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백설공주] - 코믹 버전 '백설공주'도 나름 괜찮네!

쭈니-1 2012. 5. 4. 11:47

 

 

감독 : 타셈 싱

주연 : 릴리 콜린스, 줄리아 로버츠, 아미 해머

개봉 : 2012년 5월 3일

관람 : 2012년 5월 3일

등급 : 전체 관람가

 

 

타셈 싱 감독의 영상미에 매료되다.

 

저는 영화를 스토리 위주로, 그리고 캐릭터 위주로 보는 편입니다. 영화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그 구성이 탄탄한지, 그리고 캐릭터들이 얼마나 매력있고, 공감이 가는지에 따라서 그 영화에 대한 제 평가는 현저하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스토리 위주, 캐릭터 위주가 아닌 영상미 위주로 영화를 볼 때가 있습니다. 현재 [미스터 K]의 감독 하차 문제로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가 대표적입니다.

[미스터 K]의 감독 하차 문제에 대한 기사에서 항상 언급되는 이명세 감독의 흥행실패작 [형사 Duelist]와 [M]을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M]를 보며 그 독특한 영상미에 흠뻑 매료되었던 저는 [미스터 K]도 이명세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제작을 맡은 윤제균 감독의 맛깔스러운 이야기가 잘 결합된 영화일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했던 [미스터 K]가 이명세 감독의 하차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영상미로 저를 사로 잡은 또 한 명의 감독이 있습니다. 바로 타셈 싱입니다.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을 맡은 2000년작 [더 셀]에서 이미 그의 영상미를 눈여겨 봤던 저는 작년에 개봉한 [신들의 전쟁]을 통해 그의 영상미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물론 [신들의 전쟁]은 빈약한 스토리 라인으로 국내 흥행에 실패했지만 [형사 Duelist]와 [M]이 그러했듯이 제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그림 형제의 동화를 할리우드식으로 새롭게 각색한 타셈 싱 감독의 신작 [백설공주]가 개봉했습니다. 지난 3월 30일 북미에서 먼저 개봉한 이 영화는 8천 5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현재 6천만 달러가 채 되지 않는 흥행 실적을 올리며 이미 흥행 실패작 판정을 받았습니다.

국내 관객의 평가 역시 [신들의 전쟁]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영상미가 화려한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역시나 느슨한 스토리 전개가 이번에도 문제가 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백설공주]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타셈 싱과 그림 형제 동화의 만남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저는 이미 가슴이 벅차 있었습니다.

 

 

타셈 싱과 그림 형제의 만남으로 내가 기대했던 것

 

[백설공주]의 개봉 첫 날, 극장으로 달려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백설공주]는 솔직히 제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른 영화였습니다.

물론 타셈 싱 감독의 화려한 영상미는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더 셀]과 [신들의 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잔혹한 영상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제 기대가 애초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타셈 싱 감독의 재해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밑도 끝도 없이 화려한 영상미의 잔혹 동화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 자체가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못된 계모에 의해 쫓겨난 착한 백설공주가 난쟁이와 멋진 왕자의 도움으로 복수에도 성공하고 왕자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집착과 의붓 딸을 죽이려 하는 계모의 잔인한 음모가 난무합니다. 충분히 잔혹 동화가 될 여지가 충분한 셈입니다. (실제 '백설공주'의 원전인 북유럽의 구전 동화는 잔인한 복수와 근친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백설공주]를 보기 위해 극장에 입장하는데 평일 밤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니, 부모들이 영화 정보도 안보고 아이들을 극장에 데려왔나?'라며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타셈 싱 감독의 영화인 만큼 아무리 동화를 원작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이 보기 부적합한 잔인한 장면이 다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영화 정보도 보지 않고 극장을 찾은 것은 어린 자녀들을 데려온 부모가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백설공주]가 전체 관람가 등급인줄도 모르고 극장을 찾았으니까요.

실제로 [백설공주]는 잔인한 장면이라고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타셈 싱 감독의 잔혹 동화를 기대했던 저는 오히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보다 더욱 수위가 낮아진 코믹 버전 '백설공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낯설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니 타셈 싱 감독의 코믹 버전 '백설공주'도 나름 재미있더군요. 어쩌면 타셈 싱 감독의 영상미 덕분에 낮은 수위의 스토리 전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백설공주'는 잊어라.

