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최동훈
주연 : 김윤석, 이정재, 김혜수, 전지현, 김수현, 오달수, 김해숙, 임달화
개봉 : 2012년 7월 25일
관람 : 2012년 7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도둑들]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썸머시즌 극장가의 흥행 전쟁이 후끈 달아 올랐습니다. 처음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라는 코믹스의 영웅물을 내세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대세일 것이라 모두들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연가시]가 의외의 선전으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독주를 막아서며 한국영화의 흥행도 만만치 않음을 증명해냈습니다.
현재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국내 극장가를 휩쓸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도둑들]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독주를 막겠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지며 개봉에 나섰습니다. 과연 [도둑들]은 [연가시]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독주를 막아낸 것처럼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일단 분위기는 좋습니다. 어제 개봉한 [도둑들]은 개봉 첫 날 4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9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가볍게 제쳤습니다. 어제 저녁에 집 근처 멀티플렉스인 메가박스 목동에서 [도둑들]을 본 저는 평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극장 안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평일 밤에 극장안을 꽉 채운 관객들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썸머시즌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썸머시즌 흥행 전쟁이 가열되며 매주 두 편의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한 제 계획에 암운이 끼고 말았습니다. 분명 매주 흥행 대작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제겐 행복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흥행 대작들이 대부분의 스크린을 장악했기에 막상 극장에 가면 볼 영화가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지난주에 기대작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본 저는 이번 주중에 가벼운 마음으로 [5백만불의 사나이]를 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집 근처 멀티플렉스(CGV 목동, 메가박스 목동, CGV 공항, 롯데시네마 김포공항)에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거의 대부분의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었고, [5백만불의 사나이]는 교차 상영을 하는 바람에 저와 맞는 시간대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5백만불의 사나이]가 개봉한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회사 동호회에서 영화 관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동호회 회원들은 그날 [도둑들]을 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도둑들]을 이미 본 저는 혼자 다른 영화를 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동호회에서 이용하는 극장은 CGV 역곡인데 이번 주 토요일에 CGV 역곡에서 상영하는 영화라고는 거의 [도둑들]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뿐이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제가 다양한 영화들을 집근처 멀티플렉스에서 편안하게 만나려면 아무래도 썸머시즌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이기에 믿음이 갔다.
사실 [도둑들]이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대항마로 기대를 모은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하는 화려한 스타급 배우들의 힘이 컸습니다.
김윤석, 이정재, 김혜수, 전지현, 김수현 등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스타들을 한데 모아놓은 만큼 [도둑들]을 향한 관객들의 관심은 커질 수 밖에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단체 스타 캐스팅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최동훈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도둑들]을 기대했었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으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타짜], [전우치]를 통해 3연타석 흥행 홈런을 친 장본인입니다. 특히 저는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이 어떻게 [도둑들]로 진화되었는지가 궁금했고 기대되었습니다.
[범죄의 재구성]은 2004년에 개봉하여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새 장을 연 영화입니다. 박신양, 백윤식, 이문식, 박원상, 김상호, 염정아 등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한 무리의 범죄자들이 뭉쳐 기발한 범죄를 모의하고 성공을 거두지만 결국 서로 속고 속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범죄의 재구성]은 [도둑들]과 비교해서 규모는 작았지만 스토리 전개, 캐릭터 설정 등은 분명 [도둑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범죄의 재구성]이 그러했듯이 [도둑들] 역시 거액의 돈이 걸린 범죄를 위해 개성강한 범죄자들이 한데 뭉치면서 시작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한가지.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것입니다. 비록 위험천만한 계획이었지만 2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걸린 이 계획에 한국과 홍콩 도둑들은 힘을 합칩니다.
하지만 돈을 위해 뭉친 그들의 팀웍이 끈끈할리가 없습니다. 모두들 마카오 박(김윤석)의 계획에 참여는 하지만 그 속셈은 달랐습니다. 4년 전 마카오 박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는 뽀빠이(이정재)와 펩시(김혜수)는 마지막 순간 다이아몬드를 가로챔으로서 마카오 박에게 4년 전의 복수를 하려 합니다. 태양의 눈물의 주인인 웨이홍에 두려움을 느낀 첸(임달화)은 뒤늦게 빠진 황혼의 사랑 씹던껌(김해숙)과 함께 마지막 순간 다이아몬드는 포기하고 카지노의 돈만 들도 튈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에 예니콜(전지현)과 홍콩팀의 금고털이인 줄리(이심결)마저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비춥니다.
그러한 가운데 영화의 초반은 마치 [오션스 일레븐]을 보는 것처럼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팀웍을 보여주고, 중반부터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으며, 끝을 알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분명 [범죄의 재구성]보다 나아졌다.
