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대니 레너
주연 : 올가 쿠릴렌코, 니네트 타엡
강한 여성 캐릭터가 안겨다주는 쾌감
흔히들 여성을 사회적 약자라고 합니다. 힘에서 아무래도 남성보다 약한 위치에 있으며,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이 얼마되지 못한 탓에 사회적으로도 여성은 대체적으로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물론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며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의 불이익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강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여성 관객 뿐만 아니라 남성 관객들조차도 참 묘한 쾌감을 느낍니다. 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이지만 남성보다 강한 힘을 가진 그녀들의 활약에 대한 관객의 열광은 이미 안젤리나 졸리를 세계적 스타로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키롯]은 포스터만 놓고 본다면 그런 영화로 보입니다. [007 퀸텀 오브 솔러스]의 올가 쿠릴렌코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총을 든 그녀의 강렬한 눈빛 만으로도 섹시한 여성 킬러를 내세운 액션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강한 킬러가 아닌 매 맞는 여성에 대한 영화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저는 몹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섹시한 여성 킬러를 내세운 영화가 아닌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니키타]와 [델마와 루이스]를 합친 영화를 기대했던 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키롯]의 주인공은 갈리아입니다. 그녀는 러시아에 딸을 남겨두고 이스라엘에서 원하지도 않은 킬러로 삶을 살아갑니다. 영화는 그녀가 어쩌다가 이스라엘의 인심매매 마피아에 붙잡혀 킬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단지, 비록 킬러이지만 조직에서 약자에 불과한 그녀의 위치를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이번 일만 끝내면 돈과 여권을 돌려준다는 조직의 거짓말에 갈라이는 번번히 속습니다. 하지만 '내 여권과 돈을 돌려달라.'는 그녀의 외침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아무도 그녀의 처절한 외침을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단지 어떻게든 그녀를 이용할 생각 뿐입니다. 섹시하고 강한 여성 킬러를 기대했지만 갈리아는 한 없이 약한 사회적 약자로서의 킬러일 뿐입니다.
서로 다른 듯... 그러나 같은 처지를 가진 두 여성
그런 갈리아에게 친구가 생깁니다. 바로 이웃집 여자인 엘리너(니네트 타엡)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입니다. 한때는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줬지만 지금은 술만 마시면 엘리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엘리너는 그런 남편의 폭력에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합니다.
갈리아와 엘리너. 이 두 여성은 다른 처지인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처지에 빠진 여성입니다. 갈리아는 조직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엘리너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느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두 여성도 모성애라는 무기를 통해 강해지고 남성의 폭력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갈리아는 러시아에 남겨둔 딸을 만나기 위해, 엘리너는 뱃 속의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 동안 참았던 폭력에 대항합니다.
홍콩 느와르가 되고 싶었던 영화의 후반부
갈라아와 엘리너가 도망을 결심하며 갑자기 이 영화는 두 여성의 드라마에서 총격전을 앞세운 액션 영화로 변합니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두 여성이 모성애를 무기로 남성의 폭력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펼쳐 놓던 영화가 갑자기 킬러 액션으로 한순간에 바뀐 셈입니다.
특히 버스 안에서의 총격씬은 영화를 보면서도 참 어이가 없었는데, 차라리 이 영화가 처음부터 킬러 액션을 지향했던 영화라면 모를까... 후반부에 갑자기 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총격씬을 앞세워 두 여성의 운명을 결정짓는 장면은 갑자기 이 영화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워지게 만드는 최악의 결정이었습니다.
결국 [키롯]은 포스터에서 풍기는 향기는 강인한 여성 킬러의 이야기였지만, 영화의 전반부와 중반부까지 사회적 약자인 두 여성의 이야기를 펼쳐보여주고, 마지막 후반부에 가서는 뜬금없는 강인한 여성 킬러의 총격씬을 보여주는 오락가락하는 연출력을 보여주는 참 이상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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