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만즈 말랜드, 비욘 스테인
주연 : 케이트 베킨세일, 인디아 에이실리, 스티븐 레아, 마이클 이얼리
개봉 : 2012년 2월 22일
관람 : 2012년 2월 26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매력적이었던 '언더월드'의 세계관
2003년 [언더월드]라는 제목의 매우 독특한 판타지, 공포영화가 개봉하였습니다. 제게 [언더월드]가 독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양 영화에서 대표적인 공포 캐릭터인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에게 인간 사회와는 다른 개별적인 판타지의 세계관을 부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자체가 상반되는데 뱀파이어의 경우는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와 같이 귀족적인 이미지가 있는 반면 늑대인간인 야수, 짐승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를 이용하여 [언더월드]는 인간들은 모르는 지하세계에서 뱀파이어와 라이칸(늑대인간)의 600년간 지속된 전쟁의 역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뱀파이어 여전사 셀린느(케이트 베킨세일)와 늑대인간이 된 남자 마이클(스캇 스피드맨)의 금지된 사랑을 넣음으로서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러브 스토리까지 끼워넣는 영특함을 보였습니다.
1편의 성공으로 2006년 제작된 2편 [언더월드 : 에볼루션]은 액션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이제 뱀파이어와 라이칸에게 모두 쫓기는 셀린느는 더욱 막강해진 변종 뱀파이어를 상대로 일대 결전을 벌입니다.
시리즈 최강의 액션을 자랑하는 2편은 그러나 1편이 가지고 있던 매력적인 세계관 대신 액션에 너무 치중하는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으로서 [언더월드 : 에볼루션]은 [블레이드] 등 다른 뱀파이어 액션 영화와 별다른 차별점을 갖지 못한 흔하디 흔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사실 [언더월드]는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1편의 제작비는 고작 2천2백만 달러입니다. 그러한 제작비로 월드와이드 성적이 9천5백만 달러를 넘었으니 제작사인 스크린잼에서 욕심이 난 것이죠. 스크린잼은 2편에서 제작비를 대폭 늘여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액션을 만들어 냈지만 월드와이드 성적은 1억1천1백만 달러로 소폭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2편의 실망스러운 흥행으로 인하여 렌 와이즈 감독이 하차를 하고 2009년에 발표된 3편인 [언더월드 : 라이칸의 반란]은 1편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되짚어보는 프리퀼로 만들어졌습니다. 스크린잼도 2편의 부진한 흥행이 [언더월드]의 세계관보다 액션을 앞세웠기 때문이라 판단한 것이죠. 하지만 [언더월드 : 라이칸의 반란]은 시리즈 중 가장 부진한 흥행 성적인 월드와이드 9천 1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물론 제작비가 3천5백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손해본 장사는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액션을 앞세운 새로운 영화로 탈바꿈하다.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발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언더월드]라는 영화 자체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개별적인 역사를 가진 판타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액션, 공포 영화의 소재로 알맞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라는 최강의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을 더욱 중점적으로 내세울 것인가... 이게 종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액션을 내세운 [언더월드 : 에볼루션]은 시리즈 중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올렸지만 제작비 상승 탓에 실효성은 없었고, 판타지 세계관을 내세운 [언더월드 : 라이칸의 반란]은 낮은 제작비 덕분에 제작사에 수익을 안겼지만 시리즈 중 가장 낮은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스크린잼은 이대로 안전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판을 키워 큰 돈을 노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죠.
그러한 가운데 제작사인 스크린잼은 결국 액션의 강화를 선택했습니다.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제작비인 7천만 달러가 들어간 이 영화는 기존의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역사는 폐기처분합니다. 대신 셀린느와 마이클의 사랑만을 남겨 둡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인간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모호했던 선과 악의 구조를 명확하게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새로운 셀린느와 마이클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 캐릭터 이브(인디아 에이실리)를 탄생시킴으로서 이브를 지켜야 하는 셀린느의 막강 액션으로 영화 전체를 가득 채운 것이죠.
이러한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의 새로운 선언은 기존의 '언더월드' 세계관에서 완전히 탈피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사이의 삼각 액션이라는 새로운 액션영화의 탄생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한 선언답게 이 영화는 90분 내내 쉴새없이 액션이 터져나오는데 거추장스러운 '언더월드'의 세계관을 포기하고 나니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흥행 결과는 어떻냐고요? 아직 개붕 중인 나라도 있고해서 정확한 흥행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북미에선 개봉 첫 주 1위를 차지하며 순조롭게 시작을 했고, 현재까지 북미에서 6천2백만 달러, 월드와이드로는 1억3천3백만 달러를 벌여들어 [언더월드]시리즈 중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기록 중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높아진 제작비겠죠. 현재의 성적으로 7천만 달러라는 제작비를 감안한다면 겨우 손실을 조금 면하는 수준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는 [언더월드 : 에볼루션]의 상황을 다시 보는 것만 같습니다. 결국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의 흥행 여부에 따라 이 시리즈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스크린잼이 시리즈의 5편에서는 또 어떠한 선택을 할지 흥미진진해 지고 있습니다.
