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형준
주연 : 박희순, 박시연, 주상욱, 김정태, 이광수
개봉 : 2012년 4월 11일
관람 : 2012년 4월 12일
등급 : 18세 관람가
한국형 [원초적 본능]이 되겠다고 했다.
[간기남]... 풀어서 쓰면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입니다. 요즘 영화들은 제목도 잘 짓던데, 솔직히 이 영화의 제목은 비호감이었습니다.
게다가 박희순과 박시연의 주연 라인도 제게 큰 기대를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박희순은 최근 본 [가비]에서 고종황제 역으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그 전까지는 그저 그런 배우였고, 박시연은 분명 섹시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였지만 그녀의 연기력에는 언제나 의문부호가 따라 다녔습니다.
에로, 코미디, 스릴러라는 복합 장르를 취하고 있는 [간기남]. 영화를 예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멸망보고서]와 [간기남]을 두고 고민을 해야 했던 저는 결국 [간기남]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가 [간기남]의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박시연의 노출씬 때문이라고 한다면 딱 50%만 맞는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그저 단순하게 박시연의 노출씬만 있는 영화라면 저는 [간기남]을 보기 위해 목요일 밤에 혼자 극장을 찾는 수고를 굳이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간기남]에서의 박시연의 노출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로 [원초적 본능]의 향기입니다.
[원초적 본능]. 아직도 저는 그 영화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20년 전의 초여름에 종로3가의 허리우드 극장에서 봤던 [원초적 본능]은 이후 제게 '팜므파탈'을 소재로 한 영화의 바로미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을 능가하는 '팜므파탈'을 저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여인의 그 치명적인 매력과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여인의 매력에 빠져드는 남자. 그리고 닥치는 위험한 상황. 영화 속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보는 제게 [원초적 본능]은 마이클 더글라스가 느꼈던 혼란이 제게도 생생하게 전해진 영화였습니다.
[간기남]의 김형준 감독은 노골적으로 [원초적 본능]을 언급합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아예 [원초적 본능]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오기까지 합니다. 간통 사건을 강선우(박희순)에게 의뢰하는 한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의자에서 다리를 꼬는 장면인데... [원초적 본능]의 그것과 비교는 불가하지만 [간기남]이 한국형 [원초적 본능]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밝히는 장면임에는 분명합니다.
박시연표 팜므파탈은?
20년 전, [원초적 본능]의 충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저는 [간기남]이 한국형 [원초적 본능]을 표방한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 영화의 홍보가 박시연의 노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간기남]이 [원초적 본능]을 표방하고 있다면 그러한 홍보는 어쩔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박시연은 샤론 스톤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일단 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구미호 가족]에서부터 느꼈지만 박시연이 가지고 있는 섹시함은 국내 여배우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박시연의 섹시함을 [간기남]은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선우와 수진(박시연)이 유족방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장면은 영화를 보면서 숨이 탁탁 막힐 정도로 자극적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의 정사 장면은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장길수 감독, 이영하, 심혜진 주연의 [실락원]에서도 등장하는데, [실락원]과 [간기남]에서의 두 장면을 비교해 본다면 박시연의 섹시함이 얼마나 독보적인지 잘 비교가 되실겁니다.(당시 심혜진도 모델 출신 여배우로 섹시함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을 넘어서려면 치명적인 섹시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물론 '팜므파탈'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남성을 유혹할 수 있는 섹시함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지켜주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순수함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영화의 초반 박시연은 그러한 순수함을 잘 표현해 내는 듯이 보입니다. 부유한 남편과의 결혼 생활.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여자 관계가 복잡했고, 수진에게 변태적 섹스를 강요하며,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영화의 초반, 수진은 완벽한 피해자였습니다. 선우도 남편의 살인 현장에 있는 수진을 의심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순수한 표정에 그녀를 돕기 시작합니다. 과연 수진은 피해자인가? 아니면 선우를 이용하려는 가해자인가? [간기남]이 그러한 의문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면 박시연표 팜마파탈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뒷심이 부족했습니다. 수진은 너무 성급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선우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수진의 매력에 허우적거리며 좀 더 사건의 진실에서 멀어질 시간적 여유를 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후반에 접어들자마자 성급하게 모든 진실을 풀어 놓습니다. 박시연표 팜므파탈이 절반만 성공한 이유입니다.
웃음? 장점도 많지만 단점이 더 많다.
김형준 감독은 [간기남]을 연출하며 일단 [원초적 본능]과 차별점을 두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진이라는 캐릭터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이지만 코미디라는 한국적 흥행 요소를 [간기남]에 끼워 넣음으로서 분위기 면에서 [원초적 본능]과는 상반된 연출을 감행한 것입니다.