 

어쩌면 저는 처음부터 타셈 싱 감독의 영상미에 큰 기대를 걸었던 만큼 이 영화의 전체 관람가 등급의 스토리 전개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하지만 제가 스토리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봤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잔혹 동화냐, 코믹 버전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타셈 싱 감독은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를 영화화하며 일부러 동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림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백설공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캐릭터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왕비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 장면과 독이 든 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진 '백설공주'의 안타까운 모습일 것입니다. 이것은 동화 '백설공주'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타셈 싱 감독은 [백설공주]를 만들며 그러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빼버립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Mirror Mirror]입니다. 그만큼 마법 거울의 존재가 왕비(줄리아 로버츠)만큼이나 격상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비가 마법 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 장면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백설공주(릴리 콜린스)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는 드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독이 든 사과는 영화의 후반부에 잠시 등장하기는 하지만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잠이 든 백설공주가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는 장면은 역시 영화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백설공주'에서 이 두 장면을 빼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입니다. 세상에 거울에게 누가 제일 예쁜지 묻지 않는 왕비라니... 왕비의 독이 든 사과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다니... 그렇다면 왕자의 키스는?

이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백설공주]는 '기존의 '백설공주는 잊어라!'라고 당당하게 외칠만 합니다. 원작 동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하였으니 이 영화는 동화의 캐릭터만 가져온 동화와는 차별화된 완전히 새로운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타셈 싱 감독은 원작 동화의 중요한 장면을 무시하면서까지 코믹한 장면들에 집착을 합니다. 공주를 구해야 하는 왕자(아미 해머)는 어딘지 모르게 어리버리하고, 악당인 왕비는 허영심에 가득찬 멍청한 된장녀일 뿐입니다. 금광에서 일하는 난쟁이들이 산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들 역시 몸 개그로 영화의 코믹한 부분을 한껏 살려냅니다.

영화의 긴장감을 포기하고, 원작 동화에 대한 향수마저도 거부한채 고작 선택한 것이 코미디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한 공주 버전의 디즈니표 '백설공주'가 지겨워졌다면 타셈 싱 감독의 원작을 무시한 코믹 버전 [백설공주]도 나름 재미있을 것입니다.

 

 

타셈 싱 감독의 영상미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스토리 위주로 영화를 보려면 [백설공주]가 원작을 철저하게 무시한 코믹 버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타셈 싱 감독의 영상미 위주로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는 [더 셀]과 [신들의 전쟁]과 같은 칼라풀하고 잔혹인 영상미는 없지만 그래도 타셈 싱 감독의 명성에 먹칠하지는 않을 꽤 괜찮은 영상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법 거울이 백설공주를 죽이기 위해 보낸 인형 자객 장면입니다. 전체 관람가 영화이긴 하지만 그 장면 만큼은 그로테스크한 영상미가 돋보입니다. 매우 단순한 형태의 너무 인형이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보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괴물의 등장 장면 역시 눈여겨 볼만합니다. 비록 기대했던 괴물과 백설공주의 한 판 승부는 없었지만 동양의 용이 연상되는 괴물의 외모만으로도 영화의 긴장감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왕비 역을 맡은 줄리아 로버츠는 그 커다란 입으로 함박 웃음을 짓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그녀의 함박 웃음은 매력적이고, 귀여웠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함박 웃음은 사악해 보이더군요.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습니다.

백설공주 역을 맡은 릴리 콜린스는 처음엔 너무 짙은 눈썹 때문인지 별 매력을 못 느꼈는데, 그녀가 난쟁이들에 의해서 점차 여전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비록 자신의 주특기인 그로테스크하고 칼라풀한 영상미를 버리고 전체 관람가 등급의 칼라풀하지만 코믹한 영상미를 선보였지만 앞서 소개한 몇몇 장면에서는 타셈 싱 감독의 특기가 얼핏 보여 반가웠고, 영화의 후반부에는 타셈 싱 감독이 인도 출신임을 내세우는 듯한 릴리 콜린스의 흥겨운 노래와 안무로 마무리지음으로서 코믹 버전 [백설공주]를 완벽하게 끝맺음합니다.

비록 [백설공주]는 제가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기분만큼은 개운했습니다. 아무래도 타셈 싱 감독의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는 다음 영화에나 기대하고, 이번 [백설공주]에서는 여전사로 재탄생한 백설공주의 유쾌하고 코믹한 모험담에 만족을 해야겠습니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에서는

더욱 암울한 영상으로 여전사가 된 백설공주를 그린다고 한다.

[백설공주]가 너무 아동틱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으로 [백설공주]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채우면 되지 않겠는가?

[백설공주]는 [백설공주]대로 그냥 가볍게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