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임스 맥테이그
주연 : 존 쿠색, 루크 에반스, 앨리스 이브
개봉 : 2012년 7월 5일
관람 : 2012년 7월 9일
등급 : 18세이상 관람가
애드거 앨런 포의 추리 소설은 너무 어두워서 싫었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께서 제게 추리소설 전집을 사주신 적이 있습니다. 세계문학 전집과 함께 한동안 저를 책 속으로 빠져 들게 했던 추리소설 전집을 통해 저는 추리 소설의 매력에 푹 빠졌고, 그 영향으로 지금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합니다.
추리소설 전집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역시 셜록 홈즈였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각색된 셜록 홈즈의 유쾌한 모험은 어린 제겐 그 어떤 어드벤처 소설보다도 재미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읽은 무삭제판 셜록 홈즈를 통해 어린 시절 제가 읽은 셜록 홈즈는 상당히 밝은 분위기로 각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셜록 홈즈는 아직도 제 마음 속에 어린 시절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셜록 홈즈만 좋아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르센 뤼팡도 좋아했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에도 푹 빠졌었습니다. 특히 할머니 명탐정인 미스 마플의 활약상을 좋아했는데, TV에서 자주 방영해줬던 기억도 납니다.
그랬던 제가 도저히 도전하지 못했던 추리소설도 있습니다. 바로 애드가 앨런 포의 추리소설이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애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라는 소설을 읽은 후,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도전을 포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록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각색된 작품이라 할지라도 애드가 앨런 포의 추리소설의 어두운 분위기는 겁많은 초등학생이었던 제게 버거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후에도 저는 애드가 앨런 포의 추리소설만큼은 읽지 못했고, 결국 애드가 앨런 포는 '검은 고양이'라는 음침하고 무서운 소설의 작가로만 제게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애드가 앨런 포의 마지막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영화화한 [더 레이븐]이 개봉했습니다. 비록 애드가 앨런 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검은 고양이'밖에 없었지만 실존 인물을 소재로한 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제 관심을 끌어냈습니다. 그래서 미국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고, 국내 흥행도 시원치 않았지만 저는 [더 레이븐]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애드가 앨런 포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더 레이븐]은 앨런 포(존 쿠색)가 독극물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영화의 후반부 장면을 먼저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설정 자체가 앨런 포(존 쿠색)의 의문의 죽음과 그의 마지막 행적을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추적하는 것이기에 앨런 포의 의문의 죽음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앨런 포의 죽음과 [더 레이븐]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더 레이븐]을 본 후 앨런 포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 그에 대해서 이것 저것 검색을 해봤습니다.
영화에서는 에밀리(앨리스 이브)를 위해서 앨런 포가 '애너벨 리'라는 낭만적인 시를 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애너벨 리'는 앨런 포의 사촌동생이자 아내인 버지니아 클렙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시라고 합니다. 열세 살의 나이로 사촌 오빠인 앨런 포와 결혼한 후 미국의 대공항 시기에 극도의 가난을 겪었고 결국 결핵으로 숨을 거둔 버지니아 클렙. '애너벨 리'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못난 남편의 애절한 절규였던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구피는 '사촌기 시절 감동 깊게 읽었던 애너벨 리가 이렇게 끔찍한 스릴러 영화에 이용되다니...'라고 안타까워하더군요. 솔직히 '애너벨 리'에 대한 진실을 알고나니 오히려 영화보다 실제 사연이 더욱 애절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비단 '애너벨 리'에만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앨런 포의 실제 이야기를 검색해서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더 레이븐]보다 훨씬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앨런 포의 마지막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버지니아가 죽은지 2년 뒤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앨런 포. 그는 죽기 전에 새라 앨머러 로이스터라는 여성과 결혼을 하려 했습니다. 그즈음 그는 금주회에 가입을 하여 새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가 9월 28일 아침 볼티모어의 한 병원에서 빈사 상태로 나타났다가 의사를 만나지 못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선 이후 10월 3일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혼수상태로 말입니다. 9월 28일과 10월 3일 사이의 앨런 포의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레이븐]은 바로 그러한 미스터리에 초점을 둡니다. 그는 그 사이에 무엇을 했고, 왜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있다가 사흘 만에 죽은 것일까? 영화는 여기에 살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앨런 포의 소설을 따라하는 잔인한 살인마를 등장시키고, 앨런 포 스스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그의 삶보다 극적이지 못한 영화의 상상력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고나서는 스릴러 영화로서의 빈약한 사건 전개 때문에 [더 레이븐]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범인은 너무 눈에 뻔히 보였고, 약혼녀인 에밀리를 구하기 위한 앨런 포와 필즈 형사(루크 에반스)의 모험도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더 레이븐]은 스릴러로서의 느슨한 전개를 가리기 위해서 잔인함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그러한 전략은 처음엔 먹혀 들어갔습니다. 잔인한 장면 때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잔인한 장면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잔인한 장면에 내성이 생기면서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던 느슨한 전개가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것이죠.
