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타이탄의 분노] - 더욱 '다크'해진 그리스 로마 신화

쭈니-1 2012. 3. 30. 17:25

 

 

감독 : 조나단 리브스만

주연 : 샘 워싱턴, 리암 니슨, 랄프 파인즈, 로저문드 파이크

개봉 : 2012년 3월 29일

관람 : 2012년 3월 29일

등급 : 12세 관람가

 

 

[타이탄] 그 두번째 이야기

  

지난 2010년 4월 6일 [타이탄]을 본 후 '그래, 딱 내 스타일이야!'를 외쳤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2년이 흘러 [타이탄]의 두번째 이야기인 [타이탄의 분노]가 개봉했습니다. 구피도, 저도, 이 영화가 개봉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터라 개봉 당일날 극장으로 달려가서 영화를 확인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저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영화 상영 내내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영화의 분위기와 할리우드 특수효과 기술로 재현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괴물을 보는 즐거움, 그리고 가족간의 음모와 배신이라는 영화의 양념까지...

하지만 구피는 살짝 실망했다고 하네요. 전편인 [타이탄]의 경우는 멋졌는데, [타이탄의 분노]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조금은 지저분한 분위기라서 마음에 안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타이탄의 부활과 그로 인한 올림푸스 신과 인간의 위기는 [신들의 전쟁]에서 타셈 싱 감독의 세련된 영상미로 재현되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더욱더 [타이탄의 분노]의 세련되지 못한 분위기와 비교가 되었나 보더라고요. 

 

이렇게 구피와 제 감상평이 엇갈리긴 했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보는 재미가 솔솔하고, 원작 그대로가 아닌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새로 창작된 신화 속의 영웅담을 보는 재미도 색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과 같은 아동 취향적으로 가공된 밝은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는 이 영화와 같이 다크하고, 스펙타클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타이탄의 분노]는 여전히 빈약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유의 다크한 분위기와 스펙타클로 영화를 보고 극장 밖을 나서는 제게 충분한 만족감을 안겨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제가 써내려갈 영화 이야기는 [타이탄의 분노]의 빈약한 스토리 라인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하고 제가 이 영화에 제가 만족했던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기술할 것입니다.

 

 

묘한 긴장감... 그 정체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타이탄의 분노]를 보며 러닝타임 100분 내내 긴장을 해야 했습니다. 대부분 판타지 영화의 경우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의 모험담을 편안하게 즐기는 편인데 [타이탄의 분노]는 뭔가 무시무시한 괴물이 어디선가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더군요.

네, 맞습니다. 제가 느낀 묘한 긴장감의 정체는 할리우드 특수효과로 재현된 영화 속 괴물들의 실감나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영화의 초반 등장하는 키메라의 위용부터가 대단했습니다. 두개의 머리를 가진 불을 내뿜는 이 괴물은 페르세우스(샘 워싱턴)가 사는 마을을 휘젓고 다니며 마구 불을 난사합니다.

물론 저는 페르세우스가 키메라를 물리칠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타이탄]에서 악명높은 메두사와 크라켄도 무찌른 페르세우스니까요. 하지만 키메라의 등장으로 제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페르세우스의 아들 헬리우스 때문입니다. 웅이와 비슷한 또래의 헬리우스는 페르세우스의 아내가 죽은 상황에서 페르세우스에게는 유일한 약점이기도 합니다. 키메라는 등장부터 마치 헬리우스를 노리는 듯 보였는데, 제가 페르세우스가 키메라를 무찌를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괴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기술에 감탄하며 '우와 실감나게 잘 만들었는데...'라고 생각하기엔 이 영화 속 괴물들은 무시무시한 분위기 속에 제게 긴장감을 안겨줬습니다.

