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코리아] - 눈물을 미리 준비했지만 끝내 흘리지 못했다.

쭈니-1 2012. 5. 17. 15:43

 

 

감독 : 문현성

주연 : 하지원, 배두나, 한예리, 최윤영

개봉 : 2012년 5월 3일

관람 : 2012년 5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제가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이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반 아이들은 한결같이 '통일'이라고 대답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했고, 소원이 통일이 아닌 아이가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과연 요즘의 아이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몇 명이나 통일이라고 대답을 할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만큼 세상도 변했고, 통일에 대한 인식도 변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에서 남과 북의 분단현실, 그리고 통일은 언제나 훌륭한 소재가 되곤 합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맞춘 소재이니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영화들과 차별성도 있고, 관객들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통일의 염원을 끌어 올리며 영화의 감동을 손 쉽게 획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리아]는 참 영리한 영화입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급조된 스키점프 팀의 이야기를 다룬 [국가대표]처럼, [코리아]는 91년 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남과 북의 탁구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남과 북 분단의 현실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감동 코드로 끌여 들였으니 그 기획력만큼은 굉장히 영특하다고 칭찬할만합니다.

 

더이상 [코리아]의 관람을 미룰 수 없다는 굳은 의지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일 밤이라 한산한 극장. 저는 평소 선호하는 왼쪽 통로 좌석을 포기하고 예매 관객이 거의 없는 오른쪽 통로 좌석으로 예매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 눈치보지 않고 맘껏 울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울 준비까지 마친 상태에서 차분하게 [코리아]를 관람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영화를 보며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릴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 관객들의 훌쩍거리는 울음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렸지만 제 눈은 그저 말똥말똥하게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릴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릴 수 없었던 이유는 영화가 너무 뻔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코리아]가 뻔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하지원을 좋아하면서도 [코리아]의 관람을 차일 피일 미뤘던 이유가 그런 뻔함이 눈에 선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코리아]의 뻔함은 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마치 '내가 이 영화를 언제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너무 뻔해서 준비한 눈물조차도 흘리지 못했던 [코리아]의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1991년 일본 지바현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를 본 후에는 항상 '실제는 어떠했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코리아]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코리아]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91년 지바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세트 스코어 2대2의 상황에서  현정화(하지원)와 리분희(배두나)의 복식 경기가 극적으로 승리하며 중국을 꺾고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정화와 리분희의 복식조는 중국팀에게 패배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는 유순복과 중국의 가오쥔의 경기였다네요. 결국 유순복이 가오쥔에게 극적으로 승리를 거두며 남북 단일팀은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중국과의 여자 단체전 경기를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1세트는 유순복과 덩야핑의 단식으로 유순복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세트는 현정화와 가오준의 경기로 역시 현정화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3세트 현정화와 이분희의 복식조가 덩야핑과 가오준의 복식조에게 패배를 하고, 현정화가 덩야핑과의 단식 경기에서 패배를 하며 세트 스코아는 2대2가 되어 버립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유순복이 단식 경기에서 가오준을 이기며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 경기에서 그날의 주인공은 현정화도, 리분희도 아닌 유순복이었습니다. 첫 경기에서 중국의 에이스인 덩야핑을 이기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가오준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서 남북 단일팀에게 극적인 우승을 안겨준 것입니다.

[코리아]에서는 그러한 유순복의 활약상을 축소시키고 현정화와 리분희의 활약을 확대시킴으로서 영화의 극적 감동을 이끌어 냅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현정화와 리분희이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화를 보며 당연히 이길줄 알았던 현정화와 리분희의 복식조가 실제 그날의 경기처럼 패배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영화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게임에서 졌을 때의 충격. [코리아]는 그것을 놓친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리고 여린 유순복(한예리)이 실제처럼 마지막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면 어땠을까요? 비록 현정화와 리분희 띄우기 전략은 실패했겠지만 영화의 의외성과 그로인한 쾌감은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멋진 스포츠 경기를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의외의 상황이 터져나오고 그것이 스포츠를 더욱 열광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각본없는 드라마를 소재로한 영화들에게 가끔 뻔한 각본으로 각색을 해서 아쉬움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코리아]도 그런 경우인데, 영화를 보며 '이럴 것이다.'라고 예상했던 것이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펼쳐지니 오히려 당황스럽더군요.