기존 세계관의 파괴
[언더월드] 시리즈는 애초에 인간들은 모르는 지하의 세계에서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 시리즈입니다.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오랜 전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들의 역사를 재창조함으로서 영화적인 재미를 구축한 것이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최대한 배제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판타지의 새로운 공간이 아닌 현실을 배경으로 한 탓에 인간을 아예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언더월드]의 이전 시리즈에서는 제목 그대로 인간들은 모르는 지하 세계를 그리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은 처음부터 인간을 전면으로 내세웁니다. 변종 인간들을 말살하려는 인간과 그러한 인간에 쫓기는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인간의 강력한 무기로 인하여 그들은 거의 멸종 직전에 몰리게 됩니다. 최강의 뱀파이어 여전사 셀린느 역시 마이클 코빈과 도피 중 인간의 공격을 받게 되고 변종 인간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실험실의 실험 도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건은 단지 영화 설정의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더월드' 세계관의 파괴입니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지하세계의 전쟁을 인간의 세계인 지상 세계로 끌어 올렸고,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유구한 역사를 묵살한채 셀린느의 액션에만 올인합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인간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 비해 그들은 월등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그들의 생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고,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월등한 힘의 존재인 뱀파이어와 라이칸은 인간을 배제시키고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뱀파이어와 라이칸을 모두 위협하는 강력한 인간의 등장이라니...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굴욕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하의 작은 아지트에 숨어서 종족의 멸종을 두려워하는 살아남은 뱀파이어 종족들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귀족의 풍채를 보이며 당당하던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 갔단 말입니까? 결국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은 변화를 넘어 파격으로, 파격을 넘어 파괴로, 이전 시리즈의 발자취를 지워 버립니다.
앞으로의 세계관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두고 보겠다.
뭐 좋습니다. 이전 시리즈의 세계관을 꼭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세계관을 철저하게 파괴한 만큼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은 이전 시리즈보다 나은 그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은 그것이 셀린느의 업그레이드된 액션이라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셀린느의 액션이 [언더월드 : 에볼루션]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선 케이트 베킨세일의 매력이 덜합니다. 이건 배우의 나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1, 2편 당시 케이트 베킨세일은 [세렌디피티], [진주만]에서 청순함이 돋보이던 배우였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가죽 옷을 입고 거친 액션을 해댑니다. 그러니 신선할 수 밖에요.
하지만 [언더월드]의 성공 이후 그녀는 여전사의 이미지에 갇혀 버립니다. [언더월드 : 에볼루션], [반 헬싱],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국내에 소개된 영화라고는 아담 샌들러의 원맨쇼가 돋보였던 [클릭] 뿐이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여전사 액션이 전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죠.
더욱 강력해진 라이칸도 2편의 변종 뱀파이어와 비교한다면 우스운 수준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세계관을 전부 파괴하다보니 내용은 단순해졌고, 선과 악의 경계도 확실해 졌습니다.
그나마 새로운 캐릭터인 이브의 활약이 조금 기대되는 수준입니다. 셀린느와 마이클의 딸인 그녀는 [엑소스트]의 악령들린 소녀를 연상하게 하는 끔찍한 변신으로 가끔 저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자!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이전 시리즈의 세계관은 모두 파괴되었고, 남은 것은 셀린느와 마이클, 그리고 이브 뿐입니다. 90분 내내 특징 없는 액션을 쏟아부은 끝에 시리즈 최대의 제작비를 기록했지만 시리즈 최강의 흥행수입도 갱신했습니다. 스크린잼의 입장에서는 이 시리즈를 계속 이끌어 나갈 생각이라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무조건적인 액션만 치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이미 제작비 대비 흥행 수익으로 증명되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시리즈의 5편에서는 4편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구축하는 일인 셈입니다. 과연 어떤 세계관을 구축할까요? 아니면 [레지던트 이블]처럼 특징없는 액션으로 시리즈를 연장하는 것으로 만족할까요? [언더월드] 시리즈를 보면 볼수록 스크린잼의 선택이 참 궁금해집니다.
매력적인 세계관을 폐기처분한 댓가치고는 그녀의 액션은 평범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새로운 세계관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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