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배리 소넨필드
주연 : 윌 스미스, 토미 리 존스, 조쉬 브롤린, 제메인 클레멘트
개봉 : 2012년 5월 24일
관람 : 2012년 5월 2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외계인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1997년 여름, 우리는 할리우드에서 건너 온 한 편의 놀라운 SF 코미디 영화를 만났었습니다. 바로 배리 소넨필드 감독의 [맨 인 블랙]입니다. 이 영화가 놀라운 이유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 깊숙히 외계인들과 함께 살아 가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안 외계인을 소재로한 영화는 많았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는 외계인을 선한 지구의 방문자로 표현했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외계인을 지구 침략자로 설정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은 외계인을 무시무시한 괴물로 그려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외계인은 이렇게 선한 존재이거나, 악한 존재로 다양하게 표현되었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지구 밖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맨 인 블랙]은 관객에게 묻습니다. '과연 그럴까? 이미 외계인들은 인간들과 섞여 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과 함께 [맨 인 블랙]은 인간이라고 하기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외계인이라는 음모론을 제시했고, 급기야 외계인 이민자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인 MIB를 탄생시켰습니다.
[맨 인 블랙]의 시도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그러한 신선한 시도에 전세계 관객들은 환호를 보냈고, [맨 인 블랙]은 9천만 달러라는 제작비로 미국에서 2억5천 달러, 전세계적으로 5억8천9백만 달러를 벌여 들였습니다. 이 기록은 1997년에 전설적인 흥행기록을 세운 [타이타닉]에 이은 2위 기록입니다.
그러나 2002년에 개봉한 [맨 인 블랙 2]는 조금 실망스러운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제작비는 9천만 달러에서 1억4천만 달러로 대폭 상승했지만 흥행 수입은 미국에서 1억9천만 달러, 전세계적으로 4억4천만 달러로 전 편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맨 인 블랙]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소재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퇴색되었고, 결국 [맨 인 블랙 2]에서는 전 편과 같은 신선한 아이디어에 의한 재미를 관객들이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맨 인 블랙]보다 [맨 인 블랙 2]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맨 인 블랙]은 신선한 소재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부실했던 반면, [맨 인 블랙 2]는 케이(토미 리 존스)와 제이(윌 스미스)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축해 냈기 때문입니다. 이제 캐릭터가 완벽하게 구축된 이상 저는 후속편에서는 좀 더 재미난 볼거리와 다양한 스토리 전개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를 하며 [맨 인 블랙 3]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맨 인 블랙 2]의 실망스러운 흥행 성적 때문인지 [맨 인 블랙 3]의 제작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고, 결국 저는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10년만에 돌아온 [맨 인 블랙 3]는 다행히도 배리 소넨필드와 토미 리 존스, 윌 스미스와 함께 귀환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맨 인 블랙 3]는 10년 전에 제가 기대했던대로 좀 더 재미난 볼거리와 다양한 스토리 전개를 펼쳐 보이며 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케이와 제이의 관계를 설명하다.
사실 저는 [맨 인 블랙 3]를 보러 가며 약간의 불안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했던 [맨 인 블랙]에 비해, 캐릭터에 치중했던 [맨 인 블랙 2]는 다소 실망스러운 흥행을 기록했었으니까요. 그래서 [맨 인 블랙 3]는 [맨 인 블랙 2]가 애써 완성해낸 캐릭터를 무시하고 다시 가벼운 볼거리에 치중하지는 않을까 걱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맨 인 블랙 3]는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오히려 [맨 인 블랙 2]보다 강화된 캐릭터 구축에 힘을 씁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바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맨 인 블랙 2]는 현재의 케이와 제이의 캐릭터를 구축했었습니다. MIB라는 일반인은 알지 못하는 특수한 기관에서 지구에 살고 있는 외계인 관리라는 은밀한 일을 해야 하는 탓에 지독한 외로움에 빠진 제이.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기억을 지웠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자아를 상실한채 의미없는 생활을 하는 케이. [맨 인 블랙 2]는 제이와 케이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그들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입니다.
[맨 인 블랙 3]는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달 감옥에 갇혀 있던 최악의 악당 보리스(제메인 클레멘트)가 탈옥하고 과거로 가서 케이를 죽음으로 내몰자 제이는 케이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몸을 던집니다.
영화의 명목 상 보리스의 악행을 막고 외계 악당의 침략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제이는 과거로 갑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제이와 케이의 캐릭터에 대해 좀 더 깊숙히 파고 들기위한 여정입니다. 케이는 원래부터 그렇게 무뚝뚝했을까요? 케이가 제이를 MIB 요원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이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맨 인 블랙 3]는 40년 전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제이와 케이의 캐릭터와 특별한 인연을 심도깊게 그려냅니다. 이로써 그들의 관계는 그저 평범한 파트너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도 같은 특별한 파트너가 됩니다.
