 비디오로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비싼 영화 관람비를 지출했다는 것은 그만큼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영화적 재미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 관람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즐거웠고,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얕은 예술적 상식을 가지고 이 영화를 즐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소설가인 길(오웬 윌슨)과 그의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가 파리로 여행을 오면서 시작합니다. 겉보기엔 선남선녀의 완벽한 커플러처럼 보이는 길과 이네즈. 하지만 이 커플 뭔가 불안불안합니다. 파리의 낭만에 흠뻑 적어 있는 길과는 달리 이네즈는 속물 근성을 드러내며 파리의 화려함만 뒤쫓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 앞에 이네즈의 친구인 폴이 등장합니다. 툭하면 '이건 내가 잘 아는데...'라며 무한 잘난척을 하는 이 재수없는 녀석에게 이네즈는 그의 유식함을 칭송하지만 길은 이 모든 것이 불편할 따름입니다. 결국 길과 이네즈는 따로 파리를 즐기기로 합니다.

사건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발생합니다.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던 길은 12시 종이 침과 동시에 나타난 클래식 푸조에 얼떨결에 타게 되고, 놀랍게도 1920년대 파리로의 시간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길은 스콧 피츠제럴드(톰 히들스톤)와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를 만나게 되고 콜 포터의 노래를 듣게 되며 헤밍웨이(코리 스톨)와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캐시 베이츠)의 집에 가서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읽어주겠다는 약속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피카소도 만나게 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영화적 재미가 시작되는 것이죠.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 그것은 영화의 문제가 아닌 내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바로 예술에 대해서 저는 너무 무식했던 것입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제대로 즐기려면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간 길이 만나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길이 놀라듯이 관객 역시 이 놀라운 시간여행을 온전하게 즐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예술가라고는 헤밍웨이와 피카소 뿐이었습니다. 길이 '혹시 동명이인이냐?'며 놀라는 스콧 피츠제럴드가 누구인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미완성된 소설을 보여주기 꺼려하던 길이 왜 거트루드 스타인이 읽어준다고 하니까 그토록 감격스러워하는지, 영화를 보며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저는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그 늦은 시간에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서 하나 하나 검색을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아직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지 않으셨지만 앞으로 볼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1920년대 유명한 예술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약간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어제 한 밤중에 검색한 내용들을 조금 정리해봤습니다.

 

 

이들을 알아야 영화가 재미있다.

 

우선 가장 먼저 알아야할 인물은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입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등을 쓴 미국의 유명 작가라고 하는 군요.

영화에서 헤밍웨이는 스콧에게 젤다가 그를 망칠 것이라고 경고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헤밍웨이의 경고는 맞았습니다.

실제 스콧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젤다에게 파혼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소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 후에서야 젤다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콧은 젤다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젤다는 스콧의 돈을 사랑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만한 부분이죠.

스콧은 결혼 이후 젤다와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파산하게 됩니다.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젤다와의 방탕한 생활로 전부 소진한 스콧은 결국 심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빚 때문에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로 전전하다가 44살의 젊은 나이로 심장병을 앓다가 죽고 맙니다.

젤다 역시 정신병으로 고생하다가 스콧이 죽은지 8년 후 재활병원의 화재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젤다는 자살 소동을 벌이는데, 그것은 젤다의 정신적 문제를 단적으로 표현한 우디 알렌 감독의 재치입니다.

 

헤밍웨이와 피카소는 모두들 아실테니 넘어가고, 거투르드 스타인을 잠깐 설명하자면 당시 유명한 비평가이자 미술 애호가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레즈비언으로도 유명한데 영화에서 거투르드의 집을 방문한 길을 맞이하는 여성이 거투르드의 애인이자 비서인 앨리스 토클라스라고 합니다. 당대 유명한 예술가와 친분을 쌓고 그들의 책과 그림을 비평한 거투르드이기에 길이 거투르드의 비평을 영광으로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다음으로 흥미로운 인물은 달리(애드리언 브로디)입니다. 그는 영화에서 표현된 것처럼 괴짜라고합니다. 예술에 문외한인 저도 본적이 있는 '기억의 연속성'이라는 제목의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이 달리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군요. 어쩐지 이름이 많이 낯익다 싶었습니다. ^^

길이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애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의 자신을 향한 마음을 알고 그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간 장소에서 루이스 부뉴엘이라는 영화 감독을 만나게 됩니다. 길은 부뉴엘에게 영화의 아이디어 하나를 제공하는데 어느 파티에 온 사람들이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힌 상태에서 자신들의 추악한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길이 루이스 부뉴엘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영화는 [학살의 천사]라는 제목의 1962년 영화입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대로라면 루이스 부뉴엘이 길의 아이디어를 영화화하는데 무려 40여년이 걸린 셈입니다.

 

 

과거를 사랑함으로서 현재를 되돌아보다.

 

[미드나잇 인 파리] 속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이쯤에서 설명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암튼 영화를 보며 예술에 대한 제 무식함에 스스로 창피했었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렇게 길의 시간여행을 통해 1920년대 예술가들을 만나는 장면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추구하는 것이 그러한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통한 판타지만은 아닙니다. 이번에도 노장 감독의 삶에 대한 잔소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2010년대에서 1920년대를 동경했던 길. 그는 1920년대에서 너무나도 완벽하고 매력적인 애드리아나(그녀는 가상의 인물입니다.)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집니다. 이네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애드리아나는 1920년대가 아닌 19세기 말을 동경합니다. 길과 애드리아나는 우연히 1890년으로 다시한번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길에게 1920년으로 돌아가지 말고 이곳에 머무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더욱 재미있는 것은 1890년에 만난 예술가들인 앙리와 고갱, 드가는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한다는 것입니다.

 

잘난척하고 얄미운 폴은 과거를 동경하는 길에게 '현재에 대한 부정'이라며 비꼽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의 충고는 어느정도 맞습니다. 길은 애드리아나와 189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과거를 동경하기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것을 깨달은 길이 현재로 돌아와서 한 선택입니다. 지금까지 이네즈에게 질질 끌려 다녔던 길은 비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선택하게 됩니다. 과거를 사랑해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온 길은 그로인하여 현재의 자신의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디 알렌 감독은 여전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이번 잔소리는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잔소리를 들으며 활짝 웃으며 동감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우디 알렌 감독의 이번 잔소리는 완벽했던 것입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1920년대 활약했던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공부했고, 로맨틱하고 판타스틱한 시간여행에 의한 영화적 재미도 만끽할 수 있었으며, 노장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진 뜻깊은 잔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만큼 제게 완벽했던 영화입니다.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의 로맨틱함을 알고 있는 우디 알렌 감독.

예전의 나 역시 비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순간부터 이네즈처럼 비 맞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오늘은 왠지 산성비 걱정하지 않고 비맞으며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