 

 

뻔한 코믹, 느닷없는 러브 라인

 

저는 영화를 보며 최연정(최윤영)이 4강전에서 다친 다리 때문에 결승전 단식에서 질 것이라 생각했고, 유순복이 첫 해외 경기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극적으로 이길 것이라 생각했으며, 마지막 복식 경기의 승리로 우승을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러한 제 예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각본없는 드라마를 너무 뻔한 드라마로 만든 시나리오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낸 경우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가 전반적으로 굉장히 뻔하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뻔한 설정은 웃음 코드에서도 드러납니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들을 보면 그 어떤 장르의 영화라도 약방의 감초처럼 코믹 캐릭터를 통한 웃음 코드를 삽입합니다. 그냥 감동적인 영화보다는 웃으면서 감동적인 영화를 관객들이 더욱 선호한다는 사실을 영화 관계자들이 파악을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처음엔 그런 영화들이 나오면 부담없이 즐기다가 마지막에 감동을 얻을 수가 있었는데, 요즘은 '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식상하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감동을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한국팀의 이코치(박철민)입니다. 박철민의 코믹 연기는 관객에게 항상 통했었습니다. 2011년 8월에 개봉하여 망작 판정을 받은 SF 블록버스터 [7광구]에서조차 박철민의 코믹 본능은 멈추지 않았으니 이제 관객들은 박철민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역시나 박철민은 [코리아]의 코믹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한국팀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되었다가 남북 단일팀이 되며 다시 코치로 내려 앉은 그의 모습은 박철민 특유의 코믹 연기에 의해 웃음으로 승화됩니다. 단일팀의 감독을 맡은 북한의 조감독(김응수)에게 앙탈을 부리는 모습 등을 통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를 가볍게 풀려고 홀로 동분서주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저는 너무 뻔하게 느껴졌습니다. '박철민이 연기했기에 이코치는 저럴 것이다.'라는 제 예상이 그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문현성 감독은 박철민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가 꺼내든 또 하나의 카드는 한국팀의 최연정과 북한팀의 최경섭(이종석)의 러브 라인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영화거리가 될 수 있지만 그들의 사랑을 양념거리로 처리하려고하니 어색했습니다. 북한팀 선수에게 첫눈에 반했다며 무턱대고 들이대는 최연정의 사랑은 [코리아]의 감동을 오히려 방해하기만 했습니다.

 

 

억지로 악당 만들기

 

[코리아]의 관객 공략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남과 북의 탁구 선수들이 만나 처음엔 티격태격하다가 우정을 쌓고, 세계 최강팀인 중국을 꺾고 극적인 우승을 거둔 이후 남과 북의 분단 현실을 통한 이별로 눈물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

이러한 공략을 위해 실제 경기를 뻔하게 각색했고, 관객이 좋아할만한 코믹 코드와 러브 라인을 삽입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뭔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바로 관객이 미워해야할 악당의 존재입니다.

대기업인 CJ엔터테인먼트에서 공동 제작을 했기 때문일까요? [코리아]는 너무나도 안전한 길만을 선택하려 합니다. 조금이라도 색다른 길을 선택하려하지 않고 최대한 안전하게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들만을 끌어 모았습니다. 현정화와 리분희 띄우기가 그렇고, 영화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은 코믹 코드와 느닷없는 러브 라인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악당의 등장 역시 안전한 길만을 선택하려고 하는 [코리아]의 단순한 선택 중 하나입니다.

과연 스포츠에서 악당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모두들 피땀을 흘리며 노력을 했고, 자신의 종목에 모든 것을 바친 선수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코리아]에서는 아닙니다. [코리아]에서 중국 선수들은 자만심에 빠져 있는 꼭 이겨야하는 얄미운 악당일 뿐입니다.

 

리분희가 떨어뜨린 탁구공을 짓밟으며 단일팀을 무시하는 중국 선수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터져나오는 심판의 편파 판정까지... [코리아]는 중국 선수들을 악당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과연 그것은 정당한 것일까요?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비록 다른 나라 선수들이지만 탁구에 인생을 건 선수들을 악당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정당한 선택일까요?

물론 중국 선수들이 악당 역할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단일팀의 우승은 더욱 짜릿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짜릿함을 위해, 그리고 흥행을 위한 안전한 길을 위해 [코리아]는 남과 북의 분단선을 없애고 대신 선과 악이라는 국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실망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원과 배두나의 앙상블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멋졌습니다. 조금은 귀여운척하는 하지원의 연기가 눈에 거슬렸지만 배두나와 한 화면에 같이 서니 이 두 배우의 아우라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린 한예리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정말... 귀여웠습니다.

조그마한 탁구 테이블에서 시속 180km로 오고가는 탁구 경기 장면의 쾌감은 기대했던 것보다 덜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단일팀이 서로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비록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슴이 찡했습니다. [코리아]가 너무 안전하게 뻔한 길만 걷지 않고, 좀 더 의외성을 앞세운 모험을 선택했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 두고 남네요.

 

각본없는 드라마를 뻔한 각본으로 완성한 [코리아]

그 덕분에 관객의 눈물은 잠시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감동은 결코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