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다리오 아르젠토
주연 : 애드리언 브로디, 엠마누엘 자이그너
[스탕달 신드롬]에 대한 추억
1996년 저는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한 편의 인상 깊은 이탈리아산 스릴러 영화를 만났었습니다. '스탕달 신드롬'은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연쇄 살인범을 쫓는 어느 여형사가 연쇄 살인범에게 폭행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기 스스로 연쇄 살인마가 되는 과정을 그린 충격적인 스릴러 영화입니다.
제가 한때 비디오방에서 몇 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손님들이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저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환생]과 함께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스탕달 신드롬]을 추천했었습니다. [환생]의 경우는 제 추천으로 영화를 본 손님들의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었지만 [스탕달 신드롬]의 경우는 '뭐 이런 영화를 추천하냐?'는 꾸지람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어때서?'
이후 저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단지 [스탕달 신드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다리오 아프젠토 감독의 딸인 아시아 아르젠토를 미국 영화의 조연으로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을 뿐입니다.([트리플 X], [마리 앙투아네트] 등) 그럴때마다 제 기억 속 깊이 자리매김한 충격적 스릴러 [스탕달 신드롬]이 떠올랐었습니다.
제 2의 [스탕달 신드롬]을 기대한 것은 무리였나?
그러한 가운데 [지알로]라는 영화가 국내 개봉 소식을 알렸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를 앞세운 [지알로]는 [스탕달 신드롬]과 마찬가지로 연쇄 살인마를 쫓는 한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미녀들만 납치해서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가한 후 잔인하게 살인하는 연쇄살인마를 쫓는 미국인 형사 엔조(애드리언 브로디)와 자신의 동생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 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엔조의 수사에 동행을 하게 되는 셀린(엠마누엘 자이그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제가 [스탕달 신드롬]에서 얻었던 신선한 충격을 [지알로]에 기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알로]는 보는 내내 저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이 변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알로]는 [스탕달 신드롬]에서 느꼈던 충격은 커녕, 스릴러 영화로서의 긴장감도 거의 느낄 수가 없는 영화였습니다.
캐릭터는 부실하고, 사건은 느슨하다.
[지알로]는 형사인 엔조와 연쇄 살인마의 과거 충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넣습니다. 엔조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어느 남성에게 참혹하게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했고, 연쇄 살인마는 흉측한 외모로 인하여 수녀원에 버려진 후에도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었습니다.
서로 대결을 해야 하는 두 캐릭터의 아픈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연쇄살인마에게 동화되어 가는 여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스탕달 신드롬]의 캐릭터들 처럼, 엔조와 연쇄 살인마는 서로를 이해하고 동화되어 가는 것은 아닐지 기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두 캐릭터의 아픈 과거는 싱거운 영화의 밋밋한 영념에 불과했습니다.
사건 해결도 너무 과도하게 풀려버립니다. 그저 일본인 피해자가 죽기 전에 내뱉은 '노랑색'이라는 단어 하나로 범인을 유추하고 사건을 순식간에 해결해버립니다. 마치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연쇄 살인마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야기가 더 있는 것일까요?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가 [스탕달 신드롬]를 너무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지알로]에 대해서 과도하게 기대했던 면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탕달 신드롬]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지알로]를 본다고 해도 [지알로]는 도저히 스릴러 영화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캐릭터는 겉돌고, 사건의 진실 접근은 느슨합니다. 연쇄 살인마는 위압감을 주기에 부족했고, 마지막 반전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스탕달 신드롬]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15년 만에 다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를 봤다는 것만이 [지알로]에 대한 제 유일한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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