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달중
주연 : 김명민, 고아라, 안성기
스포츠 영화에서 감동이란?
지난 주에 세계선수권대회 탁구 남북단일팀을 소재로한 영화 [코리아]가 개봉하여 [어벤져스]의 전세계적 흥행 돌풍에도 불구하고 주말 관객 50만명을 넘어서며 당당하게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습니다. [코리아]를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너무 신파적이지만 그래도 감동적이었다며 입을 모으더군요.
스포츠 신파에 조금은 질려버렸지만 하지원, 배두나를 좋아하는 저는 [코리아]만큼은 극장에서 봐야 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코리아]의 관람을 차일피일 미뤄던 중 [페이스 메이커]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페이스 메이커]는 지난 설날 연휴에 개봉하였지만 부진한 흥행 실적만을 남겼던 영화로 마라톤을 소재로한 스포츠 신파 영화입니다.
막상 [페이스 메이커]를 보고나니 [코리아]도 본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습니다. [코리아]는 [페이스 메이커]가 그러했듯이 약간의 웃음 코드와 초반의 갈등, 그리고 후반의 경기 장면을 통해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려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국가대표]의 흥행 성공으로 인하여 완성된 스포츠 신파의 공식입니다. 작년 연말에 개봉했던 [퍼펙트 게임]도 그러한 공식을 충실히 따랐었습니다.
페이스 메이커, 그의 도전은 마라톤 완주
[페이스 메이커]의 주인공은 주만호(김명민)입니다. 그는 고아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 손에 키워진 그는 동생인 성호(최재웅)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마라톤이었지만 젊은 시절 부상을 당해 마라톤 선수로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호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그는 스스로 우승 후보의 기록 단축을 위해 30km만 뛰는 페이스 메이커가 되기를 자청합니다.
주만호라는 캐릭터 자체가 상당히 신파적인 인물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가족을 위해... 라는 그의 인생 목표는 가족 중심적인 우리나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파 캐릭터의 한 형태입니다.(다른 형태는 사랑을 위해서... 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마라톤 완주를 꿈꿉니다. 1등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서 명예를 차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완주가 목표입니다. 신체적 결합으로 30km만 뛸 수 있고, 선수촌의 의사는 그가 완주를 할 경우 영원히 뛰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까지 하지만 그는 '내 자신을 위해서...'라며 완주를 꿈꿉니다.
이로서 이 영화의 신파는 완성이 됩니다. 그런데 김달중 감독은 주만호에게 단순한 완주 뿐만 아니라 극적인 선물까지 선사합니다. 그저 완주만 해도 충분히 감동스러울 수 있는 상황인데, 그 이상을 선물하니 감동스러운 영화의 결말에 억지가 섞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엔딩씬에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주만호라니... 김달중 감독은 [페이스 메이커]에 신파적 감동보다 완벽한 해피엔딩을 원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김명민의 연기 변신, 고아라의 매력 발산
사실 [페이스 메이커] 자체에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저는 별 다섯 만점에 별 세개만 줄 것입니다. 너무 뻔한 신파에 과도한 해피엔딩을 위한 억지스러운 결말까지... 주만호가 모든 어려움을 딛고 완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감동스러울 수 있는데 그 이상을 추구한 김달중 감독의 욕심이 개인적으로 못마땅했습니다.
게다가 캐릭터 간의 관계 형성도 너무 띄엄띄엄이고 봉조라는 코믹 캐릭터를 내세운 것 역시 너무 스포츠 신파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한 결과물로 식상하기도 했고, 영화와 너무 안어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일단 김명민의 연기는 역시 최고네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백종우를 연기하며 파격적인 체중 감량을 시도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3류 마라토너를 완벽하게 연기해냅니다. 특히 그는 주만호라는 신파적 캐릭터를 오히려 유쾌하게 표현해냈습니다. 남들이 뭐라하건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신파적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아라의 매력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이 영화에서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 왜 제 주위에 그녀의 팬이 이렇게나 많은지 이해가 되더군요. 단, 영화의 후반, 장대높이뛰기에서 자신의 기록을 넘는 순간 짓는 미소는 조금 작위적으로 보여 아쉬웠습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그녀의 매력이 이 영화의 재미를 충분히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인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인가?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다. 라고... 하지만 필연적으로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가족을 위해 꿈을 버리고 하루 하루 돈을 벌며 사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잘 되기만을 바랍니다. 그것이 행복이고 살아가는 이유라고 합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자기 자신은 그저 주인공을 돕는 조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어쩌면 당연한 것일텐데...
동생을 위해서, 그리고 우승 후보자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마라톤을 한 주만호.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마지막 '내 자신을 위해서 완주를 하겠다.'는 그의 선언이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페이스 메이커]는 솔직히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재미와 완성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내 자신을 뒤돌아보고,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으며, 결과 중심적인 한국 스포츠의 한계에 대한 따끔한, 그러나 의미있는 비판도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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