앨런 포의 추리소설을 즐겨 있었던 독자라면 [더 레이븐]을 보며 앨런 포의 추리소설 속 한 장면이 영화 속에 펼쳐지고, 그것이 단서가 되어 앨런 포가 범인의 정체에 점점 다가가는 전개가 흥미로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앨런 포의 추리소설의 독자가 아니었고, 따라서 [더 레이븐]의 전개에 흥미를 느낄 여지가 부족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앨런 포의 실제 이야기를 알고 나니 [더 레이븐]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커지고 말았습니다. 앨런 포의 인생과 죽음은 [더 레이븐]보다 훨씬 극적이고, 미스터리했기 때문입니다.
천재 추리소설 작가의 어두운 내면부터가 그렇습니다. 실제 앨런 포는 사랑하는아내를 잃었고, 그로인하여 우울증과 아편 복용, 자살 등을 시도하는 불우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애너벨 리'라는 로맨틱한 시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그런 불행하고 어두운 내면이 생산해낸 슬픈 절규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앨런 포는 술을 좋아하고, 편집장과 다투는 괴팍한 성격이지만 실제의 앨런 포보다 훨씬 밝고 활기찹니다. 앨런 포라는 이름에서부터 어둡고 음산한 기운을 기대했던 저는 괴팍하기는 하지만 명랑한 영화 속의 앨런 포의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에밀리 때문이라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 앨런 포는 새라와의 결혼을 위해 새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니 새라는 곧 [더 레이븐]의 에밀리라고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앨런 포의 진짜 모습을 전부 걷어내고, 새로운 여인을 만나 활력을 되찾은 앨런 포의 모습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된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일입니다. 그로인하여 에밀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앨런 포의 선택이 뜬금없어졌습니다. 만약 영화 속에서 처음부터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겪은 앨런 포를 그려냈다면, 다시는 죽음보다 더 아픈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앨런 포가 이해가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너무 스릴러에 집착하여 매력적인 인물의 미스터리를 잃어버리다.
[더 레이븐]의 실패 원인은 잔인한 스릴러에 너무 집착했다는 점입니다. 앨런 포가 유명한 추리소설가라는 점을 착안해서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스릴러 영화로 만든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앨런 포의 이야기는 스릴러 영화로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앨런 포는 죽는다.'라는 결말이 뻔히 드러난 상황에서 스릴러를 진행하다보니 영화 자체가 '앨런 포가 어떻게 범인을 잡고 에밀리를 구할 것인가?' 보다는 '앨런 포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앨런 포의 사랑에 영화는 과도한 집착을 보입니다. 결말이 뻔히 드러난 스릴러 영화이다보니 처음부터 드러난 앨런 포의 죽음을 최대한 극적이고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더 레이븐]이 스릴러 영화이면서도 스릴보다는 뜬금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앨런 포의 슬픈 사랑으로 영화를 무리하게 마무리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만약 스릴러 장르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에밀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앨런 포의 공감안되는 모험담 대신 사랑하는 아내를 읽고 방황하다가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천재 소설가의 슬픈 이야기를 그려냈다면 어떘을까요?
물론 앨런 포의 미스터리한 마지막 행적에 영화적 상상력이 덧붙여져야 했지만 앨런 포가 추리소설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영화적 상상력이 억지 스릴러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더 레이븐]은 앨런 포가 1845년 발표하여 그를 일약 유명 작가로 만들어준 '갈가마귀'라는 제목의 시를 뜻하는 것입니다. '갈가마귀'의 주인공 청년은 이제는 가고 없는 연인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사랑과 추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폭풍아가 치는 밤에 창문을 통해 쉴 곳을 찾는 갈가마귀 한마리가 날아오는데 이 갈가마귀는 어떤 질문에도 'nevermore'라고 대답합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더 이상은 없어' 혹은 '이젠 끝이야'라는 뜻입니다.
청년은 뭐라고 묻든 같은 대답을 하는 갈가마귀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연인에 대해서. 결국 '갈가마귀'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불행과 사라진 희망에 대한 추억을 가슴 아프게 노래한 시입니다.
하지만 [더 레이븐]에서 '갈가마귀'는 끔찍한 살인 현장을 떠도는 마귀와도 같습니다. 글쎄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저는 연쇄 살인마에 대항하다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앨런 포보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죽음보다 깊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앨런 포가 훨씬 극적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결코 제가 [더 레이븐]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가끔은 영화보다 더 극적으로 살다간 실존 인물의 생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그럴때마다 영화의 빈약한 상상력이 원망스럽다.
극적 삶을 완벽한 상상력으로 그려내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실제 삶을 그대로라도 그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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