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트레스패스] - 어설픈 캐릭터들의 어설픈 스릴러

쭈니-1 2012. 7. 5. 12:56

 

 

감독 : 조엘 슈마허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니콜 키드먼

 

 

내가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하는 이유

 

제가 유일하게 해외 감독 중 싫어하는 감독이 바로 조엘 슈마허입니다. 물론 제가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감독의 영화를 관심있게 봤다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제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감독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제가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하게된 계기는 바로 그 유명한 망작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 앤 로빈] 때문이었습니다. 제겐 너무나도 소중했던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과 [배트맨 2]의 추억을 산산조각낸 이 두 편의 '배트맨' 영화는 조엘 슈마허 감독에 대한 제 인식을 최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두번째 계기는 [폴링 다운]입니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어느 직장인이 숨을 쥐어오는 숨막히는 일상 속에서 결국 폭발을 한고 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폭발의 과정 속에 한국인 비하 문제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 영화는 한동안 국내 개봉이 보류되었다가 몇 년후에야 겨우 개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국인 비하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 영화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었지만 조엘 슈마허 감독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감정을 지니지 않게 되었습니다.(엎친데 덮친격으로 [폴링다운]다음으로 본 조엘 슈마허의 영화가 하필 '배트맨' 사상 최악이라는 [배트맨 앤 로빈]이었습니다.)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해야할 이유가 더 생기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해야할 한가지 이유가 더 생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트레스패스]를 봤기 때문입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니콜 키드먼이라는 꽤 괜찮은 배우들로 채워진 이 영화는 미국 개봉당시 흥행 참패를 거두었지만 그래도 조엘 슈마허 감독의 주특기가 스릴러인 만큼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재미는 갖추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하는 와중에도 그의 스릴러 영화인 [유혹의 선], [의뢰인], [폰부스], [넘버 23] 등은 재미있게 봤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트레스패스]를 보고나니 기대감은 곧바로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트레스패스]는 스릴러 영화이면서 스릴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고 허술한 범인은 헛웃음만 자아냈습니다. 게다가 피해자 가족은 도망치다 잡히기만을 반복하고, 마지막엔 뜬금없는 상황으로 급 마무리하고 맙니다.

영화를 보면서 '쟤네 왜 저러니?'라는 생각이 한두번 든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조엘 슈머허표 스릴러 영화는 다른 장르의 영화보다는 믿을만 했는데, [트레스패스]를 보고나니 더이상 조엘 슈마허 감독의 스릴러 영화도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적인 캐릭터? 혹은 어설픈 범인

 

[트레스패스]가 스릴러 영화이면서 전혀 스릴을 안겨주지 못한데에는 어리버리한 범인들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어느 부유층 가족의 집에 4인조 강도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아내 세라(니콜 키드먼)와 딸 에이브리를 지키고 싶은 카일(니콜라스 케이지)은 이 강도들과 위험한 시소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강도들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멤버 중 여성은 마약에 빠져 있다가 징징 짜기나 하고, 또 다른 한명은 돈보다는 주인집 여자 세라에게 더 관심이 많습니다. 강도 중 리더는 행동보다는 입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세라에게 총을 겨누고 카일을 위협하기는 하지만 막상 금고 열기를 거부하는 카일에게 행동보다는 말로 설득하려 합니다.

물론 그러한 범인 캐릭터 설정은 어쩌면 현실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 나쁜놈들보다는 그렇게 총 쏘기를 주저하는 나쁜놈들이 현실적이죠.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 영화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악당이 위협적일수록 영화의 스릴은 높아집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 주인공과 악당 사이의 아슬아슬한 게임 사이에서 손에 땀을 쥐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나쁘게 말하면 어설픈, 좋게 말하면 현실적인 이 악당들 때문에 스릴은 커녕 짜증만 납니다.

 

캐릭터가 안되니 상황이라도 비비 꼬아보자.

 

애초에 [트레스패스]는 무시무시한 악당들에 맞서 가족을 지켜야하는 카일의 모험담이 되기에는 글렀습니다. 우유부단한 강도단의 리더가 말 대신 행동을 취한 것은 영화가 거의 끝나가는 종반부이기 때문입니다. 행동 대신 말이 앞서는 악당이 무서울리가 없죠.

상황이 이러하니 조엘 슈마허 감독은 상황을 비비 꼬아가며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려합니다. 돈보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집에 침입한 조나(캠 지갠뎃)가 그런 꼬이는 상황을 만드는 주범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강도단은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비 꼬이는 상황에서 강도단은 스스로 자멸을 합니다. 이 비비 꼬인 상황은 스릴은 커녕 오히려 스릴을 반감시키는 최악의 역할만을 수행한 셈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자멸한 강도단 사이에서 가족을 지켰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카일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가족을 지킨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는 상황을 더 이상하게 끌고 갔을 뿐이고, 강도단 스스로 자멸했던 것이니까요.

영화가 끝나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든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제작자들도 눈이 있다면 이 영화의 시나리오만 읽어도 관객에게 스릴을 안겨주기에 턱 없이 부족한 캐릭터와 설정을 가진 것을 알아냈을텐데... 그저 괜찮은 배우들이 이 어설픈 스릴러 영화 속에서 망가져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