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은 유럽에만 자신의 아들을 보냈다.
어린 시절 친구따라 교회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교회에서 나눠주는 사탕과 과자가 탐이 나서 교회에 나갔었지만 나중에 목사님이 해주시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한동안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도, 세종대왕도 지옥에 갔나요?" 당시 목사님의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우리나라를 빛낸 위인들이 나쁜 사람들만 간다는 지옥에 갔다는 소리가 어린 제겐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단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옥에 보내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하나님은 유럽에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보내 자신의 말을 전하고 자신을 믿게 했다. 그런데 왜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자신의 아들들을 보내지 않으신걸까? 그래놓고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내는 것은 과연 옳은 행동일까?"
성경의 이야기는 과연 꾸며낸 이야기일까?
세월이 흘러 세계사를 배우면서 천주교(가톨릭), 혹은 기독교(개신교)에 대한 제 거부감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들이 성지를 되찾겠다고 벌인 십자군 전쟁, 미개한 다른 대륙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서양의 제국주의. 이 모든 것이 저는 다른 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일신을 믿는 그들의 만행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비록 그 어느 종교도 믿지는 않지만 분명 인간을 초월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믿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 방대한 이야기들이 누군가 가짜로 꾸며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으면서 성경의 이야기가 꾸며진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이렇게 모순된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구약 성서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수 많은 오역과 전하는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터입니다. 인간을 초월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고작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에 보낸다는 어린 시절 목사님의 이야기는 아직도 저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약 성서에 대한 색다른 해석
그리고 여기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제카리아 시친이라는 러시아 학자인 그는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을 통해 구약 성서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현재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꽃피운 수메르 문명을 시작으로 인간의 탄생과 신의 존재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괴짜 학자의 괴상한 상상력으로 치부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는 1장인 '인간은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진화의 예외다'에서 다윈의 진화론만으로는 인간의 갑작스러운 진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 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2장인 '예고없이 시작된 수메르 문명'을 통해서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할 수 있는 수메르 문명의 수수께끼들을 통해 인류의 시작이 수메르 문명임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3장인 '하늘과 땅의 신들'에서는 그리스 신화, 힌두의 신화 등 세계 각국의 신화와 수메르 신화의 공통점을 제시하며 그들의 신화 모두 수메르의 신화에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4장인 '수메르, 모든 신들의 고향'을 통해서는 드디어 수메르 신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고, 5장인 '네필림, 불 뿜는 로켓을 탄 사람들'을 통해서는 수메르 신의 정체를 수메르의 유적들을 토대로 재구성하며 수메르 신화와 구약 성서의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인 6장 '12번째 행성'에서는 수메르의 신이 우리는 알지 못하는 12번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말도 안된다고 치부하기엔 너무 흥미롭다.
'뭐? 하나님이 외계인이라고?' 분명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그저 공상과학같은 이야기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윈이 처음 진화론을 내세웠을 때 사람들의 반응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시절 그 누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시친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무조건 치부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네필림들은 3,600년을 주기로 우리의 태양계에 접근하는 12번째 행성의 사람들로 그들은 지구의 여러 광물(특히 금)을 채취하기 위해 지구에 정착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구의 광물을 캐는 노예가 필요했고, 결국 자신들의 유전자와 지구 유인원의 유전자를 조합해서 인간을 창조해냅니다. 하지만 네필림의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12번째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면서 생겨난 지구 이변으로 대홍수가 일어나며 그들은 지구를 대부분 떠났다고 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아담과 이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는데, 이브가 뱀의 꾐으로 선악과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에 대해서 시친은 뱀은 인간을 창조하고 아낀 네필림인 엔키이며, 선악과의 존재는 인간에서 생식기능이 생겼음을 뜻하는 것이라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 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두고 있습니다.
시친은 구약 성서의 구절을 토대로 신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며, 한명도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창세기 1 : 26의 구절에 따르면 '그리고 엘로함이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인간을 만들자.'라는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이 구절만 봐도 하나님은 형성이 있는 존재였으며 여러명이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지지 않은 수 많은 수수께끼들.
물론 저는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에 씌여 있는대로 인간의 창조와 신의 존재를 곧이 곧대로 믿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하나의 가설일 뿐,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 거대한 원초적 수수께끼를 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친 교수는 분명 재미있는 가설을 내세웠습니다. 다윈의 진화론과 구약 성서의 창조론을 반쯤 섞어 인류의 창조를 설명해 냈으며, 만약 신이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존재가 아닌 고도의 문명을 가진 외계인일 것이라는 제 생각을 뒷받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을 덮으면서 더 많은 의문점들이 생겼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의문점은 거의 대부분 12번째 행성에 대한 것들입니다. 시친은 네필림들이 3,600년 주기로 도는 12번째 행성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 근거로 인류의 역사가 3,600년을 주기로 커다란 대변화를 맞이했다고 하니다.
그렇다면 12번째 행성의 공전 궤도는 매우 독특합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의 주변을 공전하는 것처럼 12번째 행성도 일정한 주기로 일정한 궤도로 공전을 한다면 무언가 중심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12번째 행성에게 태양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네필림들은 그들에게 1년이 우리에겐 3,600년이기에 수명이 우리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인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인간의 지배자들의 수명은 몇 백년도 넘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갑자기 인간의 수명이 수십년으로 줄어든 것일까요? 무엇때문에?
마지막으로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대홍수는 12번째 행성이 지구에 접근하면서 그에 따른 기상 이변 때문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지구의 기상 이변은 3,600년 주기로 일정하게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이 책에서 네필림들의 이야기에서 대홍수는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 많은 세월동안 그들은 지구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요.
이러한 의문들은 제가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고, 일개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시친도 결코 밝혀낼 수 없는 수수께끼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은 제 상상력의 폭을 그만큼 넓혀준 셈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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