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 인간 둥지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살아남는 법

쭈니-1 2012. 5. 30. 17:46

 

 

감독 : 하라 케이이치

더빙 : 토미자와 카자토, 요코카와 타카히로

 

 

나의 3일 연휴는?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은 주말과 석가탄신일을 낀 3일 황금 연휴였습니다. 연휴 전날인 25일은 블친들과 밤새워 술을 진탕 마셨고, 토, 일요일에는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가평까지 가는데 7시간, 서울로 오는데 4시간) 누나 부부와 함께 가평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연휴의 마지막 날인 28일 석가탄신일에는 쉴 틈도 없이 회사에 당직을 서야 해서 회사에 가야 했습니다.

텅빈 회사의 경비실에서 멍하니 하루를 보내자니 심심하더군요. TV를 틀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재미있는 프로는 하지 않고, 피곤한 몸을 잠시라도 쉴겸 경비실에 두 다리를 쭈욱 펴고 누웠지만 불편해서 금새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회사에서 키우는 개와 함께 회사 주차장을 맘껏 뛰어 다녔지만 역시나 몇 분 지나지 않아 숨만 차고 모든 것이 귀찮아졌습니다.

사실 당직을 위해 제가 준비해간 것도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보려고 벼르던 영화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입니다. 그나마 이 영화가 있었기에 8시간 동안의 당직이 조금은 수월했습니다. 영화 상영 시간인 2시간 20분 동안은 심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었거든요.

 

갓파가 뭐지?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은 에도 시절, 어린 갓파(토미자와 카자토)가 사무라이에게 아빠를 잃고 지진으로 산채 매장됩니다. 그리고 몇 백년 후 고이치(요코카와 타카히로)라는 소년이 우연히 돌 속에 갇혀 있는 갓파를 줍게 되며 시작합니다.

고이치는 몇 백년만에 살아난 어린 갓파에게 쿠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갓파가 고이치의 집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주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결국 고이치는 쿠를 인간의 발길이 뜸한 안전한 곳으로 보내주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갓파란 무엇일까요? 섬 나라이기 때문인지 워낙에 요괴가 많은 일본에서 갓파는 일본 민담에 나오는 전설적인 동물이자 물의 요정이라고 합니다. 크기는 아이 크기의 영장류이고, 몸은 거북이 등딱지를 가지고 잇으며, 외모는 원숭이와 개구리가 반쯤 섞인 듯한 모양새입니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은 이렇게 전설 속에 나오는 요괴를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를 보는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킴과 동시에 어른 관객에게는 묵직한 메시지를 안겨줍니다.

 

갓파로 인한 소동은 누구의 잘못일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갓파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일어나는 일대 소동입니다. 기자들은 고이치의 집을 에워싸고 갓파의 사진이라도 찍겠다며 버티고, 마을 사람들 조차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고이치의 집을 서성거립니다. 고이치 아버지의 회사는 갓파를 이용해서 홍보를 하려고 하고, 결국 그러한 인간의 이기심에 갓파는 원치도 않은 TV에 출연하게 됩니다.

쿠의 TV 출연.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클라이맥스 장면은 결국 파국으로 끝이 나는데, 쿠를 도와주는 고이치가 기르는 개의 죽음으로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쿠의 사진을 찍고, 쿠가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고이치의 집 앞에서 해명하라며 난리를 칩니다.

영화를 보며 현실에서 정말 갓파라는 요괴가 발견된다면 저 역시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그러다가 나중엔 인간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갓파의 힘을 두려워하며 배척하려 하겠죠. 쿠와 고이치가 겪는 일련의 소동극을 보며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틈에 서서 저 역시 갓파의 사진이라도 찍어 보겠다며 아우성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 둥지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살아남는 법

 

신체적으로 약한 인간은 살아 남기 위해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배척하고 죽여 왔습니다. 그러면서 지구는 점점 거대한 인간 둥지가 되어 버렸고, 인간들에게 둥지를 잃은 존재들은 멸종되거나, 아니면 살아 남기 위한 묘책을 생각해내야 했습니다.

고이치가 키우는 개인 아저씨는 인간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합니다. 전 주인이 자신을 때리고 학대해서 집을 나왔지만 자신을 보살펴준 고이치의 집에 머물며 고이치의 충실한 애완견이 되어줍니다.그것이 그들이 인간 둥지에서 살아 남는 방법이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쿠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 또 다른 요괴는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숨어 삽니다. 지구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려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 속에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은 인간과 더불어 살던가, 숨어서 살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은 심각하지 않은 어조로 그러한 영화의 주제를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아빠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쿠의 쓸쓸한 모습 만큼은 영화가 끝나도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