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루퍼트 샌더스
주연 : 샤를리즈 테른, 크리스틴 스튜어트, 크리스 헴스위스
개봉 : 2012년 5월 30일
관람 : 2012년 6월 4일
등급 : 12세 관람가
[백설공주] VS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지난 5월 3일에 개봉한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에 이어 새로운 '백설공주' 이야기인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지난 주에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개봉 첫 주 5위라는 처참한 성적과 더불어 '스토리가 부실하다.'라는 혹평을 받고 말았습니다.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를 나름 재미있게 본 저는 예고편의 스펙타클한 비주얼로 개봉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을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워낙에 이 영화에 대한 혹평이 많아 영화에 대한 기대도를 약간 낮췄기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나름 만족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물론 100% 만족을 했다고 하기엔 영화의 후반부 뒷심이 너무 부족했지만...
본격적으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영화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백설공주]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원작 동화 '백설공주'에 취한 각기 다른 방식부터 짚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백설공주'를 영화화하면서 동화의 영화화에 가장 먼저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백설공주]는 동화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린 관객들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전체 관람가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 자체가 워낙 음울하고 엽기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는데 타셈 싱 감독은 오히려 그러한 부분들을 완화시키고 캐릭터들을 코믹화함으로서 영화에 대한 부담감을 줄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타셈 싱 감독 특유의 원색의 화려한 색체를 입힘으로서 [백설공주]는 마치 애니메이션같은 아름답고 코믹한 영화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루퍼트 샌더스 감독은 '백설공주'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원작 동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음울하고 엽기적인 캐릭터들을 더욱 강화했고, 여기에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입힘으로서 동화의 영화화가 아닌,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판타지 영화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을 완성해 놓았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동화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관을 구축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그로 인한 재미를 획득했지만, 그로인한 한계에도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판타지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가 흥행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할리우드는 앞다퉈 판타지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판타지 영화라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장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판타지 영화의 성공에는 매력적인 세계관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판타지 영화들은 판타지 영화라는 허울아래 새로운 세계관 구축은 소홀히 하고 대신 특수효과로 덕지덕지 치장한 스펙타클로 승부한 결과 흥행 실패라는 쓴 맛을 보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어떠한 세계관을 구축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그 어떤 세계관도 구축하지 못한채 절대악을 물리칠 운명을 타고난 소녀의 성장담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만 늘어 놓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세계관은 영화의 초반보다는 후반에 가면 갈수록 그 한계점을 드러냅니다. 특히 스노우 화이트(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캐릭터는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세계관 사이에서 그저 절대악인 이블퀸(샤를리즈 테른)을 무찌를 운명을 지닌 소녀라는 단순한 설정 안에 갇혀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일라이저 우드)가 보여준 섬세한 캐릭터 설정이 부족한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스노우 화이트에게서 자꾸만 [트와일라잇]의 벨라가 겹쳐 보였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관은 원작 동화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새로움을 창조하지 못했으니 원작 동화의 세계관이라도 빌려 쓰고자 하는 루퍼트 샌더스 감독의 안일한 생각이 낳은 결과입니다.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는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면서도 '백설공주'를 대표할 만한 장면들을 과감히 포기했었습니다.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다보니 원작의 중요한 부분들까지 끼워 넣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왕비가 거울에게 누가 제일 이쁜지 묻는 장면과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가 죽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원작 동화의 중요 부분을 어거지 섞인 설정아래 영화 속에 삽입시켜 놓습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쓰러진 스노우 화이트가 진실된 키스를 받고 부활하는 장면입니다. 비록 백마탄 왕자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굳이 이 영화에 그러한 장면이 필요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아무 연관성 없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캐릭터 만큼 부자연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블퀸 캐릭터가 영화의 초반 재미를 이끌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원작 동화를 판타지 영화로 탈바꿈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억지스럽게 '백설공주'의 설정을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스노우 화이트의 대 반격은 그녀의 억지스러운 부활로 인하여 어색해져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두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가 만족스러웠습니다. 판타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은 부실하고, 원작 동화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하여 후반부의 설정이 억지스러웠지만 최소한 중반부까지는 '우와! 이 영화 물건인데...'라는 감탄 속에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제게 만족감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첫째가 이블퀸이라는 캐릭터가 상상 이상으로 잘 구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에서 왕비는 그저 악당일 뿐입니다. '백설공주'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시기한 나머지 그녀를 죽이려 하는 나쁜 계모인 것이죠. 그것은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왕비(줄리아 로버츠)를 우스꽝스러운 허영심 덩어리로 표현했는데 그 이상의 캐릭터를 부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스노우 화이트의 캐릭터 보다도 오히려 이블퀸의 캐릭터를 더 섬세하게 구축해 놓습니다. 그녀는 비록 절대악이지만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피해자였던 것입니다.
왜 왕비는 그토록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을 했을까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그녀가 어렸을 적에 남성들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 때문에 늙은 왕비가 궁 밖으로 쫓겨 난 것을 목격한 그녀는 자신이 늙으면 그 늙은 왕비와 같은 처지가 될 것임을 직감한 것입니다. 그녀에게 권력은 아름다움이요, 젊음이었습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여성인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었으며, 그녀는 그 권력을 이용하여 왕을 죽이고, 왕국을 차지합니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에서 이블퀸은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끊임없이 불안해합니다. 아무리 마법의 힘이라도 젊음이 영원히 계속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녀는 스노우 화이트가 가진 젊음과 아름다움을 시기하고 경계합니다. 그러한 이블퀸은 샤를리즈 테른이라는 명배우에 의해 완벽하게 구축됩니다.
아마도 한동안 이블퀸보다 매력적인 악녀 캐릭터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부실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이블퀀의 캐릭터 구축만큼은 완벽하게 함으로서 부실한 세계관을 보충해 나갑니다.
매력적인 비주얼... 예고편이 전부가 아니었다.
제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에 대체적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두번째 이유는 예고편에서부터 보여준 심상치않은 영화의 비주얼 덕분입니다.
사실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의 비주얼 역시 완벽했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자신의 특기를 잘 살려내 원색의 아름다운 화면을 영화 속에 구축해 놓았고, 그렇게 아름다운 화면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의 비주얼도 좋았지만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비주얼이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둠의 숲에서 보여준 그 압도적인 장면들은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으며, 요정의 숲에서 보여준 그 아름다움은 마치 '나도 타셈 싱 만큼은 한다.'라며 루퍼트 샌더스 감독이 관객 앞에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블퀸이 보여준 사악한 마법의 장면 역시 시각적으로 완벽했는데, 특히 검은 유리로 만든 듯이 보이는 악마의 군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은 아디다스, 나이키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브랜드 CF를 도맡아온 광고 감독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자체는 그 완벽한 비주얼 만으로도 최소한 제겐 영화 관람비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에 90%의 만족과 10%의 실망을 느꼈습니다. 이블퀸 캐릭터를 잘 구축했고, 영화 내내 압도적인 비주얼로 저를 사로 잡은 이 영화. 하지만 부족한 세계관의 한계는 영화의 후반부를 발목 잡음으로서 뒷심 부족이라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스토리가 부실하다.'라는 다른 분들의 아쉬움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세계관이 부족한 판타지 영화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단점이기 때문입니다. '백설공주'를 영화화하면서 좀 더 세삼하게 판타지의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했더라면 정말 멋진 영화가 탄생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두고 두고 남는 영화였습니다.
90% 만족했다고 해도 이 영화의 부족한 10%는 너무나도 크게 보인다.
이 영화는 3부작으로 기획이 되었다고 하는데
다음번에는 좀 더 세밀하게 세계관을 구축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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