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다크 섀도우] - 여자가 한을 품으니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더라!

쭈니-1 2012. 5. 14. 11:37

 

 

감독 : 팀 버튼

주연 : 조니 뎁, 에바 그린, 미셸 파이퍼, 벨라 헤스코트

개봉 : 2012년 5월 10일

관람 : 2012년 5월 1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영화 이야기는 나의 본능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5월 10일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 무려 2년 만에 개봉하는 팀 버튼 감독의 신작 [다크 섀도우]가 개봉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약속을 뒤로 미루고 구피와 함께 극장으로 달려갔던 그날 밤.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흡족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다크 섀도우]는 많은 분들이 만족감을 드러낼만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바나바스(조니 뎁)와 안젤리크(에바 그린) 의 과거 장면은 오프닝에서 바나바스의 나래이션으로 짧게 끝내버려 아쉬웠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TV 시리즈에 익숙한 미국 관객이라면 과거씬의 생략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TV 시리즈를 접한 적이 없는 국내 관객에겐 과거씬의 생략은 분명 아쉬움이 남습니다.

너무 많은 캐릭터들이 난무하다보니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그리 크지 않았고, 분명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대충 소모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습니다. 스토리 전개도 그다지 매끄러운 편이 아니었는데,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마을 사람들이 안젤리크의 이야기만 듣고 콜린스 저택으로 쳐들어가는 장면은 조금 어이가 없더군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다크 섀도우]가 좋았습니다. 특히 [빅 피쉬]를 기점으로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너무 착해진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는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라는 팀 버튼 감독다운 영화도 분명 있었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팀 버튼답지 않은 착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다크 섀도우]는 그러한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 버렸습니다. 처음엔 뱀파이어와 마녀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코미디가 적잘하게 섞인 가벼운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며 [다크 섀도우]를 봤던 저는 영화가 진행되며 팀 버튼 감독다운 다크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래, 이래야 팀 버튼답지.'라며 즐겁게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제 머리 속은 [다크 섀도우]에 대한 영화 이야기로 가득 넘쳐났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 넘쳐났지만 금요일에는 외근을, 토, 일요일에는 회사 동호회에서 1박 2일 여행을 가는 바람에 [다크 섀도우]의 영화 이야기는 3일 동안이나 제 머리 속에서만 자리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마 다른 분들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특히 가장 짜증이 나는 것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나면 제 머리 속에 정리된 영화 이야기를 온전하게 글로 뽑아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지금 저는 지난 목요일 밤에 [다크 섀도우]를 봤던 그 느낌을 최대한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발 잘 되어야 할텐데...

 

 

안젤리크는 왜 한을 품었나?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제가 [다크 섀도우]를 100% 만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100% 만족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과거씬의 생략입니다.

물론 어쩔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1772년 청년 바나바스와 안젤리크의 이야기가 아닌 200년 만에 깨어난 뱀파이어 바나바스와 200년 동안 다른 모습으로 살아온 마녀 안젤리크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72년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발단이 된 1772년의 이야기도 굉장히 중요한 법입니다. 영화에서는 바나바스의 나래이션으로 짧게 생략되어 버렸지만 그래가지고서는 바나바스를 안젤리크가 얼마나 사랑했고, 그로 인하여 얼마나 큰 사랑의 상처를 받고 한을 품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젤리크의 한은 바나바스의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바나바스가 사랑했던 여인을 자살로 내몰았으며, 바나바스를 뱀파이어라는 끔찍한 괴물로 만들고, 마을 사람들을 부추겨 생매장합니다. 이 정도의 복수라면 안젤리크가 품었을 한을 관객에게 먼저 이해시켜야 함이 맞습니다. 안젤리크를 무조건적인 악(惡)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크 섀도우]는 1772년의 이야기를 생략하면서 바나바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안젤리크의 캐릭터 구축에 실패합니다. 

이것은 꽤 큰 문제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실연의 상처로 악녀가 된 안젤리크의 사정을 이해하고 동정하면서 그녀의 섬뜩한 복수극을 마음 졸이며 봐야 하는데, 막상 안젤리크의 캐릭터 구축이 실패하다보니 그녀의 복수극은 그저 악당의 몸부림일 뿐입니다. 바나바스와 안젤리크라는 영화를 이루는 커다란 축 중에서 한 축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탓에 영화는 다른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버립니다.

거기에 덧붙여 콜린스 집안 사람들의 캐릭터도 그다지 잘 구축되지 못했는데, 1972년 콜린스 가문을 이끌어 나가는 엘라자베스(미셸 파이퍼)의 캐릭터는 너무 평면적이었고, 만약 2편이 만들어진다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한 1972년의 바람둥이 로저(조니 리 밀러)와 새로운 악녀 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는 너무 성급하게 퇴장을 하고 맙니다.

