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이민자] - 그들이 더 나은 삶을 갖기 위해서는...

쭈니-1 2012. 4. 25. 11:07

 

 

감독 : 크리스 웨이츠

주연 : 데미안 비쉬어, 호세 줄리안

 

 

우리 사회가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선

 

최근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줬던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은 우리나라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40대의 조선족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112 신고센터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신고센터 직원들의 안일한 대처로 끔찍한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112 신고센터에 대한 비난 여론을 들끓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혐오도 극에 달하도록 했는데, 그러한 조선족 혐오에 불을 끼엊는 사건이 최근에 또 있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편의점에서 종업원이 술병을 따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업원의 가슴과 배를 6,7차례 칼로 찌르고 도망간 범인도 30대의 조선족이었던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범인은 종업원이 자기를 무시하고 욕한다고 느껴져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일부 조선족의 범행이고 이로 인하여 모든 조선족을 '위험하다'라고 매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왜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야만 했는지에 대한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멕시코의 불법 이민자들.

 

어제 [이민자]라는 제목의 영화를 봤습니다. [어바웃 어 보이], [황금 나침반], [뉴 문]의 크리스 웨이츠 감독의 영화이기에 미국 내 멕시코인의 불법 체류자 문제를 다뤘다고 해도 조금은 가볍게 영화가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이민자]는 시종일관 진중한 분위기로 영화의 주제에 담긴 미국 사회의 문제를 털어 놓습니다.

주인공인 카를로스 갈린도(데미안 비쉬어)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넘어온 불법 이민자입니다. 그는 정원사로 일하며 하루 하루 고단함 속에서 어둥바둥거리지만 그에게는 어린 아들 루이스(호세 줄리안)가 있기에 결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과 여동생의 돈까지 빌려서 트럭을 구입합니다. 트럭 구입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 찬 카를로스, 하지만 트럭을 같은 멕시코 불법 이민자에게 도둑맞게 되고 그는 루이스와 함께 트럭을 되칮기 위한 여정에 나섭니다.

[이민자]는 카를로스와 루이스가 도둑맞은 트럭을 되찾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특별한 모험은 없습니다. 그저 아들과 아버지의 진솔한 대화가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 두 부자는 도둑맞은 트럭을 찾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밝은 미래가 아닙니다.

 

그가 불법 이민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민자]는 카를로스와 루이스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재미있는 것은 카를로스를 고용하는 이들입니다. 카를로스는 정원을 가지고 있는 부유층 사람들에게 고용되어 정원을 가꿉니다.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세련된 옷을 차려 입은 집주인은 '보험은 들었냐? 정말 안전하냐?'라며 묻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불법 이민자인 카를로스를 고용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죠.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게 마련입니다. 값싼 노동력인 불법 이민자를 찾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결국 불법 이민자를 양성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가진 자들입니다.

카를로스의 희망인 루이스는 또 어떨까요? 그가 어른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처럼 값싼 노동자로 전락하던가, 아니면 갱단에 들어가 폼 잡으며 폭력을 행사하던가. 카를로스가 무리해서 트럭을 산 이유는 루이스를 더 좋은 학교에 보내서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트럭을 도둑맞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카를로스가 루이스를 좀 더 나은 환경의 학교로 보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그들이 더 나은 삶을 갖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카를로스. 루이스가 답답해할 정도로 카를로스는 착합니다. 자신의 트럭을 훔친 이를 찾아내지만 오히려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루이스를 말립니다. 한번쯤 자신의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만한데 오히려 그는 그것을 꾹 눌러 참습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이 내린 결정은 추방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루이스는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미국인과 결혼해서 시민권을 획득한 고모에게 맡겨지고,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한 카를로스는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강제 추방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루이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다시 불법 이민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미국인들은 불법 이민자들의 범죄에 혀를 차며 그들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불법 이민자로 만든 것은 바로 미국의 자본가들이며, 미국의 사회적 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은 외면한채 말입니다.   

다시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죠. 조선족들이 불법 체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본가들은 불법 체류자의 값싼 노동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렇게 자신이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 조선족들을 비롯한 불법 체류자들은 그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끔찍한 범죄로 표출이 되는 것이죠.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택한 삶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을 괴물로 만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 역시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멕시코의 불법 이민자들이 갱단이 아닌 미국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혹은 우리나라의 조선족을 비롯한 불법 체류자들이 끔찍한 범죄자가 아닌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