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리들리 스콧
주연 : 누미 라파스, 마이클 패스벤더, 샤를리즈 테른
개봉 : 2012년 6월 6일
관람 : 2012년 6월 7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다윈의 진화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물음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전지전능한 신의 인간 창조설이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설을 주장하면서 인류 기원의 역사는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당시에는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다윈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소리이며 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윈의 진화설은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해답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 다윈의 진화설을 배웠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류의 기원은 진화에 의한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주입식 교육의 놀라운 성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차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인간의 기원은 단순히 진화에 의한 것일까?' 라는 의문은 어쩌면 제가 기발한 상상력에 기반을 둔 SF, 판타지 영화에 푹 빠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5월 25일 블친과의 만남에서 저는 술에 취해 제가 생각하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침이 튀겨가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누군가의 상상력에, 제 상상력을 조금 가미한 SF소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제 가설은 신의 인간 창조설과 다윈의 진화설을 적절하게 섞은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들이 말하는 성경의 일부분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영적인 존재가 아닌 고도의 과학 문명을 가진 외계인일 것이라는 생각만 다를 뿐입니다. 고도의 과학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지구에 약간의 인위적 실험을 가미하여 인간을 지구의 다른 생명체와는 다르게 지적 생명체로 급속도로 진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 SF소설적인 가설의 기본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 인간의 기원에 대한 제 터무니없는 상상력에 부채질을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프로메테우스]입니다. 포스터에서부터 '인류 기원의 충격적 비밀이 밝혀진다!'라고 당당하게 밝힌 이 영화. 그래서일까요? 저는 [프로메테우스]에 완벽하게 압도당해서 2시간에 달하는 이 영화의 상상력에 흠뻑 매료되었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의 최후 (이후 스포 포함)
지금부터 제가 할 영화 이야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내용과 이 영화에 대한 제 개인적인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과 영화에 대한 자신과 다른 의견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시는 분이라면 가급적 제 글을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먼저 [프로메테우스]의 오프닝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지구의 광할한 자연을 담아내던 카메라는 거대한 폭수 아래에서 멈춰섭니다. 하늘을 뒤덮은 외계 우주선. 그리고 그 밑에 선 인간을 닮은 외계인. 외계 우주선이 하늘 위로 사라지고 지구에 홀로 남은 외계인은 병 안에 든 액체를 마시고 괴로워하며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의 분해된 몸이 떨어진 폭포 아래에서 DNA가 재조합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처음부터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관객들이 영화에 집중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제시된 이 놀라운 오프닝씬은 우리 인간이 외계인의 DNA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영화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프로메테우스'인 것은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타이탄족 신입니다. 그는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인간에게 선사하지만 그 죄로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간장을 독수리에게 뜯어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간장은 밤 사이에 원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의 고통은 헤라클레스에 의해 해방되기까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에서 오프닝씬에 등장하는 외계인과 '프로메테우스'를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선사했던 프로메테우스처럼, 오프닝씬의 외계인은 인간에게 자신의 DNA를 선사한 것이죠. 물론 그로 인하여 자신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영화엔 헤라클레스와 같은 구원의 존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새로운 의문점이 남습니다. 과연 외계인이 지구에 자신의 DNA를 남긴 것이 의도된 것일까요? 아니면 의도하지 않은 사고에 의한 것일까요? 만약 의도된 것이라면 외계인들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 다니며 자신을 희생시켜 그들 종족의 DNA를 남기고 있는 것이며, 의도하지 않은 사고에 의한 것이라면 죄를 짓고 지구로 유배된 외계인이 사형 집행을 하는 와중에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지구에 외계인의 DNA가 재조합된 것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제 개인적인 해석은 뒷 부분에서 계속하겠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어야만 했다.
이 의문의 장면을 뒤로 하고 [프로메테우스]는 가까운 미래로 무대를 옮깁니다. 고대 문명을 조사중인 엘리자베스 쇼(누미 라파스)와 찰리 할러웨이(로건 마샬 그린)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메소포타미아, 아즈텍, 마야 등 고대 문명에서 발견된 동일한 패턴의 별자리 지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이를 단서로 탐사대가 꾸려지고 우주선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기원을 찾는 거대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것은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입니다. 도대체 왜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일까요?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왜 그토록 그 해답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물음은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에게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거대 기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피터 웨이랜드. 하지만 그는 이미 너무 늙어 죽는 날만 바라보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 그에게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인간을 창조한 존재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인간에게 생명을 줬다면 죽음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희망이 인류 기원을 찾는 이 거대한 여행에 투자하고 동참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인류 기원의 대해서 끊임없이 해답을 찾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하게 했고, 그러한 질문은 결국 인류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이 가득한 지상 최초의 여성입니다. 그녀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우스의 음모였습니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 것에 대한 제우스의 복수인 것 입니다.
결국 판도라는 왕성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절대 열지 말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립니다. 그 결과 모든 재앙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빠져 나옵니다. 물론 희망과 함께...
