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배틀쉽] - 전쟁영화와 SF영화의 결합이 이번엔 만족스러웠던 이유.

쭈니-1 2012. 4. 12. 16:43

 

 

감독 : 피터 버그

주연 : 테일러 키취, 브룩클린 데커, 리한나, 리암 니슨

개봉 : 2012년 4월 11일

관람 : 2012년 4월 11일

등급 : 12세 관람가

 

 

투표권이 있으면서 투표하지 않은 이들이여! 영화볼 자격도 없다.

 

어제, 그러니까 4월 11일은 19대 총선날이었습니다. 덕분에 수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늦잠까지 푹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하더군요. 가끔 이런 느닷없는 휴일은 역시 직장인에게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하지만 설마 4월 11일을 그냥 놀기만 하는 휴일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은 안계시겠죠? 우리나라의 향후 4년을 책임지는 중요한 선거일이기 때문에 임시공휴일을 선포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휴일이라도 선거는 꼭 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저도 20대 중반까지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후보자들은 전부 똑같은 놈들처럼 보였고, 정치라는 것이 나와는 무관하다 생각했으며,  나 하나 투표한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하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1997년. 김영삼 정부로 인하여 IMF가 맞이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IMF로 인하여 취업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정치라는 것이 내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선거날이 되면 후보자들의 정책을 꼼꼼히 체크하고 꼭 선거를 합니다.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웅이를 데리고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어린 웅이에게 엄마, 아빠가 투표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웅이가 성인이 되면 투표를 하게끔 자연스럽게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투표를 하고, 집에서 푹 쉬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나니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군요. TV에서는 방송 3사의 개표 방송이 한참 진행중이었지만 저는 구피와 함께 [배틀쉽]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임시공휴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휴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배틀쉽]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극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구피가 '최근들어서 극장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본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 30분. 어느 정도 개표 결과가 나와 있는 상황이고 예상 밖으로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이번 총선은 막을 내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투표율은 여전히 60%를 넘지 못할만큼 저조했다고 하네요. 순간 북적거렸던 극장안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설마 그 분들 모두 투표는 하고 영화를 보러 오신 것이겠죠? 18대 총선때보다는 높아졌다고는 하지만(18대 총선 투표율은 46.1%입니다. 헐~) 스스로 국민의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이 무려 45.7%나 된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합니다.

 

 

전쟁영화와 SF영화의 결합

 

암튼 투표를 마치고 저녁에 가뿐한 기분으로 본 영화는 [배틀쉽]이라는 미국의 SF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설정은 간단합니다. 전 세계 해군들이 태평양에 모여 해상 합동 훈련을 하는 와중에 외계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지구를 방문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당연히 지구 정복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지구에는 세계 최강의 미국 해군이 있으니까요.

설마 이 영화를 보시며 '또 미국이 세계를 구하는거야?'라는 반문을 하시는 분은 제발 안계시길 바랍니다. 미국영화이니 당연히 미국이 세계를 구하지, 우리나라가 세계를 구할줄 아셨다면 그건 생트집에 불과하니까요. 그것이 기분 나쁘시다면 할리우드의 SF영화는 안보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하지만 [배틀쉽]에는 요즘 할리우드 SF영화의 한가지 유별난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SF영화와 전쟁영화의 묘한 결합이라는 요소입니다. 예전의 외계인침공영화는 재난영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고, 그러한 특성에 맞게 평범한 사람들이 외계인의 공격에 재난을 당하다가 용기를 내서 맞서 싸워나가는 전개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물론 [인디펜던트 데이]처럼 일반인이 아닌 미국 대통령이 영웅이 되어 외계인을 무찌르는 영화도 존재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일반인의 영웅화가 대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11년 개봉했던 [월드 인베이젼]은 새로운 외계인침공영화의 전형을 제시했습니다. [월드 인베이젼]은 재난영화로서의 외계인침공영화가 아닌, 전쟁영화로서의 외계인침공영화의 전개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몇가지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전쟁이 한동안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영화는 과거를 소재로한 영화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전쟁 자체에 반감을 가진 반전주의자들이 늘어나며 오락영화로서의 영웅주의 전쟁영화는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만들 수 없는 상황입니다.

SF영화와 전쟁영화의 결합은 그러한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이 됩니다. 전쟁영화에 SF의 소재를 결합시키며 전쟁영화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소재로한 영화로 진화되고, 히틀러, 후세인과 같은 절대악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구를 정복하려고 하는 외계인은 절대악의 자리에 앉기에 적합했습니다. 게다가 외계인을 죽였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으니 반전주의자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맘껏 영웅 놀이도 가능합니다. [배틀쉽]은 [월드 인베이젼]이 보여줬던 그러한 이점들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영화입니다.

 

 

내가 [월드 인베이젼]을 싫어하면서 [배틀쉽]은 좋아하는 이유.

 

[월드 인베이젼]에 대한 제 영화 이야기 제목은 '외계인이 나온다고 전쟁영화가 SF영화되냐?'입니다. 제목만 보셔도 대충 짐작을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월드 인베이젼]이 너무 재미없었습니다.

