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신태라
주연 : 강지환, 성유리, 이수혁, 신정근, 박정학
개봉 : 2012년 5월 30일
관람 : 2012년 5월 3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코미디 영화로...
요즘 정말 나이를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딱 1년 전에 제 몸의 한계를 느끼고 소주를 끊었습니다. 소주만 마시면 필름이 끊겨서 '이거 위험하다' 라는 위기 의식을 느꼈거든요. 그 이후에 어른들이 소주를 권하는 자리만 아니라면 술 자리는 맥주로만 버텼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블친들과의 만남에서 조금 급하게 맥주로 달렸더니 금새 탈이 나더군요. 예전에는 맥주 만큼은 밤새 마셔도 끄덕이 없었는데, 이젠 맥주도 과음하면 안되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월요일에는 위염으로 끙끙 앓았고, 그 이후부터는 머리가 띵하며 묵직한 느낌이 들었고 온 몸에 힘이 없었습니다. 밤새워 술 마시고나서 아픈 것이라 구피한테 아프다고 칭얼거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또 보고 싶은 영화는 왜 이리도 많은지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화요일에는 [맨 인 블랙 3]를, 그리고 목요일에는 [차형사]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저는 컨디션이 안좋으면 극장에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컨디션이 안좋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온전히 그 재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 중에 두 편의 영화를 본 이유는 한동안 제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보고 싶은 영화를 모두 놓치고 나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컨디션이 더욱 악화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들어서 제가 선택한 영화들은 심각한 주제의 영화보다는 가벼운 영화들입니다. [맨 인 블랙 3]도 그러했고,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아닌 [차형사]를 본 어제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미디 영화의 가벼운 웃음으로 최악의 제 컨디션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고자 하는 의도에 의한 영화 선택인 셈입니다.
강지환의 살신성인 덕분에 조금 웃겼다.
맘껏 웃기위해 극장을 찾긴 했지만 솔직히 [차형사]를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코믹 코드가 너무 뻔하게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잘 생긴 얼짱 배우 강지환을 못생긴 뚱보 형사 차철수로 변신 시킨 이후, 그가 패션쇼에 잠입하기 위한 모델 되기 프로젝트를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 [차형사]는 그게 전부처럼 보였습니다.
영화의 초반 코믹 코드도 그러한 제 예상에 맞게 뻔하게 진행됩니다. 뚱보에 지저분하기까지 한 차철수의 엽기 행각은 소소한 웃음을 안겨주지만 워낙 예상 가능한 웃음이다보니 제가 원했던 시원한 웃음을 안겨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으로도 족할 것입니다. 가끔 어디에서 웃어야할지 난감한 코미디 영화를 만나곤 하는데 그렇게 웃기지 않는 코미디 영화를 보고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욱 쌓여 버립니다. 그러나 [차형사]는 최소한 소소한 웃음만이라도 제게 안겨줬으니 가벼운 웃음을 위해 극장을 찾은 제게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됩니다.
물론 그 웃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웃음 자체가 강지환의 코믹한 변신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배우의 원맨쇼에 의한 웃음은 '개그 콘서트'와 같은 짥막한 코미디 프로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최소 1시간 30분을 유지시켜야 하는 영화에는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차형사]도 그러한 점을 파악했는지 차철수의 엽기 행각을 그리 오래 끌지는 않습니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패션쇼의 모델로 참가하게 되면서 차철수는 금새 몸짱 배우 강지환으로 돌아옵니다. 차철수의 D라인 몸매가 몸짱으로 변신하는 순간 강지환의 코믹한 연기 변신에 의한 웃음은 그 힘을 잃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차형사]는 코믹 코드에 변화를 시도합니다. 차철수와 패션 디자이너 고영재(성유리)의 러브 라인을 통한 로맨틱 코미디가 바로 그것이죠. 차철수와 고영재가 만나면서 [차형사]는 두 남녀의 어긋난 첫 만남, 티격태격하며 정이 들고, 결국 서로 사랑하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전개를 택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변화는 [차형사]의 코믹 코드를 급속도로 느슨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3단 콤보 차량 추격씬
차철수와 고영재의 조금은 식상한 러브 라인이 등장하면서 저는 슬슬 [차형사]에 실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애초부터 커다란 웃음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 초반에 소소한 웃음만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면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극장까지 찾은 제 노력이 너무나도 아까울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차형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웃음을 제게 안겨주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웃고 싶어? 그럼 마음껏 웃어!'라며 당찬 선언을 하는 것만 같았던 의외의 웃음은 놀랍게도 차량 추격씬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세번이나...
