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유어 하이니스] - 판타지와 섹스 코미디의 매력적인 만남

쭈니-1 2012. 6. 18. 11:03

 

 

감독 : 데이빗 고든 그린

주연 : 대니 맥브라이드, 제임스 프랭코, 나탈리 포트만, 주이 데이샤넬

 

 

이 영화의 개봉을 진심으로 기다렸다.

 

매주 저는 미국의 박스오피스 사이트를 둘러 봅니다.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들이 국내에 개봉할 확률이 높은 만큼 앞으로 제가 만날 미국 영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주요 이유입니다.

그런데 가끔 흥행 성공 영화가 아닌 흥행 실패 영화에 필이 꽂힐 때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흥행 실패작 판정을 받으면 국내에 개봉할 확률도 그만큼 적어지지만 그래도 국내에 개봉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곤 합니다.

[유어 하이니스]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2011년 4월에 미국에서개봉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쪽박찼습니다. 제작비가 무려 5천만 달러를 육박하는데 이 영화가 미국에서 벌어들인 흥행 수입은 2천만 달러가 조금 넘을 뿐입니다. 해외 흥행 수입이 거의 없었던 영화인 만큼 [유어 하이니스]는 제작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망한 영화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린 이유는 코믹 판타지라는 영화의 장르가 매력적이었고, 출연진 역시 화려했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영화가 너무나도 필요했던 지난 주말, [락아웃 : 익스트림미션]이 그러한 가벼운 영화에 대한 갈증을 미처 풀어주지 못한 상황에서 제가 선택한 것은 [유어 하이니스]의 국내 개봉에 대한 기다림을 1년이 넘은 시점에서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판타지와 섹스 코미디의 만남

 

일단 저는 [유어 하이니스]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한동안 복잡하기만 했던 제 머리가 말끔하게 비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은 간단합니다. 두개의 달이 하나로 뭉쳐지면 순결한 처녀가 무시무시한 용의 알을 잉태한다는 전설이 있는 가운데 용감한 전사가 악의 무리들을 물리치며 순결한 처녀를 구해냅니다. 그리고 100년이라는 세월이 흐릅니다. 몬 왕국의 두 왕자 파비우스(제임스 프랭코)와 타데우스(대니 맥브라이드)는 두개의 달이 하나로 뭉쳐지기 전에 순결한 처녀인 벨라도나(주이 데이샤넬)를 악의 세력인 리자르에게서 구해내야 합니다.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판타지 영화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타지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온갖 화장실 유머들입니다. 두 왕자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예언자는 파비우스와 타데우스에게 그 댓가로 자위행위를 도와달라고 요구하고, 무시무시한 괴물 미노타우르스는 타데우스의 몸종을 겁탈합니다. 미노타우르스를 처지한 타데우스는 미노타우르스의 전리품으로 성기를 잘라 목에 달고 다니기도 합니다.

반라의 여인들이 타데우스와 파비우스를 유혹하기도 하고, 여전사 이자벨(나탈리 포트만)은 정조대를 차고 나타나 타데우스에게 자신에게 정조대를 채운 마녀를 무찔러야 이 정조대를 풀 수 있다며 새로운 모험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가끔 지나칠 정도의 섹스 코미디가 판타지 영화로서 이 영화가 갖춰야할 세계관을 너무 가볍게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저는 그러한 가벼운 판타지 세계관이 유쾌했고,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어울리는 판타지와 섹스 코미디의 조합이 흥미로웠습니다.  

 

명품 배우들의 망가지는 연기들

 

[유어 하이니스]의 또 다른 재미라면 역시 화려한 캐스팅에서 오는 재미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찌질한 둘째 왕자 타데우스를 연기한 배우가 잭 블랙인줄 알았습니다. 외모도 비슷하고, 타데우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잭 블랙이 그 동안 연기한 캐릭터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물론 영화를 보며 잭 블랙이 저렇게 키가 컸나? 라는 생각은 가끔 했습니다.)

비록 잭 블랙이 아닌 대니 맥브라이드라는 우리에겐 낯선 배우였지만 그래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타데우스가 아니래도 이 영화는 매력적인 배우들이 각자 망가지는 연기에 충실하며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잘 생기고, 능력도 있는 몬 왕국의 첫째 왕자 파비우스의 제임스 프랭코의 연기는 그런 면에서 최고였습니다.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의 비운의 친구 해리 오스본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127시간],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등의 영화를 통해 진지한 연기를 펼쳐 보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유어 하이니스]에서 천연덕스럽게 화장실 유머를 구사합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더욱 웃기더군요.

[해프닝]과 [500일의 썸머]에 출연했던 주이 데이샤넬도 마찬가지인데, 오랫동안 성안에 갇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결한 처녀 벨라도나 역을 맡아 순진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음란한 대사를 내뱉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의외의 배우 나탈리 포트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정조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빵 터졌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대놓고 섹스 코미디를 구사하는 것은 대니 맥브라이드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진지한 연기를 했던 배우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섹스 코미디가 더 신선했습니다.

 

약간 아쉬운 점들...

 

물론 [유어 하이니스]가 미국 개봉에서 흥행에 실패하고, 국내 개봉마저 안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개봉이 불가한 이유는 미국식 섹스 코미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흥행 대박이 난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도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서 힘을 못쓰는 실정에서 굳이 미국에서조차 실패한 섹스 코미디를 국내에 개봉시킬 이유가 영화 수입업자에겐 없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유어 하이니스]에 아쉬운 점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판타지의 세계관과 섹스 코미디의 조화가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 두 장르의 부조화에 '신선하다.'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긴장감은 떨어지고, 무슨 장난같은 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가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야 하는 영화인 만큼 가벼움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타데우스의 캐릭터도 약점입니다. 처음엔 이유없이 삐딱하고, 멍청할 정도로 실수만 하던 그가 유니콘의 뼈로 만든 칼을 얻으며 갑자기 영웅으로 180도 돌변하는 장면은 제가 아무리 이 영화를 좋게 봤다고 해도 너무한 장면입니다. 애초에 타데우스가 주인공인 영화인만큼 그의 변화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을 지닌 [유어 하이니스]는 가벼운 영화에 목 말라하던 제게 그에 대한 갈증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준 영화였습니다. 비록 미국 영화 역사엔 흥행 실패작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며, 국내 미개봉으로 국내 영화팬에겐 '듣보잡' 영화가 될 운명이지만 최소한 제겐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