솔직히 [간기남]의 코믹 요소는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특히 조연인 김정태의 언어유희는 영화를 보는 도중 전혀 예기치 못한 웃음을 전해줍니다.
박희순 역시 기본적으로 코믹 연기가 되는 배우이고, 선우의 조수인 기풍 역의 이광수는 바보 연기를 통해 깨알같은 웃음을 전해줍니다. 영화에서 잔뜩 폼을 잡고 나오는 한길로(주상욱) 형사는 선우를 쫓는 와중에도 무임 승차를 하지 않고 지하철 카드를 찾는 엉뚱한 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간기남]은 수진과 사건에 연류된 몇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에게 코믹한 면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그럼으로써 [간기남]은 살인 사건을 소재로한 스릴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코믹한 장면들은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간기남]에서도 오히려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됩니다.
김형준 감독의 데뷔작은 [용서는 없다]입니다. 설경구와 류승범이 주연을 맡은 하드보일드 형식의 스릴러 영화인 [용서는 없다]는 그러나 흥행에서 쓴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아마도 [간기남]에 코믹 요소가 부각된 것은 [용서는 없다]의 흥행 부진이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잔인한 장면들과 섬뜩한 설정으로 가득했던 [용서는 없다]에 비해 [간기남]은 힘을 쭈욱 빼고 관객에게 부담없이 다가서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김형준 감독의 의도는 너무 과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코믹 요소로 영화의 소소한 재미를 이끌었다면 성공적일 수도 있었지만 이 영화가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코믹 요소가 너무 부각되어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을 잃는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장례식장에서의 선우와 수진의 그 숨막히는 유희 장면. 선우가 수진의 섹시한 매력에 더욱 빠져드는 중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서형사(김정태)의 에드리브 대사 하나로 그 모든 설정에 웃음과 함께 먼지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간기남]은 이런 식입니다. 뭔가 긴장을 느낄 장면에서 코믹한 설정으로 인해 긴장감보다는 예기치못한 웃음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김형준 감독은 [용서는 없다]와는 반대로 힘을 쭈욱 뺀 부담없는 스릴러 영화를 완성하긴 했지만 코믹 요소와 긴장 요소를 잘 조합하지 못함으로서 영화의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우리 모두 유혹에는 약하더라도 지킬건 지키자.
전체적으로 영화의 점수를 주자면 70점 정도 주고 싶습니다. 일단 박시연의 섹시 연기는 절반만 성공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간기남]이 [원초적 본능]을 넘어서는 것이 무리였다는 현실은 인정한다면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한국영화 중 [간기남]처럼 치명적인 팜므파탈을 등장시킨 영화는 아직까지 없었으니까요.
영화의 코믹 코드들 역시 스릴러 영화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영화의 재미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비록 수진의 팜므파탈로서의 매력이 너무 빨리 봉인 해제가 되어 버리고, 스릴러 영화로서의 짜임새와 긴장감은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는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줘도 큰 무리는 아닌 듯이 보입니다.
특히 저는 박희순이 연기한 강선우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정의감에 불타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사악하지도 않습니다. 여성의 유혹에 약하고 돈을 밝히지만 그건 평범한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제가 선우라는 캐릭터가 맘에 들었던 것은 그런 평범함입니다. 비록 섹시한 여성의 유혹에는 약하지만 절대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지 않는 정신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수진의 섹시한 매력에 넘어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섹스를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고요? 그는 지키고 싶은 가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통... 그것은 달콤한 유혹이지만 가정보다 소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통죄... 논란이 많은 범죄입니다. 어느 누구는 개인의 사생활을 법으로 제한을 두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폐지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는 결혼을 하는 순간 가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간통을 저지르는 것은 가정을 파괴하는 엄연한 범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두 논리가 모두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선택권은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상대에 대한 사랑, 욕망이 자신의 가정을 파괴해도 좋을만큼 간절하지 않다면 굳이 법이 아니더라도 가정을 지키려는 스스로의 의지가 발휘되어야 합니다. 선우는 바로 그런 캐릭터인데, 유혹에 약한 평범한 남자지만 가정을 위해 지킬건 지킵니다. 그런 선우의 현실적인 캐릭터 덕분에 스릴러영화로서의 단점이 장점보다 많은 이 영화를 저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흥행에 대한 김형준 감독의 욕망은 잘 안다.
하지만 강선우가 그러했듯이 김형준 감독도 자신의 욕망을 조금 자제하며
스릴러영화로서 지킬건 지키며 영화를 전개해 나갔다면
[간기남]은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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