TV 시리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방대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2시간 이내에 압축하려다보니 발생한 문제들인데... 지금 현재 [다크 섀도우]가 국내 관객들에게 좋은 평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들은 천하의 팀 버튼 감독도 해결하지 못한 이러한 문제들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분명 [다크 섀도우]는 팀 버튼 감독의 걸작이라고 칭송하기에는 헛점이 너무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에 만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과 악의 구분을 없앤 팀 버튼 감독의 과감한 선택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 본다면 바나바스는 선이고, 안젤리크는 악입니다. 선과 악의 대결은 영화의 가장 일반적인, 그리고 오랜 테마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과연 바나바스를 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1772년 바나바스가 안젤리크에게 한을 안겨준 애정 행각은 바나바스가 선인가? 라는 논의에서 빼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자체가 1772년을 과도하게 생략한 탓에 바람둥이로서의 바나바스의 애정 행각과 그로인한 안젤리크의 한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나바스가 선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 이유는 1972년 그가 벌인 행각 때문입니다. 200년 동안 생매장된채 관에서 기나긴 잠을 자야했던 바나바스는 공장 인부들의 실수로 깨어납니다.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그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은 공장 인부들의 피를 빨아 먹어 몰살시키는 일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그들을 말입니다.

 

물론 바나바스가 뱀파이어가 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라면 절대 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중반에 바나바스가 히피족 젊은이들의 피를 빨아 몰살 시키는 장면도 나옵니다. 팀 버튼 감독은 처음부터 바나바스를 선한 캐릭터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스와 안젤리크의 대결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관점이 아닌 뱀파이어와 마녀라는 괴물과 괴물의 대결로 봐야 합니다. [다크 섀도우]는 바로 이 부분에서 제 흥미를 이끌어냅니다.

영화의 중반부에 벌어지는 바나바스와 안젤리크의 섹스씬이 흥미로운 것 역시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나바스가 선이고, 안젤리크가 악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선과 악의 섹스. 하지만 둘 다 악이라면 그들의 섹스는 괴물과 괴물의 섹스입니다. [백발마녀전]의 우인태 감독이 1999년 할리우드로 넘어가서 완성해낸 [사탄의 인형 4 : 처키의 신부]에서 처키와 피타니의 섹스씬 만큼이나 독특한 장면인 셈입니다.

이렇게 선과 악의 구분을 없애고나니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콜린스 가문의 사람들과 안젤리크의 대결 역시 독특했습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유령 등 괴물 집합체인 콜린스 가문과 마녀의 대결이라니...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누굴 응원할 수도 없는 섬뜩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뉴월에 느낀 서늘함

 

처음엔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비록 뱀파이어와 마녀가 등장하지만 이 영화는 공포 영화가 아닌 가벼운 코미디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초반에는 그러한 제 예상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200년 만에 깨어난 탓에 현실 작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나바스의 엉뚱한 행동으로 이 영화는 간간히 웃음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다크 섀도우]는 점점 섬뜩해져갔습니다. 그런 섬뜩함의 시작은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는 바나바스의 캐릭터 설정이었고, 섬뜩함의 클라이맥스는 콜린스 가문과 안젤리크의 마지막 대결이었습니다.

특히 안젤리크의 섬뜩함은 제 예상을 초월했는데, 마지막까지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제게도 서늘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유령 등이 힘을 합쳐 안젤리크에게 대항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1772년 그녀가 느꼈을 한을 제가 조금이라도 이해를 했다면 더욱 섬뜩했겠다면 아쉬움을 안겨줬습니다.

 

물론 그토록 섬뜩했던 이 영화의 후반부도 제게 100% 만족을 안겨준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무언가 큰 역할을 할 줄 알았던 빅토리아(벨라 헤스코트)가 별다른 활약 없이 그저 속편을 예고하는 역할만을 수행하여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를 100% 만족하려면 이번 영화에서 어정쩡하게 퇴장한 로저, 그리고 속편을 예고하는 역할 수행에 충실했던 빅토리아와 닥터 줄리아 호프먼이 제대로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가 되는 2편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팀 버튼 감독답지 않게 어정쩡하게 착했던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역시 저는 팀 버튼 감독의 이런 다크한 분위기가 더 좋습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유령 VS 마녀의 화끈한 한판 승부를 보고나니 후덥지근한 5월의 밤 거리가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우리나라의 옛 속담을 머나먼 할리우드의 괴짜 감독 팀 버튼의 영화에서 제대로 느끼게 될줄은 정말 몰랐네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다크 섀도우]가 너무 좋았습니다.

 

 

저 수 많은 캐릭터들이 모두 매력을 발산하려면

역시 한 편으로는 무리다.

이 영화의 매력을 모두 내뿜으려면 속 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