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로봇] - 치티가 폭주해줘서 다행이다.

쭈니-1 2012. 5. 3. 11:30

 

 

감독 : S. 샹카르

주연 : 라지니칸트, 아이쉬와라 라이

 

 

인도영화... 아직은 내게 불편하다.

 

제가 본 인도 영화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많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94년에 [밴디트 퀸]을 본 것이 인도 영화와의 첫 만남이었고, 2009년에 [블랙]을 봤습니다. [밴디트 퀸]과 [블랙]은 인도 영화라고는 하지만 발리우드라고도 불리우는 인도 영화 특유의 특성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아! 이런 것이 바로 인도 영화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2011년이었는데, 그 해에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를 봤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 얼간이]는 영화 중간에 뜬금없는 뮤지컬 장면이 펼쳐지는데... 감동코드와 더불어 그러한 신나는 뮤지컬 장면이 은근히 잘 어울렸던 영화입니다.

그 기세를 몰아서 [로봇]을 봤습니다. 1억2천만 달러의 흥행 대작이라는 국내 포스터의 흥행 문구처럼 인도에서 어마어마하게 흥행에 성공했다는 [로봇]은 SF와 코미디, 그리고 액션과 감동 코드까지 두루 갖춘 영화였습니다. 물론 인도 영화 특유의 뮤지컬 장면 역시 빼놓을 수 없고요.

하지만 [세 얼간이]를 재미있게 봤던 제게 [로봇]은 조금 당황스러웠던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 영화에서 뮤지컬 장면은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자주, 그리고 길게 나옵니다.

 

SF? 뮤직 비디오?

 

[로봇]의 내용은 로봇 공학자인 바시가란 박사(라지니칸트)에 의해 군사용으로 만들어진 만능 휴머노이드 치티(라지니칸트)가 바시가란 박사의 약혼녀인 사나(아시쉬와라 라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얼핏 내용만 보면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바이센테니얼 맨]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비교적 잔잔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바이센테니얼 맨]과는 달리 [로봇]은 인도 영화 특유의 시끌벅적함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나를 최대한 예쁘게 포장하기 위한 S. 상카르 감독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등장할때마다 과도하게 시도되는 슬로우 비디오는 물론이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손발이 오글거리는 뮤지컬 장면도 여러번 등장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장면들이 영화의 감상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인도 영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몰라도 시도 때도 없이 손발이 오글거리는 가사를 내뱉으며 섹시한 안무를 추는 아시쉬와라 라이와 인도의 국민 배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쉬와라 라이와 비교해서는 거의 '미녀와 야수'커플로 보이는 라지니칸트의 뮤지컬 장면은 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특수효과?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수준이하였다.

 

게다가 영화의 중반까지는 [로봇]의 특수효과도 기대이하였습니다. 이 영화가 SF 장르의 영화이다보니 당연히 특수효과의 비중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까지 이 영화의 특수효과는 과시하기 위한 어정쩡함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치티가 사나를 문 모기를 찾아 모기의 소굴에서 일대 결절을 벌이는 장면은 [로봇]이 SF인지, 코미디인지 헷갈리게 만들며, 영화 초반부 열차 안에서의 액션 장면, 중반부에 사나를 납치한 치티와 경찰의 추격씬은 너무 과도한 특수효과 과시로 헛웃음을 자아냅니다.

특히 시나를 납치한 치티와 경찰의 추격씬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스케일이 큽니다. 그러나 스케일이 크다고 해서 특수효과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정말 좋은 특수효과라면 저것이 CG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영화를 보면서도 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봇]의 특수효과는 오히려 대놓고 과시를 합니다. 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티가 운전하는 차에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는 경찰. 사나가 탄 차를 찰의 무차별 난사 속에 방패로 삼는 치티. 하지만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채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앉아 있는 사나. 아무리 스케일이 커도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면 그러한 특수효과는 영화에서 전혀 긴장감을 불어 넣지 못합니다.

 

치타의 폭주가 반갑다.

 

아마 이대로 영화가 끝이 났다면 [로봇]은 인도 영화에 대한 제 호의적인 감정 마저도 싸그리 무너뜨릴 정도로 최악의 평가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 독창적인 특수효과 장면들로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사나를 납치하고, 자신의 복제품들을 만들어 자신과 사나만의 도시 속의 제국을 건설한 치티와 사나를 구하기 위해 몰래 잠입한 바시가란 박사와 인도의 경찰의 일대 결전은 영화의 다른 모든 부분을 제쳐두고 독창성 만으로도 분명 박수를 받을만 합니다.

치티와 치티를 복제한 로봇들이 로봇들이 유기적으로 합체를 하여 인간에 대항하는 장면은 분명 명장면이었습니다. 커다란 공 모양으로 변하거나, 뱀 모양으로 변하기도 하는 장면들은 독창적이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거대한 로봇으로 변하는 장면인데, 로봇과 로봇이 유기적으로 합체하여 더 큰 로봇으로 변하는 장면이라니... 영화를 보며 나도 모르게 '제법인데...'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인도 영화... 극장에서 보지 마라.

 

[로봇]은 무려 3시간에 달하는 기나긴 러닝 타임을 가진 영화입니다. 이렇게 긴 러닝타임을 가진 만큼 [로봇]의 스토리 라인은 3단계로 나뉩니다. 1단계는 만능 로봇 치티와 사나의 유쾌한 모험담입니다. 2단계는 치티에게 인간의 감정이 생기고 인간의 감정이 생긴 치티가 사나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치티와 바시가란 박사의 갈등이고, 3단계는 보라 박사에 의해 무시무시한 병기가 된 치티가 벌이는 파괴 행위입니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은 분명 길게만 보일수도 있지만 각 단계로 진행되며 마치 3편의 각기 다른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라 지루함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극장 개봉판의 러닝타임을 보니 2시간 20분입니다. 인도 개봉판에 비해서 거의 40분 정도의 러닝 타임이 잘려 나간 셈입니다. 아마도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된 뮤지컬 장면이 상당 부분 잘려 나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는 처음이 아닙니다. 2011년 8월에 개봉한 [세 얼간이]도 2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가졌지만 국내 개봉판은 2시간 20분으로 20분 가량이 잘려 나갔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에 의하면 역시나 뮤지컬 부분이 잘려 나갔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국내 수입사의 가위질 행위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인도 영화에 대한 이질감을 줄이는 효과를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해도 [로봇]의 과도한 뮤지컬 장면이 영화의 감상을 방해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영화에 진정으로 도전하고 싶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피해야할것입니다. 관객이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수입사가 보고 관객 대신 판단해주는 이런 유아적인 만행을 우리 관객들은 얼마나 더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