인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재앙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프로메테우스' 호의 사람들은 낯선 행성에서의 끔찍한 생명체에게 차례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의 호기심이 재앙을 불러 일으킨 셈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입니다. 그러한 호기심은 인간에게 재앙을 주기도 했지만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호기심이 없었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인 데이빗(마이클 패스번더)은 그러한 인간의 호기심이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하긴 그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인간을 창조한 외계인(이 영화에선 엔지니어라 통칭합니다.)이 자신들이 창조한 인간을 좋게만 대할 것이라는 생각자체가 잘 못된 생각입니다. 변변한 무기도, 군인도 싣지 않은 '프로메테우스' 호의 비극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창조물은 창조자를 넘어서려 한다.
[프로메테우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비커스(샤를리즈 테른)도, 여전사의 맹맥을 이을 듯이 보이는 엘리자베스도 아닙니다. 바로 안드로이드인 데이빗입니다.
고도의 과학 문명을 가진 엔지니어가 인류를 창조했듯이 인류는 과학 문명을 발전시켜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냅니다.
데이빗은 '그들은 왜 인간을 창조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왜 저를 창조해냈나요?' 이에 대한 찰리의 대답은 '능력이 되니까.'입니다. 매우 거만한 대답입니다. 하지만 그런 찰리는 데이빗에 의해 오히려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데이빗은 참 의문스러운 캐릭터입니다. 그가 찰리를 괴물로 만들고 엘리자베스의 몸 안에 괴물의 씨앗을 심어둔 것을 보면 회사에서의 모종의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이리언]에서도 회사는 가공할만한 무기인 '에이리언'을 지구로 들이기 위해 우주선의 승무원들을 이용합니다. 데이빗의 의문의 행동은 그러한 음모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데이빗을 인간이 아니라고 얕보는 찰리에 대한 복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감정이 없는 로봇이면서 언뜻 치명적으로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 데이빗. 그는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어쩌면 그 스스로 진화하여 '에이리언'을 이용하여 인류를 멸망시키고, 인간의 위에 군림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데이빗이 했던 대사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모든 자식들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죠.'입니다. 어쩌면 그는 인류의 멸망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때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수 많은 SF영화에서 인간이 창조한 기계 문명과 인류의 전쟁을 그렸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혹은 찰리의 말처럼 창조할 능력이 되니까 로봇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인간을 닮았으면서 인간이 가지지 못한 수 많은 장점을 가진 그들은 영화에서처럼 인류를 위협할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혹시 인류를 창조한 엔지니어들이 괴물을 만들어내 지구로 보내서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그들은 과학 문명을 고도로 발전시키고 있는 인간들이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아들처럼 자신들을 뛰어 넘어 생존을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보니 [에이리언] 시리즈에서도 안드로이드는 참 많은 역할을 했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인류를 창조해낸, 그리고 인류가 창조해낸 것들에 대한 폭 넓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인류를 없애려 했을까?
자! 이제 처음의 의문점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엔지니어에 의한 인류 창조는 의도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의도적이지 않은 사고에 의한 것을까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에는 [프로메테우스]는 너무 짧습니다. 이 영화의 속 편이 제작될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리들리 스콧 감독은 [프로메테우스]에서 그러한 관객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생각은 없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의도적인 것이라면 너무 많은 의문점들이 따라옵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인류를 창조해야할 만큼 절박한 그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게 힘들게 창조해놓고 왜 소멸시키려 했던 것일까? 그러나 의도적이지 않았던 사고에 의한 것이라면 그러한 의문점들은 풀립니다. 지구에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들과 같은 DNA를 가진 생명체를 확인한 엔지니어들은 인류에 대한 위험성을 깨닫고 인류가 과학 문명을 더 발전시키기 전에 멸종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점이 남습니다. 인류의 고대 문명에 남겨진 별자리 지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엘리자베스와 찰리는 그것을 초대장이라 말했지만 혹시 인간의 호기심을 이용한 함정은 아닐까요? 인류가 별자리를 해석하고 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과학 문명을 지닌 것을 확인한 후에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던 함정말입니다. 그 날이 올때까지 엔지니어들은 인류를 멸망시킬 무시무시한 괴물을 양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거 [프로메테우스]를 본 후 어제 밤을 새워 이 영화의 상상력에 흥분하며 잠을 못이뤘었는데,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영화에 대한 모든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네요.
[프로메테우스] 한 편만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더욱 커다란 비밀들이 수도 없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하긴 애초에 인류 기원의 비밀을 찾는 여정이 그렇게 쉬울리가 없습니다.
[프로메테우스] 한 편가지고는 제가 해낸 이 영화의 개인적 해석은 허점 투성이에 불과합니다. 이거 속 편이 만들어져서 제가 가진 이 모든 궁금증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다면 리들리 스콧 감독을 끝까지 미워할 것입니다.
P.S. 많은 이들이 [프로메테우스]가 [에이리언]이 프리퀼이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아니다.'라고 딱 잘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는 [에이리언]의 프리퀼을 기다리는 관객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나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멋진 '에이리언'의 탄생으로 [에이리언]의 프리퀼을 기다리는 관객의 기대감을 채워줬습니다.
인류 기원을 찾는 엘리자베스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 여정이 멈추지 않는 한 나의 여정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판도라의 상자이더라도, 마지막 남은 희망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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