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브룩 엘 메크리
주연 : 헨리 카빌, 시고니 위버, 브루스 윌리스, 베로니카 에체구이
개봉 : 2012년 5월 17일
관람 : 2012년 5월 21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 가족이 위험하다.
[콜드 라잇 오브 데이]를 봤습니다. 원래 계획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려고 했는데 구피가 '당신 아내가 여기 있는데 왜 남의 아내의 모든 것이 보고 싶냐?'고 눈을 흘기는 바람에 포기. 결국 구피 취향의 영화를 맞추다보니 [콜드 라잇 오브 데이] 밖에 볼 영화가 없더군요.
사실 저도 [콜드 라잇 오브 데이]가 싫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들의 전쟁]을 통해 새로운 액션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헨리 카빌이 주연을 맡았고,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와 [에이리언]의 시고니 위버라는 구세대 액션 스타가 각각 조연와 악역으로 헨리 카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액션 영화의 흔한 광고 카피인 '액션의 세대 교체'라는 문구가 저절로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콜드 라잇 오브 데이]에 대한 전체적인 평을 쓴다면... 일단 굉장히 평범한 액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눈에 띄는 액션씬도 없었고, 배우들의 매력은 평범했으며, 사건의 짜임새는 엉성했습니다. 그냥 킬링타임용 액션영화로 무난하다 정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콜드 라잇 오브 데이]에는 그러한 평범한 속에서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에 담겨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윌(헨리 카빌)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CEO입니다. 하지만 회사는 부도 위기에 놓여있고, 그러한 와중에 스페인에서의 가족 여행에 참가하게 됩니다. 조금은 서먹한 아버지 마틴(브루스 윌리스)과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남동생의 애인까지.
하지만 윌은 이러한 가족 여행을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당장 머리 속에는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 걱정이 가득할 뿐이니까요. 결국 윌은 가족 여행에서 잠시 이탈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 가족들이 사라집니다. 이제 윌에게 회사 걱정을 할 여유 따위는 사라집니다. 이 낯선 땅에서 위기에 처한 가족들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윌에게 아주 명확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가족을 구하라!' 평범한 중소기업 CEO인 윌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닙니다. 그리고 여기에 많은 이들이 윌을 도와주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영화는 말합니다. '아무도 믿지마라. 가족이 아니라면...'
가족이 아니라면 아무도 믿지마라!
스페인이라는 낯선 땅에서 가족의 실종. 윌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스페인 경찰입니다. 하지만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낀 윌은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낯선 땅의 경찰은 믿을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 셈입니다.
그 다음으로 윌이 찾은 곳은 조국인 미국 대사관입니다. 하지만 미국 대사관에서조차 윌은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국가의 안보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윌의 가족의 실종은 신경쓰기도 귀찮은 아주 작은 사건에 불과하기 떄문입니다.
그런 윌에게 도움의 손을 뻗친 인물은 마틴의 회사 동료 캐락(시고니 위버)입니다. 캐락은 마틴과의 오랜 친분을 내세워 윌에게 다가서지만 그녀 역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윌은 스페인에서 완전히 홀로 고립된 것입니다.
여기에 윌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은 마틴의 죽음입니다. CIA요원으로 자신의 정체를 가족들에게 숨겼던 마틴. 어쩌면 윌이 이 낯선 땅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혈육입니다. 그런데 그는 영화의 초반에 저격수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마틴의 죽음과 함께 조금은 느슨했던 영화의 분위기는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위기에 빠진 윌에게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가족 외에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스페인에서의 윌에게 생긴 새로운 동료 루시아(베로니카 에체구이). 그런데 그녀는 다름아닌 윌의 배 다른 동생입니다. 다시말해 윌이 몰랐던 가족인 셈입니다.
낯선 땅에서 위기에 빠진 윌에게 루시아라는 미모의 여동료가 생기는 것까지는 액션 영화라면 매우 평범한 설정입니다. 근육질의 남성 캐릭터 혼자 스크린 속을 종횡무진 활약하는 것은 남성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영화 관계자들은 억지스러운 설정을 넣어서라도 미모의 여성 캐릭터를 꼭 등장시켜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미모의 여성 캐릭터의 위기 속에 피어난 러브 라인은 액션 영화에서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구실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콜드 라잇 오브 데이]는 그러한 액션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윌과 루시아를 가족으로 설정합니다. 윌과 루시아의 뻔한 러브 라인이 형성될 것이라 생각했던 저는 루시아가 윌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설정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족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믿지마라!'라는 전제 조건을 이렇게 우직하고 충실히 따르는 영화는 정말 처음입니다.
