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 크리에이티브한 세상을 꿈꾸며...

쭈니-1 2011. 12. 3. 08:00

 

 

저자가 국내 1호 영화전문 카피라이터만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다.

 

사실 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누군가가 제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성공해.'라는 투의 인생의 지침서를 담은 책을 싫어합니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야 인간이라면 누구나 있겠지만 성공의 의미라는 것이 각자가 다를 것이고, 그 과정과 환경도 서로  판이하게 다를텐데 '이렇게만 하면 성공해'라며 자신의 성공담을 미화하는 책은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제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 한 권을 더 읽겠습니다.

그런 제게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라는 책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크리에이티브가 뭐야?'라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창조적이라는 의미로 광고활동 중에서 창조적인 부분, 즉 광고의 제작 표현행위를 말하는 것이라 하네요. '내가 광고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내게 크리에이티브가 왜 필요하지?'라는 생각에 책을 펼쳐 읽었습니다.

영화볼 시간도 부족하다며 매일 투덜거리는 제가 이렇게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를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저자인 윤수정이 국내 1호 영화전문 카피라이터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기가 막히는 영화 카피를 보며 '이건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라고 궁금했기에, 광고 회사에 다니지도 않고 크리에이티브해야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제가 영화 보는 시간을 쪼개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를 펼쳐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크리에이티브.

 

저자인 윤수정은 아마도 저처럼 '크리에이티브가 뭐지? 그게 내게 왜 필요하지?'라고 반문하는 독자가 많이 있을 것이란 것을 간파한 듯합니다. 그는 쳅터 1을 통해 크리에이티브가 무엇인지, 그리고 크리에이티브가 우리의 실생활에 어떠한 긍정적인 역할을 해낼 것인지 하나 하나 친절히 설명합니다. 그러한 윤수정의 글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공감되는 부분이 꽤 많더군요.

특히 저는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영화 블로거입니다. 어찌보면 영화 보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영화 보기를 통해 새로운 글을 창조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블로거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영화를 보고 장문의 리뷰 글을 쓰기까지는 오랜 시간 동안의 단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엔 리뷰라 하기도 힘들 정도로 본 영화이 내용을 쭈욱 나열하고 '재미있었다' 혹은 '재미없었다'라고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영화 보는 시간 2시간, 리뷰 쓰는 시간 3시간으로 리뷰를 쓰기의 스트레스 때문에 영화 보는 것을 포기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보면 그에 대한 리뷰의 제목과 글이 머리 속에 주루룩 쏟아져 나옵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을 글로 쓰는데엔 아직도 최소 1시간에서 최대 2시간이 소요되긴 하지만 예전처럼 리뷰를 쓰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리뷰를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렇듯 '내게 크리에이티브가 왜 필요하지?'라고 반문했던 저는 '아! 나도 크리에이티브한 취미를 갖고 있구나.'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끔 교과서 같은 용어들이 튀어 나오지만...

 

저자인 윤수정은 대학에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라는 강좌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은 가끔 교과서 같은 제가 보기엔 실생활에서는 불필요한 용어들이 나열되기도 합니다. 'TRIZ의 발명원리 40가지', '스캠퍼라는 아이디어 발상법', '6개의 모자이론' 등등... 마치 시험을 본다면 꼭 나올 것만 같은 용어들이 불쑥 불쑥 튀어 나와 저를 당혹스럽스게 만듭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맞춤 테라피' 부분에서는 사람을 표양인, 표음인, 발양인, 발음인으로 나눠 설명하기도 합니다. 마치 재미삼아 보는 혈액형별 성격 테스트 같은 느낌인데, 각자 개성이 다른 이 세상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고작 4가지 종류가 나눠 있다는 것도 공감할 수 없지만 행여 그렇게 나눠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사례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이렇듯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는 가끔 제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이 실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꽤 유익한 책이었으니까요.

 

흥미진진했던 실제 영화 카피의 예

 

제가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애초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인 국내 1호 영화전문 카피라이터인 저자의 경험담이 물씬 풍겨나오는 에피소드들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예를 들어서 [품행제로]의 티저 포스터에 들어간 헤드 카피 '모범시대 불량영웅'이라는 멋진 광고 카피의 탄생 배경이라던가, [오! 브러더스]의 티저 포스터에 들어간 광고 카피인 '형, 어디가? 너, 버리러!' 라던가,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제 호기심을 자극했던 광고 카피인 '스무살, 섹스말고도 궁금한건 많다'와 같은 걸작 광고 카피들의 탄생 일화는 이 세상 그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습니다.

윤수정 개인의 실패담과 그 실패를 발판으로 한 성공담은 굳이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꿈꾸지 않는 평범한 독자라도 귀담아 들을 만큼 유익했는데 그렇게 영화 광고의 세계와 윤수정 개인의 이야기 속의 우화에 푹 빠져 있다보면 크리에이티브는 '너에게 나를 보내는 것이다'라는 자연스러운 결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의 광고 카피를 쓸 당시 마케팅 총괄 실장이 [서편제]의 '이년아, 가슴에 사무치는 한이 있어야 소리가 나오는 벱이여'와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청바지처럼 꽉 끼는 프로노그라피'라는 카피 두가지를 합치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주문 덕분에 탄생된 크리에이티브 공식이라고 하네요. ([아름다운 시절]의 마케팅 총괄 실장의 주문에 윤수정은 '이년아, 청바지입고 포르노 찍어', '가슴에 한이 꽉 끼어요'라는 카피를 생각해냅니다. 그 순간 지하철에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웃음이 터져 나와버린...)

 

크리에이티브... 우리 마음 속에 있죠잉~

 

결국 '너에게 나를 보낸다'라는 크리에이티브 공식으로 끝을 맺는 이 책은 나의 소중함과 소통의 중요성, 너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등 굳이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추구하지 않아도 실 생활에 꼭 필요한 생각의 전환을 강조합니다.

처음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를 읽으며 '나를 설득해봐.'라는 다소 공격적인 자세로 책을 읽었던 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래,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 크리에이티브하게 변화하면 어쩌면 세상도 좀 더 밝고 좋게 변할지도 몰라... 책장을 덮으며 문득 들었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