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윤현
주연 : 김소연, 주진모, 박희순, 유선
개봉 : 2012년 3월 15일
관람 : 2012년 3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가비]의 의외의 흥행부진
2012년 설 연휴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의 박스오피스 대습격이 벌써 두 달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설 연휴가 전통적인 한국영화의 강세 시기이고, 2월은 극장가의 비수기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쓴 영화는 물론, 미리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마저 속속들이 한국영화들에 무릎을 꿇고 있으니 이변이라면 이변이라고 할 수 있을 듯이 보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비]가 개봉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비]는 2월의 기대작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대극이면서 조선말 고종의 암살에 이용된 커피의 비밀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역시 제가 [가비]를 기대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와는 달리 [가비]는 최근 박스오피스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박스오피스를 선점한 [화차]에 밀리고 있는 것은 물론, 같은 날 개봉한 저예산 할리우드 SF 영화 [크로니클]과 벌써부터 2012년 망작 리스트로 거론되고 있는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에까지 뒤진 4위이니 이것 또한 이변이라면 이변이라고 할 수 있을 듯이 보입니다.
[가비]를 보고 왔습니다. 이미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을 통해 [가비]가 기대와는 달리 흥행 성적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라 저는 [가비]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도대체 그 무엇이 [가비]를 부진한 흥행으로 이끌었는가?'라는 궁금증을 먼저 품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다는 불치의 병인 월요병이 발병한 월요일. 귀차니즘이 저를 자극했지만 [가비]를 내 눈으로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월요일 늦은 밤에 보게 된 [가비]는 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초반 생략은 너무 과했고, 초반 생략으로 인한 일리치(주진모)와 따냐(김소연)의 캐릭터 설정은 부실했으며, 캐릭터가 부실하니 극의 전개 역시 긴장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때 [접속]을 통해 인터넷 세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멜로 영화를 창조해냈고, [텔 미 썸딩]을 통해 당시에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한국형 스릴러 영화에 용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장윤현 감독. 하지만 [썸]과 [황진이]의 연속된 부진 속에 절치부심하며 내 놓은 신작으로 [가비]는 부족함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제가 어느덧 중견 감독이 된 그의 복귀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나봅니다.
초반의 생략으로 인하여 [가비]가 잃은 것들.
지난 [화차]의 영화 이야기에서 밝혔지만 원작을 지닌 영화들이 가져야할 최고 덕목은 생략과 집중을 통해 원작의 무엇을 버리고,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화차]는 성공한 사례이고, [가비]는 실패한 사례입니다.
제가 [가비]의 원작을 읽지도 않은 주제에 감히 [가비]가 원작에 대한 생략과 집중에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이 영화의 초반부 때문입니다.
장윤현 감독은 꽤 스피드하게 영화의 초반부를 진행시킵니다. 그는 일리치와 따냐가 일본의 첩자가 되어 고종(박희순)의 암살 계획에 뛰어드는 것에 영화의 모든 것을 집중하겠다는 듯이 관객 입장에서 '대충 넘어간다'라고 느낄 정도로 초반을 과도하게 생략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략된 초반 탓에 [가비]가 잃은 것은 의외로 큽니다. 그것은 바로 일리치와 따냐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화차] 역시 초반의 스피드한 전개를 통해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의 캐릭터를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문호는 이선균의 배우적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완성되었고, 선영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캐릭터를 완성해 나갔기 때문에 [화차]를 즐기는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비]는 다릅니다. 일리치와 따냐의 캐릭터는 긴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복잡합니다. 주진모와 김소연의 배우적 이미지로 완성될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셈입니다.(솔직히 문호의 캐릭터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우선 따냐부터 보면... 따냐는 매우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종의 명을 받고 은밀하게 조선과 러시아를 오고가다가 암살을 당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던 따냐는 일리치에게 의지한채 강한 여성으로 성장합니다.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이 마치 스치고 지나가 듯이 가볍게 지나가버립니다. 따냐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 의심이 많은 조선의 왕 고종이라는 오해 때문에 고종에 대한 복수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복수심이 따냐를 고종 암살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게 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가비]의 그 어디에도 그런 따냐의 복잡한 내면 따위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지 사다코(유선)의 협박으로 인하여 고종 암살에 뛰어든 것으로만 설명됩니다.
솔직히 사다코의 협박 장면도 초반에 너무 가볍게 지나가다보니 따냐의 행동이 제게 전혀 공감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따냐는 좀 나은 편입니다. 일리치의 무성의한 캐릭터 구축은 따냐보다 훨씬 심합니다.
