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 1%를 위한 99%의 희생

쭈니-1 2012. 4. 6. 11:51

 

 

감독 : 게리 로스

주연 : 제니퍼 로렌스, 조쉬 허처슨, 우디 해럴슨, 리암 헴스워스

개봉 : 2012년 4월 5일

관람 : 2012년 4월 5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건 [배틀로얄]과 다른 이야기이다.

 

지난 주말에 헤이리 마을에서 얻은 감기로 일주일 내내 몸살을 앓고 있으면서도 저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만큼은 개봉 당일 봐야겠다고 구피한테 우겼습니다.

구피는 살기위해 어린 아이들이 서로 죽여야 하는 영화는 잔인해서 싫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군요. 하긴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의 설정은 결혼 전, 정확히는 2002년에 봤던 [배틀로얄]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배틀로얄]은 아주 가까운 미래,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낀 어른들이 BR법이라는 이상한 법을 만들어서 매년 중학교 3학년 중 한 학급을 무작위로 추출한 후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게임을 강제로 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분명 10대 청소년들이 살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게임에 참여한다는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당시 [배틀로얄]은 제게도 꽤 충격적인 영화였는데, 무엇보다도 극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점차 살인 병기로 변해가는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졌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기록적인 흥행 질주를 하고 있는 것을 구피에게 상기시키며 '이건 판타지 영화란 말이야. 그렇게 잔인하지 않을거야.'라며 애써 구피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결국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 정식 개봉하는 4월 5일 밤에 아픈 몸을 이끌고 영화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은 상황이라 이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영화로 옮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만 느껴질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을 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2편을 어서 빨리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 확실하게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배틀로얄]과 기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앞에서 밝혔듯이 영화의 설정 자체는 같습니다. 하지만 설정이 같다고 해서 두 영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적 설정에 담긴 세계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배틀로얄]은 무한 경쟁 사회 속에 일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들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영화입니다. [배틀로얄]이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살인 게임에 몰아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죠.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어른들이 많들어놓은 무한 경쟁에 무조건 뛰어들어 끊임없이 경쟁을 하는 아이들. [배틀로얄]은 그러한 아이들의 지옥도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이 영화 역시 10대 아이들이 혼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경쟁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세계관은 [배틀로얄]에 비해 좀 더 포괄적입니다. 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단면을 극단적으로 그려 내고 있는 것입니다.

 

 

4.17%의 작은 희망 때문에...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독재국가 판엠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판엠의 중심부인 캐피톨의 독재 정권에 대항했던 12개 구역. 하지만 캐피톨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12개 구역은 반역을 꾀한 죄로 매년 무작위로 추천된 어린 남녀 아이 한 쌍을 '헝거게임'에 내보내야 합니다.

'헝거게임'은 오직 한 명이 살아 남을 때까지 서로 죽여야 하는 무한 생존 서바이벌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시무시한 생존 게임을 캐피톨이 벌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12개 구역이 별다른 반항없이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을 이루고 있는 세계관은 바로 이러한 의문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판엠의 독재자인 스노우 대통령(도날드 서덜랜드)은 말합니다. 12개 구역이 반역을 한 죄를 물으려면 차라리 무작위로 추천된 아이들을 모아 놓고 몰살을 시키면 될 것을, 왜 굳이 '헝거게임'을 하는지 아냐고... 그것은 희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것인 희망을 그들에게 안겨주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그의 말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으니 도망갈 조금의 틈을 줘서 희망을 안겨준 다음 조금씩 야금 야금 잡아 먹겠다는 속셈입니다. 이것은 12개 구역이 잔인한 '헝거게임'에 동참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1/24의 확률(4.17%). 그것은 그들의 희망이 됩니다. 어쩌면 내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들의 눈을 안보이게 하고, 귀를 안들리게 하고, 입을 막아버린 것이죠.

 

스노우 대통령은 말합니다. 10, 11, 12구역을 가 본적이 있느냐고... 그곳은 패배자들이 득실되는 곳이지만 캐피톨을 위해 꼭 필요한 광물이 풍부한 곳이라고 말입니다. 

결국 캐피톨의 부귀영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12개 구역의 노동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캐피톨은 그러한 12개 구역의 노동과 자원을 토대로 번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초반 주인공인 캣니스(제니퍼 로렌스)가 사는 12구역의 모습과 캣니스가 동생을 대신해서 '헝거게임'에 지원한 후, 가게 되는 캐피톨의 모습은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마치 중세 시골의 모습을 보는 듯한 12구역과 SF영화의 최첨단 미래 도시를 구현시킨 캐피톨. 이 두 곳의 상반된 모습 만큼이나 사는 사람들의 생활 역시 극과 극입니다.

이것은 캐피톨이 굳이 '헝거게임'을 유지시키는 이유가 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사는데 꼭 필요한 의, 식, 주에 대한 욕구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잘 입고, 잘 먹고,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곳. 그런데 그러한 1차적인 욕구가 채워지면 점점 삶의 질을 높이는데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은 쾌락을 추구한다고 합니다.(고대 로마인들이 무한 쾌락을 추구했던 것도 그런 이치일 것입니다.)

