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알 포인트] - 전쟁이야말로 진짜 공포다.

쭈니-1 2009. 12. 8. 17:05

 



감독 : 공수창
주연 : 감우성, 오태경, 손병호
개봉 : 2004년 8월 20일
관람 : 2004년 8월 27일


저는 전쟁 영화를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여러번 밝혔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이용하여 적과 아군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뻔한 영웅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뻔뻔스러운 헐리우드 전쟁 영화를 수없이 봐왔기때문에 이젠 전쟁 영화를 보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저는 공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나면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기왕이면 유쾌한 코미디 영화를 선호합니다. 게다가 이번 여름엔 벌써 두편의 공포 영화([령], [인형사])를 보고난후라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써는 3편의 공포 영화를 연달아 보는 것은 여간 꺼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개봉된지 일주일이 지난 영화는 왠만하면 극장에서 보지 않습니다. 그건 오랜 제 징크스이기도한데 아주 오래전에 인터넷 예매가 활성화되지 않아 영화 한편 보려면 극장에서 줄서서 예매해야했던 그 시절 저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시간을 투자해서 예매하기는 싫어서 무작정 극장으로 갔다가 표가 없어서 되돌아오기를 여러번... 결국 개봉한지 몇주만에 영화를 보게 되었지만 이미 영화의 내용을 들어버린 후라 별로 재미있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징크스는 [타이타닉]까지 이어졌고, 결국 저는 보고 싶은 영화는 왠만하면 개봉 첫주에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알 포인트]를 봤습니다. [알 포인트]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 영화이며, 공포 영화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주엔 헐리우드 액션 영화인 [본 슈프리머시]를 봤기 때문에 [알 포인트]를 보기로 결심한 그날은 이미 [알 포인트]가 개봉된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동안 저는 이 영화에 대한 스토리를 전부 파악해버렸고, 영화의 막판에 나온 베트남 여자 귀신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글들을 벌써 읽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알 포인트]를 제 기준에 의하면 봐서는 안될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네티즌의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이끌려 결국 저는 새로 개봉되는 영화들을 외면하고 [알 포인트]를 보고 말았습니다.


 


  
[알 포인트]를 보고나서 느낀 것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전쟁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라는 겁니다. 물론 [알 포인트]는 전쟁 영화라기보다는 공포 영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태극기 휘날리며]를 생각해보죠. [태극기 휘날리며]는 우리 전쟁 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걸작이며, 제가 처음으로 좋아하게된 전쟁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전쟁 영화입니다. 동족끼리 서로 총을 겨누어야했던 비극적인 6.25전쟁을 소재로 했기 때문입니다. 겨우 이념이라는 어찌보면 한시대의 유행과도 같은 사상때문에 형제끼리, 이웃끼리 서로 죽여야했던 이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태극기 휘날리며]는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표현을 한겁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가장 어울리는 것은 슬픔이 아닌 공포입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하는 상황에서 슬픔은 사치에 불과한 겁니다. 그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남더라도 얼굴도 모르는 적을 죽이며 살아남은 자에겐 삶의 기쁨보다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영원히 공포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헐리우드의 전쟁 영화는 그러한 공포를 철저히 무시하고, 전쟁을 스펙타클한 블럭버스터의 소재로 이용하여 정의를 위해서 목숨바쳐 적을 무찌르는 영웅 드라마로 만들어버리곤 합니다. 여기에서 적은 반드시 죽어 없어져야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주인공이 적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관객들은 환호하게 됩니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 그건 애초에 없거나 있더라도 주인공의 인간성을 부각시키려는 뻔뻔한 의도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알 포인트]가 해낸겁니다. 헐리우드의 전쟁 영화들이 흥행을 위해서 쳐다도 보지 않은 공포라는 소재를 [알 포인트]는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영화엔 적은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죄책감으로인해 형상화된 귀신이라는 극한 공포의 존재와 싸워야합니다. 전쟁의 공포... [알 포인트]는 바로 이것을 간접적인 방법이지만 제대로 잡아낸 겁니다.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해낸 수확입니다.


