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폴 그린그라스
주연 : 맷 데이먼, 프랑카 포텐테, 조안 알렌, 줄리아 스타일스
개봉 : 2004년 8월 20일
관람 : 2004년 8월 20일
시리즈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2시간내외로 압축된 스토리 라인으로 인하여 억측섞인 생략으로 일관하는 영화보다는, 몇년을 기다리고서라도 몇편의 시리즈로 서서히 완결되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정말 색다른 즐거움입니다.
이러한 시리즈 영화엔 (제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면)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한명의 감독이 시리즈를 완성시킴으로써 영화의 일관성을 지키면서 방대한 영화의 스토리를 착실하게 관객에게 전달시키는 시리즈 영화와, 각각의 시리즈를 다른 감독이 맡아 연출함으로써 같은 시리즈 영화라도 각기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리즈 영화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반지의 제왕]과 [매트릭스]가 대표적인 경우이며, 후자의 경우는 [에이리언], [미션 임파서블]이 좋은 예일겁니다.
2002년에 개봉되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둔 [본 아이덴티티]의 속편인 [본 슈프리머시]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영화입니다. 물론 아직 시리즈가 막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만 놓고 본다면 분명 [에이리언]에 버금가는 정말 다른 스타일의 시리즈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슈프리머시]의 연출을 맡은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라는 캐릭터만 남겨놓고 전편이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저는 어쩌면 이렇게 같은 시리즈 영화가 이토록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 사랑은 없다. 단지 치열한 생존 경쟁만 있을 뿐이다.
[본 슈프리머시]가 [본 아이덴티티]와 비교해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제이슨 본의 사랑입니다.
[본 아이덴티티]를 연출한 덕 리만감독은 액션 영화로는 드물게 제이슨 본과 마리(프랑카 포텐테)의 사랑에 스토리 라인을 집중시켰습니다. 대부분의 액션 영화가 주인공의 사랑은 단지 영화의 양념으로만 이용했던 것에 반에 덕 리만 감독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냉혹한 킬러의 사랑에 주목했습니다. 결국 덕 리만의 그러한 의도는 제이슨 본을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아닌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싶을 뿐인 가련한 남자로 탈바꿈 시켰으며, 그렇기에 제이슨 본의 사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처음부터 마리를 죽이며 시작합니다. 자신의 킬러 본능이 마리라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자제되어지는 상황에서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영화의 초반에 아예 마리를 죽임으로써 제이슨 본의 킬러 본능을 잠깨웁니다. 마리의 죽음으로 극도의 분노를 느낀 제이슨 본은 [본 아이덴티티]에서처럼 도망다니지 않고 적극적으로 적을 찾아 나서며 복수를 감행합니다. 이렇듯 마리의 죽음은 [본 슈프리머시]를 더욱 짜릿한 액션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본 아이덴티티]가 액션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얌전한 편에 속해있었다면 [본 슈프리머시]는 사랑이라는 굴레를 벗음으로써 액션 영화의 본분을 착실하게 실행해 나갑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제이슨 본의 사랑을 철저하게 배척해버린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영화의 중반 이후에도 그러한 소신을 굽히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출연진에 줄리아 스타일스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제이슨 본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습니다. 니콜라(줄리아 스타일스)와 제이슨 본의 사랑을 중반 이후에 삽입시켜도 무방할듯이 보이는데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그따위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제이슨 본의 복수와 누명을 벗기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폴 그린그라스 감독의 선택이 [본 슈프리머시]를 전편과는 판이하게 다르면서도 전편보다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속편으로 만들어냈습니다.
2. 복고적인 액션은 없다. 어지러운 신감각적 액션만 있을 뿐이다.
[본 아이덴티티]의 또다른 특징은 요즘 헐리우드의 액션 영화답지않게 참 복고적이라는 점입니다. 감각적인 액션씬도 없고, 거대한 폭발씬도 없습니다. 단지 착해보이는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를 이용한 복고적인 액션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이 [본 아이덴티티]를 색다른 액션 영화로 만들어냈었습니다.
하지만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복고적인 액션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손에 땀을 쥐게하는 신감각적인 액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마치 관객이 액션의 현장속에 서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영화의 그러한 효과는 핸드헬스 카메라에 의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액션 영화들이 액션의 장쾌함을 표현하기위해 액션씬을 관객에게 정면으로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본 슈프리머시]는 카메라를 심하게 흔들어댐으로써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조차 혼돈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혼돈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제이슨 본의 상황에 맞아 떨어짐으로써 관객과 제이슨 본의 감정이입을 극대화 시킵니다. 제이슨 본과의 감정이입이 극대화된 관객들은 마치 주인공의 혼돈의 상황속에 자기 자신이 서있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죠.
아마도 그러한 [본 슈프리머시]의 효과는 폴 그린그라스 감독의 전작인 [블러디 선데이]에서부터 이어진 것입니다. [블러디 선데이]를 아직 보지 못한 저로써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이 영화를 본 분들에 의하면 [블러디 선데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피의 일요일 한가운데에 서있는듯한 아찔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군요.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본 슈프리머시]를 보고나니 확실하게 느끼겠더군요.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인 독일에서의 차량 추격씬을 보고나면 온몸이 뻐근해집니다. 마치 내 자신이 제이슨 본의 차에 타고 있었던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거죠. [본 슈프리머시]를 보고나니 더욱더 [블러디 선데이]를 보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그 누가 그 악명높은 피의 일요일 한가운데에 서있기를 원하겠습니까?
제이슨 본의 사랑을 중점으로 스토리를 중시하며 복고적인 액션을 보여줬던 [본 아이덴티티]에 비해, 한층 강화된 스펙타클과 핸드헬스 카메라에 의한 신감각적 액션에 중점을 둔 [본 슈프리머시]는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만 없었다면 완벽하게 다른 각각의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시리즈 영화의 묘미입니다.
[반지의 제왕]처럼 한편의 영화를 3편의 시리즈로 나눠보면서 무려 3년동안이나 감동을 이어나가는 묘미와 하나의 캐릭터와 동일한 상황설정만으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른 영화가 탄생되는 것을 지켜보는 짜릿한 즐거움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리즈 영화인 겁니다. (물론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처럼 나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뻔한 시리즈 영화도 있지만...)
그러한 이유로 저는 3편이 기대됩니다. 어쩌면 다시 폴 그린그라함 감독이 연출을 맡아 제이슨 본의 자아 찾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보입니다. 분명 새로운 감독이 새로운 제이슨 본의 모험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벌써부터 3편이 기다려지는 군요. 기다림의 묘미... 그것이야말로 시리즈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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