부비트랩이 가득한 숲 속에서 페르세우스 일행이 거대한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에게 쫓기는 장면이라던가,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타이탄을 가두기 위해 만든 미로인 타르타로스에서 페르세우스를 기습하는 미노타우르스의 등장 등. [타이탄의 분노] 속 괴물 들은 편안하게 페르세우스의 활약상을 감상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디에서 무시무시한 괴물이 튀어 나올지 모르는 분위기 속에서 긴장하며 페르세우스의 활약상을 보고 나니 제 자신이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뛰어 들어가 괴물들과 맞서 싸운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최고는 역시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마카이와 크로노스입니다. 몸이 두개인 마카이는 그 흉측한 외모로 후반부의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크로노스는 절대악의 상징답게 비주얼 면에서 분위기를 압도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묘미는 비극이다.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등장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 [타이탄의 분노].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부실하지만 그 부실한 스토리 라인을 가득 채운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 특유의 비극성을 잘 살려낸 캐릭터 묘사였습니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절대신인 제우스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절대신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그의 일족인 타이탄이 흉악한 존재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그려졌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제우스는 아버지를 배신한 아들이라는 멍에를 벗지는 못할 것입니다.

[타이탄의 분노]는 그러한 제우스의 캐릭터를 이용합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크로노스와 타이탄족을 타르타로스에 가두지만 싸움은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함께 크로노스를 무찌른 형제들과 다시 권력 다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제우스(리암 니슨)와 하데스(랄프 파인즈)의 반목은 바로 그러한 권력 다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타이탄의 분노]는 제우스와 하데스의 형제 간의 암투와 함께 아버지를 배신했던 제우스가 오히려 아들인 전쟁의 신 아레스(에드가 라미레즈)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극적 아이러니를 이루어 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데스의 캐릭터는 전편인 [타이탄]에서 일정 부분 구축이 되었고, 제우스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지하로 쫓겨난 워낙 유명한 신이라 부연 설명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레스에 대해서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좀 더 부연 설명을 했어야 했습니다. 전쟁의 신인 아레스가 아버지인 제우스를 배신하고 하데스와 함께 크로노스를 부활시켜려 했다는 것은 [타이탄의 분노]에서 완전히 창작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아레스가 제우스를 배신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즉 자신보다는 페르세우스를 더욱 총애하는 아버지 제우스에 대한 복수심과 배다른 동생 페르세우스에 대한 적개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등이 영화 속에 등장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영화적으로 더욱 풍성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타이탄의 분노] 속에 표현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런 비극성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했습니다. 특히 리암 니슨과 랄프 파인즈라는 걸죽한 배우들의 연기력과 맞물려 제우스와 하데스의 캐릭터에서는 카리스마까지 느껴졌는데, 하데스와 아레스에게 배신 당해 모든 힘을 잃은 제우스가 하데스에게 '나는 너를 용서한다. 너도 나를 용서하겠니?'라는 묻는 장면은 찡한 감동마저 느껴졌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나?

 

[타이탄의 분노]에서 페르세우스는 결국 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크로노스를 무찔렀습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제우스의 번개, 포세이돈의 삼지창, 하데스의 창을 합쳐 최강의 무기 트라이움 스피어로 너무 간단하게 크로노스를 무찔러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크로노스의 무시무시한 위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지막 그 장면은 충분히 스펙타클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페르세우스는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사랑을 만났습니다. 페르세우스의 공식적인 아내인 안드로메다(로저문드 파이크)와 타르타로스에서 함께 모험을 한 후 마지막엔 찐한 키스까지 했으니 페르세우스는 이제 가정적 안정을 되찾은 셈입니다.

제우스는 죽습니다. 그럼으로서 신들의 세상이 종말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은 셈입니다. [반지의 제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며 제 눈을 사로잡았던 [타이탄]과 [타이탄의 분노]는 이로서 할 이야기를 모두 마친 셈입니다.

 

하지만 또 모르죠. [타이탄의 분노]가 미국에서 흥행 대성공을 거둔다면 제우스를 되살려서라도 이야기를 이어가거나, 아니면 아예 리부트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진행시킬지도... 제가 [타이탄의 분노]가 미국에서의 흥행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2년 전 저는 [타이탄]을 보며 '그래, 딱 내 스타일이야'를 외쳤던 저는 [타이탄의 분노]를 보며 또 다시 대만족을 느꼈습니다. 역시 웅장한 분위기의 신화가 제 취향과 맞나봅니다.

분명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페르세우스의 이야기와 비교하며 영화를 본다면 [타이탄의 분노]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며, 정교한 스토리 라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부실한 스토리 라인이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전혀 개선하지 못한 한심한 영화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외칩니다. '더욱 다크해진 그리스 로마 신화... 그래, 딱 내 스타일이야.'라고...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타이탄'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