[맨 인 블랙 3]가 10년 만에 귀환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맨 인 블랙]에서는 지구에 수천, 수만의 외계인이 살고 있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관객을 즐겁게 했고, [맨 인 블랙 2]에서는 정체를 밝힐 수 없는 특수요원의 외로운 삶과 사랑에 카메라를 들이댔으며, [맨 인 블랙 3]에서는 SF 영화사상 최고의 콤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케이와 제이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그들의 파트너쉽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 여행의 재미를 잡아내다.
어느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가 시간 여행 소재의 영화에 흠뻑 빠져 들었던 것은 [빽 투 더 퓨쳐]를 통해서였습니다.(지금도 그 영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마티(마이클 J. 폭스)가 괴짜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의 타임머신을 통해 30년 전 과거로 가면서 벌어지는 소동담을 그린 [빽 투 더 퓨쳐]는 3부까지 만들어지며 영화광에 막 입문하려던 저를 열광시켰었습니다.
[빽 투 더 퓨쳐]를 통해 느낀 시간 여행 소재 영화의 매력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과거에서의 약간의 변화가 현재와 미래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한 과정의 치밀함을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시간 여행 소재의 영화가 치밀함으로 무장하여 시간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맨 인 블랙]은 외계인들이 모습을 감춘채 이미 인간들과 함께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1편의 아이디어는 더 이상 독특하지도 신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맨 인 블랙 3]는 시간 여행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꺼내듭니다.
물론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가 [맨 인 블랙 3]의 주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케이와 제이의 특별한 인연을 그려내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맨 인 블랙 3]가 그려낸 시간 여행은 [빽 투 더 퓨쳐]와 같이 치밀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변화가 현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도 단지 케이의 죽음으로 지구 방어막 구축이 되지 않아 외계인들이 침략을 한다는 커다란 틀 하나로 '상황 끝'입니다.
하지만 시간 여행... 그 자체만으로도 [맨 인 블랙 3]의 재미는 풍성해집니다. [맨 인 블랙 2]가 실망스러운 흥행을 보인 것은 캐릭터만 강화했을 뿐, 기존의 아이디어에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맨 인 블랙 3]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끌어 들임으로서 기존 시리즈가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축한 것입니다.
악당 보리스가 좀 더 강했다면...
하지만 [맨 인 블랙 3]가 무조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맨 인 블랙 3]가 4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케이와 제이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하는 동안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보리스는 그저 들러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마치 [양들의 침묵]의 전설적인 살인마 하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를 연상시키며 무시무시한 등장을 했던 보리스. 그는 케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맨 인 블랙 3]의 맹활약을 예고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역할은 점점 축소됩니다. 보리스가 과거로 가서 과거의 자신을 만나 힘을 합쳐 케이를 제거하는 과정은 생략되었고, 그 대신 보리스로 인하여 바뀐 현재를 깨달은 제이가 과거로 돌아가 보리스의 음모를 막는 과정은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다시말해 보리스의 활약은 철저하게 생략된 셈입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보리스는 영화의 처음 등장과는 달리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악당이 되어갑니다. 자신의 활약상은 생략되고, 오히려 케이와 제이에 의한 굴욕담만이 그려지니 그의 위상이 흔들릴 수 밖에요.
보리스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맨 인 블랙 3]가 잃은 것은 꽤 많습니다. 일단 영화의 긴장감이 사라졌습니다. 악당이 강하면 강할수록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더욱 긴장하게 됩니다. 그러한 긴장감은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하지만 보리스가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보니 영화를 보면서도 케이와 제이가 질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그들의 활약상과 보리스의 예정된 패배를 감상할 뿐이죠.
만약 보리스가 좀 더 강하고 영악한 캐릭터였다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외계 종족을 암살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과거로 가서 케이를 암살했듯이 MIB 요원이 과거로 와서 자신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외계 종족이 암살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리스는 그렇게 강하지도, 영악하지도 않은 악당일 뿐이었습니다.
[맨 인 블랙 3]는 분명 과거로 가서 케이와 제이의 아주 특별한 인연을 설명하며 두 캐릭터를 더욱 돈독하게 강화시켰습니다. 그것은 분명 앞으로의 시리즈 진행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하지만 [맨 인 블랙 3]만 놓고본다면 빈약한 악당 캐릭터로 인한 긴장감 부재는 [맨 인 블랙 3]의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릅니다. [맨 인 블랙 2]의 실망스러운 흥행 스코어가 [맨 인블랙 3]가 제작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소모시켰습니다. 만약 [맨 인 블랙 3]가 실망스러운 흥행을 기록한다면 [맨 인 블랙 4]는 또 언제쯤 볼 수 있을런지... 사실 저는 그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이 매력적인 파트너를 다시 만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부디 오래 걸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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