그것은 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입니다. 영화라면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좋아하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건만 제가 싫어하는 영화 장르는 어쩔수없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공포영화와 전쟁영화입니다. 특히 적군을 좀비죽이듯이 실컷 죽이고 영웅으로 등극하는 할리우드식 영웅주의 전쟁영화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 장르입니다. 비록 [월드 인베이젼]은 SF영화의 외형을 띄고 있지만 제 눈에는 그저 영웅주의적인 전쟁영화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월드 인베이젼]을 본 후 '속았다.'라며 기분 나빠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배틀쉽]은? 저와 함께 영화를 본 구피는 [월드 인베이젼]처럼 '속았다.'라며 실망감을 드러냈지만 오히려 저는 '재미있지 않았어?'라고 구피에게 반문했습니다. [배틀쉽]도 [월드 인베이젼]처럼 SF영화의 탈을 쓴 전쟁영화였는데 제가 이런 상반된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캐릭터에 있습니다. 

 

[월드 인베이젼]이 처음부터 타고난 군인인 낸츠(아론 에크하트) 일행을 영웅으로 설정했던 것과 달리 [배틀쉽]은 알렉스 하퍼(테일러 키취)라는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웁니다.

제가 영화의 처음부터 그에게 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알렉스가 사만다(브룩클린 데커)를 유혹하기 위해 벌이는 '치킨 브리또' 에피소드 때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구피를 꼬시기 위해 한 밤중에 구피가 먹고 싶다고 하는 딸기를 찾아 헤맨 기억이 있습니다. 알렉스처럼 편의점을 터는 미친 짓은 안했지만 호프집 주인에게 선물로 들어온 딸기를 몇 만원이나 주며 겨우 얻어와 구피의 환심을 샀었습니다. 이렇듯 똘끼 충만한 알렉스 하퍼라는 캐릭터는 10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월드 인베이젼]의 낸츠가 영웅이 되기 위한 매우 평면적인 캐릭터라면 [배틀쉽]은 알렉스 하퍼라는 영웅이 되기엔 많이 부족한 캐릭터를 내세워 그의 영웅으로서의 성장을 담고 있습니다. 피터 버그 감독은 똘끼 충만한 좌충우돌 사고뭉치가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하는 전개를 이미 [핸콕]에서 선보인바 있습니다. 한마디로 알렉스 하퍼는 피터 버그 감독의 주특기를 잘 살려낸 캐릭터인 셈입니다.

  

 

스케일의 크기로 압도하다.

 

[월드 인베이젼]과 [배틀쉽]의 차이는 또 있습니다. 바로 스케일의 크기입니다. [월드 인베이젼]은 제작비 7천만 달러의 중소 영화입니다.(대부분 제작비가 1억 달러는 넘어야 블록버스터라고 합니다.) 하지만 [월드 인베이젼]은 미국내에서는 8천3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미국외 지역에서는 1억2천8백만 달러를 벌여들였고,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월드 와이드 성적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월드 인베이젼]의 흥행 성공에 자신감을 가졌는지 [배틀쉽]에 투입된 제작비는 무려 2억 달러입니다. 월드 와이드 성적이 4억 달러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제작비 회수가 어려운 영화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커진 제작비는 영화의 스케일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월드 인베이젼]이 아기자기한 시가지전을 주로 그려냈다면, [배틀쉽]은 해상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해상전답게 전세계의 거대한 군함이 다수 등장하고, 외계인의 전투함 역시 인간들의 군함을 압도할 만큼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스케일로 압도하는 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특징인데, [월드 인베이젼]에서는 그러한 압도적인 스케일의 부재로 영화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거둬들이지 못했다면, [배틀쉽]은 처음부터 압도적인 스케일로 영화를 보는 저를 압도함으로서 전쟁영화에 대한 제 삐딱한 시선을 차단시켰습니다.

 

그 외에도 [배틀쉽]은 장점이 꽤 많은 영화입니다. [월드 인베이젼]의 여군 알레나 산토스(미셸 로드리게즈)를 연상하게 하는 코라 레익스(리한나)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사만다 셰인이라는 섹시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남성 관객을 만족시킵니다. 강인한 여전사와 섹시한 금발 미녀... [배틀쉽]은 이 두가지 캐릭터를 모두 잡아낸 셈입니다. 

영웅을 알렉스 하퍼 하나로 한정짓지 않고 늙은 퇴역 군인, 일본인 장교, 군 생활 중 두 다리를 잃은 흑인 병사 등 다원화 시킨 것도 영리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외계인에 대한 설정도 괴물이 아닌 인간다운 외계인으로 설정한 것 역시 제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 뜨거운 장면들 역시 수두룩합니다. 이젠 골동품이 된 오래된 전함과 늙은 퇴역 군인들이 나서는 장면은 노골적으로 영웅주의 영화로서의 손발이 오글거림을 느끼게 하고, 예정된 수순으로 영웅이 되는 알렉스 하퍼는 초반의 그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가 후반이 되면 될수록 점점 평면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특히 '형이라면 이렇게 했을거야.'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에서부터 알렉스 하퍼의 캐릭터는 급작스럽게 바뀌어 버립니다.)

기대했던 리암 니슨은 거의 단역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 염두에 두셔야 할 사항입니다. 이 영화의 유일한 할리우드 스타이다보니 영화의 홍보는 리암 니슨을 위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그는 초반과 후반에만 잠시 등장할 뿐입니다. 이렇듯 [배틀쉽]은 100% 만족스러운 영화는 분명 아니었지만 할리우드 특유의 스케일을 만끽할 수 있는 꽤 재미있는 SF, 전쟁영화임에는 분명해보입니다.

 

 

미 해군의 영웅화? 너무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말자.

어차피 이건 외계인 침략을 그린 SF영화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