첫번째 웃음 폭탄은 차철수와 김선호(이수혁)의 매니저인 권실장 사이의 차량 미행씬입니다. 이 장면이 제게 의외의 웃음을 준 것은 차철수도, 권실장도 서로를 미행을 한다는 점입니다. 누가 누구를 미행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미행하는 것이니 그 미행이 잘 될리가 없죠. 이 바보같으 차량 미행씬은 [차형사]에 실망하려고 하던 저를 시원한 웃음의 세계로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번째 웃음 폭탄은 탁대표(박정학)의 음모로 인하여 마약을 마시게된 차철수와 역시 마약에 취한 권실장의 차량 추격씬입니다.
마약의 환각에 취한 이들의 차량 추격은 마약에 취한 차철수와 권실장의 코믹한 표정과 그러한 이들의 차량 추격에 당혹스러워하는 탁대표의 황당한 표정이 맞물리면서 제게 시원시원한 웃음을 안겨줬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웃음 폭탄은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진 버스와 트럭의 추격씬입니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코미디의 영화의 웃음이라는 것이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버스와 트럭 추격씬은 색다른 웃음을 제게 안겨줬습니다.(버스의 와이퍼가 그런 기능이 있을줄이야...)
[차형사]의 포스터에 [7급 공무원]을 언급하던데... [7급 공무원] 역시 뻔한 설정에 기발한 액션씬으로 웃음을 안겨줬었습니다. [차형사]는 과연 [7급 공무원]을 포스터에 언급할만한 영화였습니다.
원조 요정 성유리 화이팅
[차형사]는 영화 전체적으로 놓고 본다면 스토리 전개도 허술한 편이고, 차철수와 고영재의 러브 라인은 로맨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발한 차량 추격씬 세 장면만으로도 제가 극장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유리라는 배우의 존재도 반가웠습니다. 90년대 후반 '핑클'이라는 여성 그룹으로 데뷔한 성유리. 사실 저는 '핑클'보다는 라이벌인 'S.E.S.'를 더 좋아했던 편이라서 성유리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수인지 배우인지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어색한 연기도 싫어하는 편이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차형사]를 보며 성유리의 연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가볍게 웃자고 찾은 극장이었기에 성유리의 어색한 연기가 제 웃음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너그럽게 그녀의 연기를 용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성유리는 잘 해냈습니다. 비록 차철수와의 러브 라인에 의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재미 이끌기에는 실패했지만 그녀의 존재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약간의 푼수끼가 있으면서, 도도하고, 학창 시절부터 가져온 차철수에 대한 속 마음을 들킬까봐 안절부절하면서, 자신의 첫 패션쇼에 대한 기대감에 차있는...
그녀의 연기가 완벽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수준도 아니었고, 영화의 가벼운 분위기와도 적당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특히 90년대 후반 걸 그룹에 'S.E.S'와 '핑클'이라는 원조 걸 그룹에 환호했던 20대 시절의 제가 언뜻 생각나서 그녀의 등장이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비록 맥주 몇 병만 마셔도 며칠 동안 끙끙 앓고 있는 30대 후반(아직 40대 아님 -_-)이지만 당시의 저는 밤새 놀아도 끄덕이 없었던 건장한 청년이었거든요. 원조 요정 성유리가 저렇게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며 '나도 아직 한창이다.'라는 묘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차형사]를 보고나니 제 컨디션이 조금은 회복된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이 영화에 합격을 주고 싶습니다.
가끔은 탄탄한 구성의 영화보다는...
조금은 허술하지만 유쾌한 영화가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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