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틴 스콜세지
주연 : 아사 버터필드,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 벤 킹슬리, 사챠 바론 코헨, 주드 로
개봉 : 2012년 2월 29일
관람 : 2012년 3월 4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초보 영화광 웅이.
토요일의 과음한 탓에 일요일 아침부터 온 몸이 찌뿌둥 했습니다. 원래는 웅이와 [휴고]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컨디션도 안좋고 해서 그냥 은근슬쩍 계획을 취소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웅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라도 [휴고]를 포기하고 집에서 푹 쉴 생각으로 '숙제를 다해야만 영화보러 갈거야.'라고 선언을 하자 빛의 속도로 숙제를 끝내 버리더군요. 두 눈을 반짝거리며 '[휴고]보러 가요.'라고 재촉하는 웅이... 결국 저는 숙취로 인하여 무거운 몸을 이끌고 [휴고]가 상영하는 공항 CGV로 차를 몰아야 했습니다.
사실 [휴고]는 웅이의 기대작이 아닌 제 기대작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3D 판타지 영화라니... 결코 기대하지 않을 수없는 매력을 지닌 영화인 셈입니다. 결국 [휴고]를 3월 첫째주의 기대작으로 선정한 저는 [휴고]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구피를 대신해서 웅이에게 '같이 [휴고]를 보자.'고 꼬드겨야 했습니다.
비록 웅이가 흔쾌히 '좋아요.'라고 대답을 해줬지만 [휴고]를 웅이와 같이 봐도 될런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위주로 영화를 관람한 웅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영화 관람은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영화인 [트랜스포머 3]와 [스피드 레이서] 뿐이었기에 과연 웅이가 [휴고]를 보며 영화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하자 그러한 불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는 [휴고]가 환상으로 가득찬 판타지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 자체는 잔잔한 드라마였습니다.(또 예고편에 속았습니다.)
영화 초창기 시절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조르주 멜리어스에 대한 오마쥬로 가득찬 [휴고]를 보며 저는 과연 웅이가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영화보다는 웅이의 반응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웅이는 2시간이 넘는 영화 상영 내내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영화를 관람하더군요. 극장 안의 다른 어린아이들은 영화의 중반부터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화장실도 가고 잡담도 했지만 웅이는 조용히 영화에만 집중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재미있었어? 조금 어려웠지?'라고 묻는 제게 '재미있었어요.'라며 대답을 해줍니다. 그러면서 휴고(아사 버터필드)의 삼촌이 어쩌다가 죽었는지, 조르주 멜리어스의 영화 [달세계 여행]에서 로켓이 눈에 박힌 달의 눈 주위에 흐르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관심을 갖더군요.
'아빠도 조르주 할아버지의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라는 물음에 '아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라서 못봤어.'라고 대답을 해줬습니다. 그러자 실망한 표정의 웅이는 '난 보고 싶은데...'라며 아쉬워합니다. 최신영화만 선호하고 고전영화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는 저보다 웅이가 영화광의 자질이 더욱 풍부한 것 같습니다.
조르주 멜리어스에 대해서...
그렇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애정을 듬뿍 담아 존경을 표시했던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 조르주 멜리어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그는 마술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보게된 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던 그는 영화사를 차리고 마술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활용하여 특수효과를 이용한 수십편의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이전까지 영화는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과 같은 일상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르주 멜리어스는 영화의 흥미진진한 내러티브를 심어 주었고, 깜짝 놀랄만한 특수효과를 이용하여 영화의 재미를 증폭시켰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좋아하는 할리우드 SF, 판타지 영화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휴고]에서 중요하게 이용되는 조르주 멜리어스의 걸작 [달세계의 여행]은 1902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봐도 놀라운 특수효과와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웅이가 관심을 가진 달의 눈에 박힌 로켓 장면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봤을 법한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과연 [휴고]에서의 조르쥬 멜리어스의 모습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적 상상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네이버의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1861년 출생하여 1938년 사망하였으며 1900~1910년대 영화계를 지배하였지만 변화없는 트릭 기술의 반복과 개인적인 기술자 기질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부진하여 만년은 빈곤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휴고]가 1931년 프랑스 파리의 기차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영화 속의 조르쥬 멜리어스는 영화 산업의 실패로 좌절하고 기차역에서 작은 인형 가게를 운영하며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로봇 인형과 휴고와 이자벨(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의 모험 등 영화 자체가 실제를 담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최소한 조르주 멜리어스의 말년의 모습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서 충실하게 재현되었습니다. (실제 조르주 멜리어스의 사진과 영화 속의 벤 킹슬리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닮았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휴고]를 통해 대선배인 조르주 멜리어스에게 빈곤한 말년이 아닌 판타지적인 해피엔딩을 선사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진짜이든, 영화적 상상이든, 영화를 보는 저는 이러한 해피엔딩 찬가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아티스트]와 다른 듯... 같은...