사랑? 가장 편하면서 가장 위험한 캐릭터 구축 방법
일리치는 따냐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는 캐릭터입니다. 마치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외쳤던 80년대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까치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따냐를 살리기 위해 그는 일본의 장교가 되었고, 동족인 조선인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동족을 죽이는데 있어서 그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사다코에게 '나를 이기려면 조선을 더 매몰차게 버려라.'라고 충고할 정도로 무자비합니다.
그러한 그의 모든 행동이 단지 '따냐를 사랑하기 때문에...'로 단순화됩니다. 사랑... 그 하나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은 영화가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가장 편한 방법입니다. 그의 무자비한 행동이 따냐를 위해서라는 단 하나의 전제조건으로 모두 설명이 되니 길게 캐릭터를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사랑은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편한 방법임과 동시에 가장 위험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80년대에만 해도 '숭고한 사랑'은 영화에서 절대적인 힘을 과시했지만 지금은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촌스러운 영화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가비]가 그러합니다. 영화를 보며 그렇게 따냐를 사랑한다면 그냥 둘이 야밤도주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냐가 고종 암살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녀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일본이 따냐를 지켜줄 가능성 역시 제가 보기엔 제로에 불과하고요.
일리치가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까요? 하지만 그는 고종만 암살하면 된다며 따냐를 다그칩니다. 그러면서 열성적으로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하며 동족인 조선인들을 죽입니다. 그는 '내겐 조국따위는 없다. 오로지 따냐만 있다.'라고 외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의 외침이 전혀 공감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리치의 사랑이 공감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리치를 '따냐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으로만 캐릭터를 구축하고 나니 마지막 장면 역시 감동 대신 유치함이 밀려옵니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어.'라는 촌스러운 캐릭터는 정말 오랜만인듯 하네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일본으로 팔려진 사다코의 캐릭터 역시 엉망진창인데, 자신을 버린 조선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야망, 그리고 일리치를 향한 사랑 등 그녀의 캐릭터는 꽤 복잡해 보이지만 영화 속의 그녀는 그저 악당에 불과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초반의 과도한 생략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략은 캐릭터를 구축할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고, 그렇게 부실한 캐릭터를 '사랑' 하나만으로 이어나가려하니 공감도 안되고 촌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이죠.
약소국의 왕으로 산다는 것.
그나마 제가 [가비]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박희순이 연기한 고종 덕분입니다. 조선말, 조선을 삼키려는 일본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 학창시절 저는 국사 시간에 고종을 힘 없고, 비겁한 왕이라 배웠습니다.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아내인 명성황후의 등쌀에 시달리는 줏대없는 왕이었고, 열강의 침략에 궁을 버리고 도망친 비겁한 왕이라 배웠습니다.
하지만 [가비]의 고종은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일본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피했지만 그는 대만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사정을 이용하여 조선의 군대를 양성하고 국력을 키우려 합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독살을 염려하여 통조림에 든 음식만을 먹는 그이지만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는 당당하려 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장면은 그래서 통쾌했습니다. 고종은 조선을 제국이라 선포함으로서 열강들 속에서 조선의 위치를 격상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결국 고종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야욕 앞에 쓰러지고 맙니다. 헤이그 밀사등을 통해 국력을 회복하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고 순종에게 양위한 후 퇴위 당합니다. 그는 1919년 1월 21일 일본인에게 독살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종은 말합니다. 왕이 되고 난 이후부터 모든 음식이 쓰다고... 커피의 쓴 맛은 그러한 고종의 외로움, 고통과 잘 어울립니다. 망해가는 조선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그는 그렇게 쓰디쓴 커피의 향과 같은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가비]에서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정관헌(고요할 정, 바라볼 관, 곳 헌)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그의 최후를 잘 알기에 고종의 마지막 모습은 따냐를 위해 죽어가던 일리치의 모습보다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비]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일리치와 따냐입니다. 특히 따냐는 조선 시대의 서양 문물인 가비 즉 커피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가비]가 따냐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리치에게 가비는 사랑이었고, 고종에게 가비는 제국의 꿈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관통하며 그 한가운데 서있는 것은 바로 따냐이며, 이 두가지 축이 한데 어우러졌을 때 [가비]의 영화적 재미는 온전하게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초반의 과도한 생략으로 따냐와 일리치의 캐릭터를 미처 완성하지 못한 [가비]는 영화의 한 축인 일리치의 사랑을 공감시키지 못한채, 고종의 제국의 꿈만으로 영화를 진행시킨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비의 쓴 맛과도 같은 망국의 서러움. [가비]는 그러한 서러움과 마찬가지로 가비의 치명적인 향기로운 향과 같은 일리치와 따냐의 슬픈 사랑도 좀 더 세밀하게 부각시켰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나는 지금 인스턴트 커피의 달달한 향을 맡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고종이 마셨을 가비의 쓰디씀을 맛보고 싶다.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일국의 왕이 느꼈을 그 쓰디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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