 



공수창 감독은 전쟁의 공포를 표현하기위해 관객을 으쓱한 밀림의 한가운데로 안내합니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치열한 전투의 한가운데가 아닌 전쟁터라고하기엔 너무나도 고요한 밀림을 선택한 공수창 감독의 선택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물론 이 영화가 처음부터 베트남전에서의 실화를 소재로했기에 밀림이라는 공간의 선택은 필연적이었겠지만 여하튼 전쟁터가 아닌 밀림을 선택은 이 영화의 성공의 밑거름입니다.
만약 이 영화가 치열한 전쟁터를 배경으로 잡았다면 헐리우드 전쟁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군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볼 것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분명 강제규 감독은 6.25전쟁을 형제끼리의 전쟁으로 표현하며 북한군을 적군이 아닌 전쟁의 희생자로 표현하려고 애썼지만 이 영화를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보고 느끼신 분들도 적지 않더라는 겁니다.
[알 포인트]는 처음부터 적군이라는 전쟁 영화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를 지워버립니다. 주인공들을 적군이 존재하지 않는 밀림으로 안내함으로써 처음부터 적군이라는 개념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영화는 시작하는 겁니다. 적군이 없는 전쟁 영화. 바로 이러한 요소가 이 영화의 공포를 극대화시킵니다. 적군이 있을 경우에는 살아남기위해 다른 그 무엇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막상 적군이 사라지고나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밀림은 바로 그러한 죄책감의 공간이며, 그러한 죄책감은 살아남으려는 공포보다도 살아남은 후의 죄책감에 대한 공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잡아냄으로써 [알 포인트]를 전쟁 영화임과 동시에 정말 무서운 공포 영화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듯 [알 포인트]가 놀라운 전쟁의 공포를 완성하는 동안 관객들은 또하나의 발견을 이루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감우성이라는 배우의 존재입니다.
감우성... 솔직히 저는 이 배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TV 드라마에 출연했을때부터 개성없이 번지르하게 잘생기기만 외모와 밋밋한 연기력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배우 감우성은 가능성을 보여주더니만 결국 [알 포인트]에서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발휘합니다.
냉정하면서도 냉소적이고 여유로워보이면서도 날카로운 직관력을 가진 최태인 중위라는 캐릭터는 감우성이라는 배우를 만남으로써 관객에게 최대한 각인됩니다. 최태인 중위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며 공포 영화로만 흐를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잘 잡아줍니다. 감우성이라는 배우가 영화의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산만해질 수도 있었던 이 영화는 무게를 잡은 겁니다.
물론 진창록 중사 연기를 한 손병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장영수 병장을 연기한 아역 탤런트 출신의 오태경의 연기 역시 이 영화의 새로운 발견입니다. 하지만 역시 감우성이 이 영화의 최대 히어로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거미숲]이 감우성이라는 배우 덕분에 갑자기 보고 싶어졌습니다.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감우성... 정말 반갑습니다. ^^
결국 이 영화는 전쟁 영화는 무조건 재미없다는 제 편견을 부수었으며, 공포 영화도 보고나서 찝찝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으며, 개봉한 주에 영화를 보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징크스를 깨뜨림과 동시에 감우성이라는 새로운 배우를 발견하게끔 했습니다. 정말 이래저래 제겐 꽤 의미가 깊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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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럿
네이버 영화평에서 보고 여기 왔습니다. 저 또한 거기에 알포인트 감상평을 남겼는데... 저도 '적이 없는 전쟁 영화' 라는 게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라는데 공감합니다.

만약 알포인트가 교전지역이었다면 절대로 이와같은 공포는 없었겠죠.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죄책감과 분노를 '적' 이라는 존재를 향해 쏟아부을 수 있었을 테고, '적' 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기 내면을 잠시 잊으며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오히려 알포인트가 교전지역이 아닌, 물리적으로는 안전 지대였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이 서시히 미쳐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미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공용화기와 수류탄, 대전차무기까지 갖고 무장한 군인들은, 그 상황에서 자기 내면의 분노를 발산할 상대를 찾지 못한 겁니다. 그러다보니 환상에 시달리고 서로를 죽이거나 스스로 무너지는... 결국 지리멸렬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결국 전쟁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공포입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아무리 무서운 무기를 들고 있었기로서니 저렇게 지리멸렬해가지는 않았을텐데요. 전쟁이 주는 공포가 결국 그들을 죽이고 말았던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무섭기 보다는 슬펐습니다. 비록 베트남인들 입장에서는 침략자들이었겠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선량한 개인들이었고 사회의 중하류층 이하에서 꼭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쟁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오늘의 물질적 풍요도 있었던 거고요. 그런 그들이,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불쌍하게도 지리멸렬해 가면서 죽어간다는 건 너무나 슬픈 설정 같습니다.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2004/09/01   
쭈니 오홋~ 정말 멋진 글을 남겨 주셨군요.
제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를 적절하게 꼬집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와 주세요. ^^
 2004/09/01   
CM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시실리도 봤는데 그건 제 취향이
아닌지..별루더군요..ㅠㅠ 조만간 한번더 보고 제대로 이해
해보려고 생각중입니다.ㅎ

저도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꾸벅 _ _
 2004/09/07   
쭈니 감사합니다.
사실 그리 잘쓴 글은 아닌데...
이 영화에 남겨진 의문점들은 하나도 분석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분석에 약해서리... ^^
 2004/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