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언터처블 : 1%의 우정] - 그들의 우정은 평범하지만 관객에겐 특별했다.

쭈니-1 2012. 3. 29. 08:55

 

 

감독 :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톨레다노

주연 : 프랑수와 클뤼제, 오마르 사이

개봉 : 2012년 3월 22일

관람 : 2012년 3월 2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왜 [콘트라밴드]가 아닌 [언터처블 : 1%의 우정]이었는가?

 

지난 월요일, 무릎 인대를 다치신 장모님을 대신해서 제가 하룻동안 웅이를 돌봐주기로 했었습니다. 회사에 연차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웅이를 씻기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후엔 서예학원, 영어학원, 태권도학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중간 중간에 간식까지 챙겨주고나니 하루가 금방 가더군요.(이 많은 학원은 모두 웅이가 배우고 싶다고 해서 보내는 겁니다.)

장모님의 하루 일과가 얼마나 피곤했고, 어쩌다가 무릎 인대가 손상됐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더군요. 그저 이 못난 사위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암튼 웅이를 돌봐주면서 유일하게 여유로웠던 시간은 웅이가 학교를 간 이후였습니다. 오전 8시 30분까지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 2시 30분에 데리러 가야하니 정확히 6시간이라는 시간이 비더군요. 장모님께서는 그 시간에 청소도 하시고, 빨래도 하시며 집안일로 시간을 보내셨겠지만, 이 날라리 사위는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 결과 웅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얼른 극장으로 향해 조조할인으로 [건축학개론]을 보고, 쉴 시간도 없이 곧바로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본 후, 눈썹이 휘날리도록 집으로 달려와 국에 밥을 말아 입 속으로 마구 집어 놓고, 늦지 않게 웅이를 데리러 학교까지 가는 임무 완수. 휴! 웅이 돌보며 영화까지 보려니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언터처블 : 1%의 우정]이었을까요? [건축학개론]이야 당연히 보려고 생각했던 영화였지만 [언터처블 : 1%의 우정]은 '이번주 개봉작'을 쓸 당시만 하더라도 [콘트라밴드]와 [밀레니엄 : 제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 밀려 기대작 4위를 기록했던 영화입니다.

사실 저는 당연히 [건축학개론]을 본 후 기대작 2위였던 [콘트라밴드]를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영화 시간표를 맞춰보며 제 스케쥴에 맞춰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도 TV에서 [언터처블 : 1%의 우정]이 관객들의 입소문 덕분에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는 뉴스를 들은 것입니다. 당연히 [화차]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던 제겐 뜻밖의 소식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도대체 [언터처블 : 1%의 우정]이 어떤 영화길래? 라는 궁금증이 저를 자극했습니다. 프랑스에서 흥행 대박을 냈다는 소식은 일찌감치 들었고, 전신마비 백만장자와 무일푼 흑인 백수의 우정이라는 스토리 라인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저는 결국 마지막 순간 [콘트라밴드]를 포기하고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마치 구피가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충동 구매를 하듯이, 저 역시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충동적으로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이 영화에 관심조차 없었던 제가 결국 기대작이었던 [콘트라밴드] 를 포기하고 선택을 했으니...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보기 전에 봤던 [건축학개론]도 그랬지만 이 영화 역시 매우 잔잔한 영화였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사건 전개 없이 그저 두 명의 상반된 캐릭터의 우정으로 물이 흘러가듯이 영화가 술술 흘러만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프랑스 박스오피스에서 대박을 기록하고, 국내 박스오피스에서조차 [건축학개론]에 이은 깜짝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시선으로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언터처블 : 1%의 우정]과 비슷한 영화는 2009년에 개봉했던 인도영화 [블랙]과 2011년에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야구 영화 [글로브]가 있습니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동정심을 뺐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볼 때 그들을 배려하면서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러한 동정심이라는 사실을 몇 년전 우연히 알게된 장애인 친구에게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를 그냥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자기는 몸이 조금 불편할 뿐,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그것은 필립(프랑수아 클뤼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신마비로 움직일 수 없는 필립. 그는 어쩔수 없이 자신의 간병인을 구하려 하지만 그가 정녕 원했던 것은 자신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간병인이 아닌, 자신과 허물없이 지내주며 자신의 공허한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였을지도 모릅니다.

