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새로운 취미는 낚시이다.
아버지가 경기도에 양복점을 개업하시면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6년 동안 시골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곳도 도시화되었지만 당시에는 맑은 강이 있었고, 어린 아이들이 놀기 딱 좋은 산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친구들과 강에서 붕어를 잡고, 개울에서 개구리를 잡았으며, 산에서 산딸기를 따며 놀았습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를 이사를 오면서 나의 취미는 영화보기, 책 읽기 등 동적인 것에서 정적인 것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여전히 저는 시간이 날때마다 영화를 보고, 블로그에 영화 리뷰를 쓰며 그렇게 제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쭈구미 낚시를 간 적이 있습니다. 회사 행사여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 갔었는데 낚시대를 통해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과 제 낚시대에 쭈구미와 갑오징어가 걸려 올라올 때의 쾌감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쭈구미 낚시 이후에 우럭 낚시에도 쫓아 갔었는데, 쭈구미 낚시와는 또 다른 쾌감이 저를 황홀하게 했답니다. 결국 저는 회사 내에 낚시 동호회를 만들었고, 구피의 눈초리를 받으며 꽤 많은 돈을 낚시 도구를 사는데 투자했습니다.
그런 제게 운명처럼 <사막에서 연어 낚시>라는 제목의 책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평소같으면 이완 맥그리거 주연 영화의 원작이라는 부분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을테지만 놀랍게도 영화에 대한 언급보다 제 호기심을 더 자극한 것은 '어떻게 사막에서 연어 낚시를 하지?'라는 궁금증이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소설
영화보느라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책이라면 1년에 몇 권보지도 않은 제게 <사막에서 연어 낚시>는 굉장히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책을 자주 읽지 않기에 이 소설의 형식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사막에서 연어 낚시>의 형식이 새롭다고 한 것은 이 소설이 일기, 편지, 이메일, 진술서 등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일기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본 적이 있지만 이처럼 여러 형식이 서로 뒤섞인 형식은 처음입니다. 게다가 화자 역시 한 명이 아닌 여러명입니다. 물론 알프레드 존스 박사가 주요 화자이긴 하지만 가끔 이 소설은 해리엇, 혹은 수상의 홍보 실장인 피터 맥스웰이 각각의 방식으로 화자가 되곤 합니다.
어느 단일한 형식과 하나의 시점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닌 여러 형식을 빌려 여러 명의 시점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니 일단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알프레드의 일기만으로 소설이 진행된다면 그의 고지식한 사고방식 때문에 금방 지루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리엇의 편지, 피터 맥스웰의 진술 등으로 형식과 시점이 시시각각 바뀌니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사막에서 연어 낚시가 정말 가능할까?
이렇게 새로운 형식이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제 관심을 붙잡는 동안 책 속에서는 여러 캐릭터들이 사막에서 연어 낚시를 하게 만든다는 우스꽝스럽고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점점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요즘 제가 빠져 있는 것이 바다 낚시이다보니 연어 낚시인 플라잉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봤던 장면만 얼핏 기억에 날 뿐입니다.
그런데 <사막에서 연어 낚시>를 읽다보니 플라잉 낚시에 대해 전혀 몰랐던 저 역시도 플라잉 낚시의 매력에 빠져드는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예맨에 플라잉 낚시를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 믿는 모하메드 족장의 주장에 점점 매료되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알프레드 존스가 그러했듯이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저는 '사막에서 연어 낚시를 하기 위한 프로젝트'라는 소재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사막에서 연어 낚시>가 가벼운 농담과도 같은 소설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리엇의 매력과 모하메드 족장의 열정에 동화되며 어느 사이 저 역시 이 우스꽝스러운 프로젝트가 꼭 성공하기를 바라며 책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만큼 저자인 폴 토데이의 이야기 솜씨가 훌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지독한 비극일까? (스포 포함)
전체적으로 <사막에서 연어낚시>는 유쾌한 분위기의 소설입니다. 피터 맥스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치권에 대한 풍자를 하기도 하고, 해리엇과 알프레드 존스의 관계를 통해 로맨스를 간간히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분위기상 '예맨에서 연어낚시 프로젝트'는 성공했어야 했습니다. 그럼으로서 모하메드 족장의 매력적인 열망이 이뤄지고, 알프레드와 해리엇의 사랑도 이뤄지며 모두가 행복하게 끝을 맺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예맨에서 연어낚시 프로젝트'는 불의의 사고로 실패를 거둡니다. 그 결과 영국 수상과 모하메드 족장을 비롯한 세 명의 인물이 실종됩니다. 알프레드는 해리엇과의 사랑을 이루지도 못했고, 탄탄하던 직장에서도 쫓겨나 비루한 신세가 됩니다.
소설의 중반부터 피터, 해리엇, 알프레드의 진술서 형식으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실패했음을 간간히 내비췄지만 그래도 소설의 분위기상 뭔가 반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 저는 마치 뒷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인공인 알프레드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비록 '예맨에서 연어낚시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실패였지만 그는 예맨의 건곡에 연어가 활기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쾌감을 얻습니다.
이전의 그는 공무원 소속으로 매우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왔습니다. 성공 지향적인 그의 아내와의 틀에 박힌 결혼 생활이 완벽하다고 믿으며 마치 양식장에 가둬진 연어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그는 비록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양식장을 빠져 나와 거친 강물과 바다를 오가며 모험을 하는 연어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의 월급은 적어졌고, 사회적인 지위도 낮아졌지만 그는 행복합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진짜 사랑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하니까 믿는다' 알프레드가 한 말입니다. 그는 '예맨에서의 연어 낚시'라는 불가능을 믿었고, 그 결과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더 이상 양식장의 연어가 아닌 자유로운 연어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사막에서 연어낚시>의 결말은 비극같으면서도 해피엔딩인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제게 더 깊은 인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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