가족만이 나의 힘!!!
[콜드 라잇 오브 데이]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가족끼리 손을 잡고 가족이 아닌 이들의 위협을 물리치는 윌의 모험담입니다.
이 영화는 그 외의 모든 설정을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이스라엘의 기밀 서류의 존재는 그저 미끼에 불과합니다. 마틴이 캐락에게 속아서 이스라엘의 기밀 서류를 빼돌린 것은 이스라엘 정보부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지지만 그 속에 담긴 의혹, 음모는 생략된채 마무리됩니다.
캐락은 과연 돈을 위해서 단독 행동을 한 것일까요? 미국 정부는 캐락의 단독 행동을 몰랐던 것일까요? 캐락이 이스라엘의 기밀 서류를 넘기려고 했던 단체는 어디이며. 그 서류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윌과 캐락의 부하인 고먼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고(고먼은 죽으면서 '내가 너에게 죽게 되다니...'라며 썩소를 날립니다.) 마틴과 캐락 사이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영화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야.'라며 애써 무시합니다.
어쩌면 마브룩 엘 메크리 감독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곁가지들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도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더욱 풍성하게는 했을 것입니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가족 이외의 그 누고도 믿을 수 없는 윌의 모험담에 이 영화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다보니 [콜드 라잇 오브 데이]는 매우 단순해졌습니다.
윌이 가려진 진실과 음모를 밝혀내는 장면이 나올 법도 한데 그까짓거 생략하고, 윌의 가족과 캐락에 얽힌 이야기도 영화의 캐릭터 구축을 위해 한번쯤은 설명이 될 법도 한데 역시 생략됩니다. 그저 가족을 구하기 위한 윌이 무조건 달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가득 채워져 있고, 윌과 루시아가 가족이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특이할만한 구석을 찾을 수가 없는 영화로 전락하고 맙니다.
'가족만이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 이 영화. 잠시라도 윌의 가족이 아닌 다른 캐릭터, 혹은 사건의 구성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고니 위버의 악역이 힘겨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콜드 라잇 오브 데이]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캐락을 연기한 시고니 위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영화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 영화에서 애초에 거의 우정 출연 정도의 분량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초반에 죽어버리는 그의 존재가 당혹스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캐락은 다릅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윌과는 다른 한 축을 맡아야 하는 악당입니다. 악당이 강하고 매력적일수록 그에 맞서는 주인공이 돋보인다는 사실을 이미 수 많은 액션 영화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시고니 위버의 악역을 기대했습니다.
시고니 위버가 누굽니까?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우주 최강의 괴물 '에이리언'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웠던 여전사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워킹 걸]에서 매력적인 악역을 연기한 경험도 있습니다. 관록의 여배우 시고니 위버가 있었기에 저는 브루스 윌리스가 우정 출연 정도의 분량만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콜드 라잇 오브 데이]를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의 캐릭터는 철저하게 생략되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돈을 위한 단독 행위였는지, 아니면 CIA의 명령에 의한 행동이었지만 외교적 문제에 직면한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인지...
그리고 윌을 향한 그녀의 표정에서 윌의 가족에 대한 캐락의 애증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 어디에도 캐락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후반에 미친 듯이 폭주하는 캐락의 캐릭터에서 섬뜩함을 느껴야 할텐데... 조금은 후덕해진 그녀의 외모 탓에 섬뜩함보다는 '저 아줌마 도대체 왜 저래?'라는 의문만 남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에서는 최악의 악당들만 하는 짓거리인 주저리 주저리 떠들다가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합니다.
요즘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도 많이 세련되었던데, [콜드 라잇 오브 데이]에서의 캐락은 요 근래 봤던 그 어떤 악당 캐릭터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에이리언]의 전설적인 여전사 리플리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마브룩 엘 메크리 감독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콜드 라잇 오브 데이]는 오로지 가족만을 외치는 독특한 설정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에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액션 영화였습니다.
가족!!! 그래, 분명 가족은 우리의 힘이다.
하지만 가족만으로 영화를 구성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것 아닌가?
가족이 아닌 이들의 사정도 귀를 기울여야 진정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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