주위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필립이 간병에 대한 경험 대신 전과 기록이 있는 드리스(오마르 사이)를 자신의 간병인으로 선택한 이유입니다. 드리스는 필립이 전신마비 장애인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를 전혀 동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그를 대했고, 아무런 허물없이 행동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주위에 장애인이 있다면 그들을 향한 나의 시선이 혹시 배려라는 가면을 쓴 동정심이 아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그들의 특별한, 아니 평범한 우정

 

[언터처블 : 1%의 우정]은 실화를 바탕으로 필립과 드리스의 특별한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우정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필립과 드리스의 우정을 방해하는 그 어떤 극적 장애물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필립의 사촌이 드리스의 전과 기록을 대며 그를 걱정해주는 척 하는 장면과, 드리스의 동생이 사고를 쳐서 드리스가 필립의 곁을 떠나야하는 상황이 오는 것 정도입니다.

다른 영화들에 비한다면 상반된 처지에 빠진 그들의 우정은 매우 순탄하게 흘러만 갑니다. 백만장자 장애인과 무일푼 흑인의 우정이라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필립과 드리스의 우정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들의 우정을 특별하게 봅니다. 그것은 필립을 대하는 드리스의 행동이 특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행동들인데, 우리가 장애인을 대할 때 그렇게 대하지 않으니 특별해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 이 영화의 깜짝 흥행은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언터처블 : 1%의 우정]은 필립과 드리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우정 외에도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제일은 개인적으로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꼽고 싶습니다. 영화의 예고편에도 사용된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라던가, 필립과 드리스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장면에서 흘러 나오는 Nina Simone의 'Feeling Good'등 매력적인 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음악은 필립의 생일날 필립이 드리스를 위해 클래식을 들려 주는 장면과 클래식을 실컷 들은 드리스가 이제는 나의 음악을 즐기라며 춤추며 들려주는 Eart Wind & Fire 의 'Boogie Wonderland' 입니다. 영화를 보며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흥겨웠던 최고의 음악임과 동시에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거칠게만 보였던 드리스가 의외로 귀여운 구석을 보이며 관객의 웃음보를 터트리는 장면과, 무뚝뚝한 듯이 보이던 필립이 펜팔로 사귄 여자를 만나러 가면서 수줍어 하는 모습 등 [언터처블 : 1%의 우정]은 소소한 영화적 재미들로 영화를 보는 저를 흐뭇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드리스처럼 편견없이 필립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사실 저 역시 필립을 대하는 드리스의 행동을 보며 '저래도 되나? 너무 심한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면도를 해주는 드리스에게 '그 면도칼이면 깔끔하게 죽을 수 있겠지?' 라고 심각하게 말하는 필립. 하지만 드리스는 그런 필립을 위로하거나 희망을 안겨 주기는 커녕 움직일 수 없는 그를 놀리며, 그의 덥수룩한 수염으로 장난을 칩니다.

재미없으니 그만 두라는 필립의 심드렁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필립의 수염을 히틀러처럼 깎아 놓고 웃는 드리스의 모습을 보며 과연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몇 년전 우연히 알게된 장애인 친구 덕분에 장애인에게 동정은 오히려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필립을 위로하고 싶어지고, 그를 동정하며 배려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저 역시 어쩔 수 없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일반인이었던 셈입니다.

사실 장애인을 아무런 편견도 없이 일반인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그들을 배려라는 이름 아래 차별을 하게 될테니까요.

 

처음에 저는 [언터처블 : 1%의 우정]이 조금 지루했습니다. 영화적인 극적 설정이 최대로 배제된채 그들의 우정만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니 아무래도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진 것이죠.

매력적인 음악과 필립과 드리스 캐릭터의 소소한 재미로 그럭저럭 영화를 즐기던 저는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동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특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았던 드리스. 그런 드리스를 친구로 맞이한 필립. 이 두사람의 우정은 평범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겐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들의 해피엔딩은 영화를 본 후 극장 밖으로 나서는 제게도 행복감을 안겨줬습니다.

 

 

나 역시 필립의 입장이 된다면

동정하며 배려하는 사람들보다는

드리스처럼 아무런 편견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