[도둑들]은 모든 면에서 [범죄의 재구성]과 맞닿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이 신인 감독시절 만들었던 [범죄의 재구성]과 비교해서 [도둑들]은 분명 많은 부분에서 업그레이드가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놀라웠던 부분은 수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도 그 중에 쓸데없이 소모되는 캐릭터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첸과 씹던껌의 갑작스러운 중년 로맨스가 [도둑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첸과 씹던껌은 언제까지 위험천만한 범죄자로 살 수만은 없는 중년의 도둑들의 회한을 멋드러지게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부분을 잘 살려내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첸과 씹던껌의 로맨스와는 정 반대의 대칭점에 있는 예니콜과 잠파노(김수현)의 관계 설정도 영화의 활력의 불어 넣어 주었고, 펩시를 사이에 둔 마카오 박과 뽀빠이의 관계는 수 많은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줬습니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아쉬웠던 것은 극중 박신양이 펼친 어색한 분장이었는데, [도둑들]에서는 그러한 부분에서도 업그레이드가 이뤄졌고, [범죄의 제구성]의 팜므파탈 서인경(염정아) 역시 [도둑들]에서는 펩시와 예니콜로 나눠지며 오히려 여성 캐릭터의 힘이 더 막강해졌습니다. 범죄 스릴러이면서 남녀 캐릭터의 비중을 펩시와 예니콜이 완벽하게 맞춰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둑들]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범죄의 재구성]보다 강화된 액션이었습니다.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액션이라니... 어쩌면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범죄 스릴러의 진정한 재미는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치밀한 범죄이니까요.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마카오 박을 비롯한 캐릭터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밝혀지며 [도둑들]의 범죄 스릴러로서의 영화적 재미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특히 마카오 박이 뽀빠이와 펩시를 배신했던 4년 전 사건의 진실이 너무 일찍 공개되면서 더욱 김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후반부에 급속도로 힘이 빠져버린 범죄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홍콩 느와르식 액션으로 대체하여 가득 채워버립니다. 부산의 허름한 빌라에서 마카오 박과 웨이홍, 그리고 한국의 경찰들이 펼치는 총격씬은 80, 90년대 저를 열광하게 만들었던 홍콩 느와르와 닮아 있었습니다.
특히 제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던 고공 와이어 액션은 이 영화의 별미입니다. [도둑들]의 클라이맥스를 담당하는 이 와이어 액션은 영화를 보면서 제 손에 땀을 쥐게 하더군요. 비록 웨이홍의 카리스마가 부족해서 아쉬웠지만 홍콩 영화를 방불케하는 총격씬과 와이어 액션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도둑인데 뭐 어때!
[도둑들]은 태양의 눈물이라는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사이에 두고 10명의 개성 강한 도둑들이 펼치는 서로 속고 속이는 진실 게임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는 서로에게 속은 도둑들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물으면 '우린 도둑인데 뭐 어때!'라고 맞받아치는 장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도둑입니다. 애초부터 좋은 편은 아닌 셈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돈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속이고, 속습니다. 그래도 죄책감 따위는 없습니다. 도둑이라는 그들의 신분은 도덕성 따위는 눈치보지 않아도 될 철가면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속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가 읽혀졌습니다. 돈을 위해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이들의 모습. 그것은 비단 그들이 도둑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부터 권력을 차지한 상류층 사람들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 모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서로를 속이고, 또 속습니다.
이명박 정권 말미에 터져 나오는 그 수 많은 부정, 비리 사건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돈이라면 평생 써도 모자랄 만큼 충분한 그들이 왜 그깟 몇억, 몇십억을 위해서 그런 부정 부패, 비리를 저지르는 것일까요? 그들도 '우린 도둑인데 뭐 어때?'라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유쾌한 범죄 스릴러 [도둑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도둑들은 그래도 스스로 '난 도둑인데 뭐 어때?'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만, 우리 사회의 수 많은 도둑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아직도 '난 안했다. 난 모른다'라는 거짓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과연 [도둑들]의 도둑과 현실의 도둑 중에서 어느 누가 더 나쁜 놈들인지 잘 모르겠네요.
P.S. 1. 영화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책임진 신하균. 그의 역량은 [도둑들]을 더욱 유쾌하게 만듭니다.
P.S. 2. [엽기적인 그녀] 이후 지금까지 전지현을 배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도둑들]을 보니 그녀 역시 매력적인 배우더군요. 결혼이 그녀를 바꾼 것인지, 아니면 최동훈 감독이 그녀의 잠재력을 끌어낸 것인지...
어쩌면 우리들은 '도둑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도 '난 도둑인데 뭐 어때?'라고 떳떳히 밝히지도 못하는 못난 '도둑들'의 세상에...
나도 못난 '도둑들'이 되지 않으려면, 혹은 '도둑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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