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빗 크로넨버그
주연 : 마이클 패스벤더, 키이라 나이틀리, 비고 모텐슨, 뱅상 카셀
나는 '미친놈'인가?
며칠 전 제가 10년 전에 쓴 [이너프]라는 영화의 리뷰에 충격적인 댓글이 달렸습니다. 영화에 대한 제 시선이 너무 남성 중심적이라고 지적하는 어느 여성인 듯 보이는 분의 댓글이었는데... 처음엔 다소 격앙된 뉘앙스를 풍기긴 했지만 그래도 저와는 다른 여성 중심적인 자신의 시선을 차분하게 설명하던 그 댓글은 마지막에 가서는 제게 '미친놈'이라는 욕설과 함께 마무리되더군요.
그런 일을 겪은 그 다음날에는 [은교]의 영화 이야기에 달린 댓글이 저를 충격으로 몰고 갔습니다. 지적 수준이 꽤 높은 듯이 보였던 그 분은 [은교]에 대한 제 영화 이야기의 모순을 지적하며 제게 해명을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단어들만 나열되어 도대체 제 글의 무엇이 모순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만들더니 급기야는 제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며 독설을 내뱉었습니다.
10년 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했던 저는 악플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악플이 아닌 듯이 보이다가 점점 악플로 발전하는 새로운 형식의 악플은 처음 당해 보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연속으로 두 번이나 미친 취급을 받고 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 것일까?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남과는 다른 것을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눠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제게 악플을 썼던 두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제게 '미친놈'이라 욕설을 내뱉고, '정신 상담을 받아보라'고 주제넘는 충고를 한 이유는 단순히 제 글이 자신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고, 다름이 곧 미친 것이라면 그들에게 저는 '미친놈'이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개성을 중요시합니다. 남과 다른 것은 비정상이 아닌 개성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모든 인간이 기계처럼 정형화된 인간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름을 오히려 권장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름으로 인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기 자신이 괴로워한다면 그 다름은 권장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미친놈'이라고 욕할 때 그들에게 피해를 입었거나, 혹은 그가 자신의 다름으로 정신적인 괴로움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마 아닐겁니다. 자신에게 피해가 없더라도 자신의 상식과는 다른 것을 보면 우리는 아무런 고민없이 그들을 '미친놈'이라 욕하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 VS 융
어젯밤 [데인저러스 메소드]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은 성(性)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던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비고 모텐슨)와 성적 접근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무의식의 세계를 주장한 정신분석학자 융(마이클 패스벤더). 그리고 그들 사이에 뛰어든 여성 슈필라인(키이라 나이틀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은 충격적입니다. 우리에겐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잘 알려진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정신병원에 실려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보여줬던 당차고,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비쩍 마른 몸매와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융 앞에서 불안에 떠는 슈필라인 역의 키이라 나이틀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슈필라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 인하여 가학적이고, 굴욕적인 상황에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성도착증 환자입니다. 영화의 초반 그녀는 명백하게 미쳤습니다. 자신의 다름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파괴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융의 치료 덕분에 그녀는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갑니다. 그래도 그녀의 성도착증은 치료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융이 슈필라인과 위험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가학적 성도착증 증세를 보입니다.
슈필라인은 미쳤는가?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융의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그는 반듯한 인생을 걸어왔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내와의 관계도 원만해 보이고,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줄도 압니다. 그런 융에게 오토(뱅상 카셀)는 말합니다. '섹스는 즐거움이다. 왜 스스로 자신의 즐거움을 억제하려 하는가?'
모든 정신적 문제를 성적으로 풀려고 하는 프로이트에 맞서 무의식의 세계를 중시하던 융은 결국 오토의 말처럼 억제된 자신의 욕망을 참지 못하고 슈필라인에게 빠져들고 맙니다. 영화의 중반 슈필라인과 가학적인 섹스를 즐기는 융의 모습은 무미건조한 아내와의 장면보다 오히려 편안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융은 도덕적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의 가정이 있는 남자로서 다른 여성, 그것도 자신의 환자였던 여성과 성적 쾌락에 빠졌다는 죄책감은 그를 괴롭힙니다.
영화의 후반이 되면 미친 것이 슈필라인인지, 아니면 융이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슈필라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프로이트와의 우정을 절교한 융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져듭니다. 여기에서 영화는 질문을 던집니다. 슈필라인은 미쳤는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성도착증 때문이라면... 융도 미쳤는가?
정신분석학 만큼이나 애매하다.
사실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매력적인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가 펼쳐지는 영화입니다. 소재 자체도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융을 혼란에 빠뜨리는 성도착증 여성 슈필라인의 은밀한 이야기라니...
하지만 영화는 그런 매력적인 배우들과 매력적인 소재 만큼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워낙에 복잡한 과거와 내면을 가진 캐릭터들이 난무하지만 그들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습니다. 이들 캐릭터는 정상과 비정상을 오고가지만 친절하지 못한 캐릭터 구축으로 인하여 그에 따른 혼란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 됩니다.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즐기기 위해서는 스토리 전개를 따라 영화를 보기 보다는 주연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함께 슈필라인과 프로이트, 오토에 의해 혼란에 빠져 드는 융을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변화에 주목하며 영화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짧은영화평 > 2012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 인간 둥지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살아남는 법 (0) | 2012.05.30 |
---|---|
[페이스 메이커] -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인가? (0) | 2012.05.10 |
[로봇] - 치티가 폭주해줘서 다행이다. (0) | 2012.05.03 |
[콘트라밴드] - 그의 범죄는 진정 정당한가? (0) | 2012.04.30 |
[이민자] - 그들이 더 나은 삶을 갖기 위해서는... (0) | 2012.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