어쩌면 영화적 재미를 담보로한 할리우드의 시초라고 할 수도 있는 조르주 멜리어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들어간 [휴고].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에서 [휴고]는 기술 부문 수상에만 그쳤고, 주요 부문 수상은 프랑스의 무성흑백영화 [아티스트]가 차지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휴고]와 [아티스트]는 형식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그 안에 담겨진 주제는 같다는 점입니다.
이 두 영화 모두 잊혀진 영화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러한 초창기 영화들에 애정을 보이고 존경을 표시합니다. [휴고]가 조르주 멜리어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라면 [아티스트]는 무성흑백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휴고]와 [아티스트]의 절절한 러브 레터가 마음 속 깊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두 영화는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젊은 관객들에게 새로움에만 열광하지 않고 옛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형식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아티스트]는 3D 영화가 판을 치는 세상에 난데없이 무성흑백영화를 선보입니다. 옛 영화에 대한 존경과 애정에 그치지 않고 영화 자체를 옛 방식으로 선보이며 '옛 영화도 재미있다.'라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여준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휴고]는 요즘 영화의 추세인 3D로 만들어 졌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첫 3D 영화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옛 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3D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휴고]에 유일하게 실망했던 부분은 바로 이러한 3D라는 영화의 형식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3D 효과는 그다지 탁월하지 않습니다. 영화 자체가 3D 효과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이 별로 없었던 것도 이유중 하나입니다.
결국 아카데미도 이러한 형식의 차이에서 [휴고] 대신 [아티스트]를 선택한 것이겠죠. 그래도 기술 부문을 [휴고]에게 몰아 준 것을 보면 거장의 3D 입문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휴고]에 대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휴고]는 영화 초창기 시절의 거장 조르주 멜리어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듬쁙 담겨 있음과 동시에 꿈과 희망을 잃은 현대인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줍니다.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되어 술주정뱅이 삼촌의 손에 이끌려 기차역의 시계 정비공이 된 소년 휴고가 그러합니다.
그에겐 어떤 희망도 없어 보입니다. 기차역의 시계를 정비하지만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역의 경비원(사챠 바론 코헨)에게 걸리면 고아원으로 끌려 갈지도 모르는 상황. 휴고는 그저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인 로봇 인형를 고치는 것에 마지막 희망을 겁니다. 로봇 인형을 고치고 나면 아버지가 남긴 어떤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휴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희망에 매달리는 휴고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조르주 멜리어스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만들었던 화려했던 과거의 행복은 그에게 아픔이 됩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아무도 자신의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자,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필름을 팔고, 그 필름이 녹아 구두굽이 되는 암울한 상황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필름을 판 돈을 모아 장난감 가게를 열지만 그에게는 행복했던 과거에서 도망치고 싶은 처절한 아픔 밖에 남지 않습니다.
휴고와 조르주 멜리어스. 이 두 주인공의 희망을 엮어 주는 로봇 인형은 그래서 판타지입니다. 그 시절에 그렇게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로봇이 있을 수도 없을 것이고, 그 로봇 인형으로 인하여 휴고와 조르주 멜리어스가 다시 희망을 되찾는 것 역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판타지가 싫지만은 안았습니다. 구세대를 대표하는 조르주 멜리어스와 신세대를 대표하는 휴고가 영화를 통해 희망을 되찾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그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런 판타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두운 느와르 영화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러한 해피엔딩 찬가는 그렇기에 박수를 치기에 충분했습니다.
먼훗날 늙고 병들은 내게 웅이는 영화를 보여주며...
'아버지. 희망을 잃지 마세요.'라고 두 손을 꽉 붙잡아주지 않을까?
[휴고]를 보다보면 그런 날이 언젠가는 꼭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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