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 내겐 최악의 추리 소설

쭈니-1 2012. 3. 13. 13:44

 

 

 

김성종의 추리 소설을 아는가?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1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바로 [여명의 눈동자]입니다. 일제시대를 거쳐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근대사의 아픈 과거를 다뤘던 이 드라마는 당시 제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비디오 테잎에 녹화를 해놓고 보고 또 봤으며, OST CD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여명의 눈동자]를 본 이후 저는 이 드라마의 원작자인 김성종의 책을 찾아서 읽기도 했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한국 추리문학사의 거장이더군요.(2008년까지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요? [여명의 눈동자]에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이어나가고자 선택한 김성종의 추리 소설(제목은 기억이 안납니다.)은 제게 엄청난 실망만 안겼습니다. 캐릭터는 매력이 없었고, 사건은 싱겁게 그 진실을 드러냈으며, 그렇게 드러낸 진실은 평범하기만 했습니다. 특히 여성의 거시기한 털로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장면에서는 '피식' 헛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로 인하여 높아진 기대감

 

갑자기 제가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김성종의 추리 소설을 떠올린 것은 최근 제가 읽은 소설이 독일의 추리 소설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읽기 이전에 저는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스웨덴 추리 소설을 읽었으며 그 소설에 푹 뻐졌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선물로 받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기 시작하며,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 같은 유럽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의 추리 소설이기를 기대했고, 그러한 기대감으로 초반에는 영화 보기를 뒤로 미루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책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진도는 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짜증만 났으며, '피식'거리는 헛웃음만 연신 나왔습니다. 캐릭터는 매력이 없었고, 사건은 싱겁게 그 진실을 드러냈으며, 그렇게 드러난 진실은 평범하기만 했습니다. 

더이상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중반까지 읽은 것이 아까워서라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읽었으며, 책을 덮는 순간에는 중반이후 쌓여갔던 실망감이 눈덩이처럼 꺼져서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던 캐릭터들

 

일단 제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주인공의 무매력 탓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냉철한 카리스마를 지닌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남다른 직감과 감성으로 사건의 핵심을 파고드는 당찬 여형사 피아입니다. 저자인 넬레 노이하우스는 두 콤비의 사건과는 관계없는 사생활에 소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합니다.  

만약 제가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 형사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들에게 애정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덴슈타인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든지 말든지, 피아의 집 확정 재건축에 제동이 걸리든지 말든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사생활 때문에 여자 친구 둘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그런데 겨우 10년?) 토비아스의 사건 전개가 자꾸만 질질 끌리는 것 같아 짜증만 났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에서 보덴슈타인과 피아의 사생활 이야기를 뺀다면 300페이지 정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왜 제 소중한 시간을 그들의 재미없는 사생활 읽기에 할애를 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보덴슈타인과 피아가 콤비를 이룬 이른바 타우누스 시리즈의 네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전 작품들을 통해 보덴슈타인과 피아의 캐릭터에 빠져있었다면 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이 재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이 사건의 진실을 모르겠니?

 

하지만 정작 이 소설의 문제는 책을 집어드는 그 순간부터 저는 토비아스 사건의 내막을 눈치챘다는 것입니다. 이건 뭐 대 놓고 '진실은 이러하오.'라고 밝히는데, 뻔히 보이는 진실을 무능한 보덴슈타인과 피아 때문에 한참 후에나 밝혀지는 것만 같아 짜증이 났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그녀는 치밀한 추리 소설보다는 외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작고 폐쇄적인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통해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섬뜩함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작가의 의도는 알겠는데 그러한 섬뜩함은 마지막 진실에서 드러날때 독자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마을 사람들을 실컷 보여주고 마지막 반전이라고 뻔한 결말을 내밀며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성의 섬뜩함을 느끼라.'고 닥달하며 안되죠.

게다가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도 허술한데 도대체 토비아스는 왜 술만 마시면 기억을 잃는지(한번도 아니고 중요한 순간에 두번이나) 전혀 설명이 되지 않고,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용의자들의 진술 외에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활약이 전무합니다.

책을 덮으면서 단편소설로 끝나도 될 이야기를 질질 끌어서 장편소설로 쓴 듯한 느낌만 받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제겐 김성종의 추리 소설을 뛰어 넘는(그래도 그 소설을 질질 끌지는 않았습니다.) 최악의 추리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