12개 구역이 '헝거게임'에 동참하는 이유가 4.17%의 작은 희망 때문이라면 캐피톨이 '헝거게임'을 유지시키기는 이유는 캐피톨 시민들의 쾌락 추구를 위해서입니다. 12개 구역의 노동과 자원으로 부족할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그들. 그들의 무료함을 채워주기 위한 시끌벅적한 이벤트. 캐피톨에게 '헝거게임'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 역시 '헝거게임'을 즐기고 있다.

 

잔인하다고요? 사실 우리 역시 그러한 잔인한 유희를 즐기고 있습니다. 요즘 TV에서 유행하고 있는 수 많은 형태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들은 그러한 유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 우리는 TV를 보며 그들의 순위를 매기고 탈락자와 최종 우승자를 선정합니다. 자신의 꿈을 내건 이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TV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저 역시 매우 재미있게 본 '슈퍼스타 K3'에서 투개월의 김예림과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의 미묘한 러브 라인은 그들이 TOP 3에 들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력 역시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본선이라 할 수 있는 TOP11에 들었던 이들이 기본적인 실력 이상은 갖추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력 이상의 매력이 그들을 오랫동안 살아남게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러한 상황은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에서도 재현됩니다. 스폰서들의 도움을 위해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 캣니스와 피타(조쉬 허처슨). 그들은 살아 남아야 하는 극한의 생존 게임의 압박에서도 그저 자신들을 여흥 정도로만 생각하는 스폰서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지게 꾸며야 합니다. 급기야 캣니스와 피타의 러브 라인은 그들이 최종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 뛰어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장면들을 세세하게 잡아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캣니스와 피타가 본격적으로 '헝거게임'에 뛰어들기 이전의 상황에 상당부분의 러닝타임을 투자합니다. '헝거게임'의 살인적 유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흥행 요소임을 감안한다면 자칫 영화는 지루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게리 로스 감독은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차근 차근 캣니스와 피타가 '헝거게임'을 준비하는 상황을 그려 나가며 그들의 심리적 압박과 그들이 결국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초반부터 쌓아 나갑니다.

단지 조금 아쉬웠던 것은 스노우 대통령이 처음부터 캣니스를 경계하는 이유가 영화에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캣니스의 화려한 등장은 캐피톨 시민들의 환호를 받지만 유독 스노우 대통령만이 경계의 눈으로 쳐다봅니다. 그리고 '헝거게임'의 책임자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어 캣니스 제거를 명령합니다. 희망이 너무 커져버리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이는 12구역과 스노우 대통령의 악연, 그리고 캣니스가 처음 등장 할때 썼던 불꽃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자세한, 아니 조금의 설명도 모두 배제되어 궁금증만 더해가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후 시리즈에서 스노우 대통령이 캣니스를 경계하는 이유가 설명될런지는 잘 모르지만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자체만 놓고본다면 스노우 대통령의 행동이 뜬금없게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1%를 위한 99%의 희생

 

제가 앞선 부분에서 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본주의...한마디로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을  하며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체제를 말합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진 자들의 횡포입니다.

자본주의가 잘 시행되려면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경쟁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미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은 그러한 공정한 경쟁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을 휘둘러 불공정하게 더욱 이윤을 쌓아 나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공정한 노력으로 이루어야할 이윤을 점점 빼앗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문제점이 있으면서도 자본주의가 아직까지 잘 굴러가는 것은 작은 희망 때문입니다.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그러한 희망은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에서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 역시 이미 상위 1%에 들어있는 사람들에겐 돈벌이에 불과한 것이죠.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대학 등록금은 그러한 우리나라 하위 99%의 희망을 자양분으로 한 괴물인 셈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 저는 영화를 보며 판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인 캐피톨 시민들이 부귀영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99%의 12구역 시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들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 여흥을 삼고 있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우리가 사는 이곳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어느 인터넷 기사를 보니 등산, 레저 의류를 만드는 어느 국내 기업이 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옮긴다며 생산직 직원 93명 전원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업체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회사라면 생산 원가를 줄이겠다는 그 회사의 논리는 정당하지만, 최근 2년간 주주들에게 145억원의 배당금을 나눠줄 정도로 이익이 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는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상위 1%의 욕심에 의해 하위 99%가 희생을 해야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판타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에서 현실감이 묻어 나는 것은 어쩌면 그러한 우리가 사는 세상과 판엠의 닮은 점일지도 모르겠네요.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 영화가 앞으로 할 이야기가 더욱 많다는 것입니다. 상위 1%를 향한 하위 99%의 반란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원작을 읽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캣니스를 피타에게 빼앗긴 게일(리암 헴스워스)의 심상치않은 눈빛도 앞으로의 중요한 볼거리로 제공될 것 같습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이미 전설이 되었고, [해리 포터 시리즈]는 막을 내렸으며,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는 표류중인 상황에서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할리우드의 판타지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꺼지지 않도록 이어줄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P.S. 방금 안 사실인데... 아래의 캐릭터별 포스터에서 캣니스만이 다른 캐릭터들과 다른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도 깊은 뜻이 있겠죠?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거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에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다시 내 가슴을 뛰게할 판타지 시리즈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