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더 그레이] - 내 안의 지옥에 맞서라.

쭈니-1 2012. 2. 23. 10:41

 

 

감독 : 조 카나한

주연 : 리암 니슨, 더못 멀로니

개봉 : 2012년 2월 16일

관람 : 2012년 2월 22일

등급 : 15세 관람가

 

 

지옥은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거의 10년 전 일입니다. 굉장히 무더운 여름 날이었는데 하필 회사의 에어컨까지 고장이 난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주루룩 흐르는 상황. 하지만 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다니던 회사가 외부 감사를 받고 있었거든요. 

당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선풍기 뿐이었는데 회사에 남아 있는 선풍기는 여직원들 차지였습니다.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 덥다고 투덜거리며 선풍기를 차지하는데 회사에 입사한지 며칠 안되던 저는 그저 '전 괜찮아요.'라며 온 몸이 땀에 젖어 감사 자료 만들기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거의 탈진 상태가 되더군요. 하지만 외부 감사는 계속 자료를 요구했고, 저는 손 부채질을 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은 자꾸 제 안경 위로 떨어져 컴퓨터 화면이 보이지 않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쉬지 않고 감사 자료를 만드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만약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지옥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10년 전의 일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습니다.

 

[더 그레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다니는 회사의 회계결산 업무만으로도 벅찬데 부하 직원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관두는 바람에 제대로 일 폭탄에 맞은 저는 몸은 기진맥진해 있지만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자는 생각에 무리해서 [더 그레이]를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더 그레이]를 보며 10년 전의 그 날이 떠올랐습니다. 더위와 일 속에서 지칠대로 지친 저는 선풍기를 혼자 차지한 여직원에게 대항할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채 무기력함에 빠져 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비참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지옥을 빠져 나가고 싶었지만 제겐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었고, 그 어디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그레이]의 주인공인 오트웨이(리암 니슨)가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떠난 후 알래스카의 석유 회사에서 야생 동물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는 업무를 하는 그는 떠난 아내만을 그리워 하며 자신이 일하는 곳을 '지옥'이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신의 장난인가요? 그 후 그는 진정한 지옥을 맛보게 됩니다.

 

 

겨우 그깟 늑대가 뭐가 무서워?

 

휴가를 위해 알래스카에서 비행기에 올라탄 오트웨이. 하지만 비행기는 악천후 속에 추락하게 되고 오트웨이를 비롯한 일곱명만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합니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끝 없이 펼쳐진 설원과 매서운 추위였습니다. 구조대가 언제 올지 알 수가 없는 상황. [더 그레이]의 지옥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더 그레이]에서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것은 굶주림과 매서운 추위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알래스카의 설원에서 인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자연의 위대함 뿐이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이 영화는 늑대를 등장시킵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받은 늑대의 습격. 처음에 저는 그러한 늑대를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늑대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늑대보다 훨씬 무서운 괴물이 사람들을 죽이는 영화도 많이 봤고, 늑대인간을 소재로한 영화도 봤으며, 최근에는 늑대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하울링]도 본 상태에서 그깟 늑대 따위가 무서울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 생각은 영화의 중반부부터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트웨이가 겪는 공포의 일부일 것이라 생각했던 설원의 늑대는 공포의 일부가 아닌 공포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오트웨이 일행을 집요하게 추격하며 한 명, 한 명씩 오트웨이 일행을 처치하는 늑대들의 치밀함은 영화를 보는 제게 오싹함을 안겨줬습니다.

늑대들은 분명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오트웨이를 비롯한 인간이 그리 만만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늑대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오트웨이 일행의 빈틈을 노렸고, 가장 많이 쇠약해진 인간이 낙오되기만을 기다립니다. 

이는 육식 동물의 사냥을 연상시키는데, 육식 동물이 사냥을 할 때에는 무리지어 다니는 초식 동물 중 따로 떨어져 나온 낙오자를 노립니다. [더 그레이]의 늑대들의 인간 사냥은 바로 그러한 짐승 세계의 약육강식의 법칙과 맞닿아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비껴 서있다고 자부하던 인간들이 바로 그러한 섬뜩한 자연의 법칙 앞에 무방비로 서있는 것입니다.

오트웨이 일행을 위협하는 늑대의 울음 소리, 잠시라도 방심하면 어김없이 공격하는 늑대들의 그 날카로운 이빨. '요즘 세상에 늑대 따위가 뭐가 무서워!'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저는 영화를 보며 그 어느때보다 잔뜩 긴장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던가!

 

비행기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 남은 일곱 명의 생존자. 그들의 죽음을 뒤쫓다보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입니다.

첫번째 희생자는 늑대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잠시 방심하다가 죽습니다. 두번째 희생자는 일행에 낙오가 되며 죽습니다. 세번째 희생자는 나약한 체력이 험난한 자연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쓰러집니다.

모두들 늑대의 위협이라는 공통 분모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희생자가 늘수록 늑대로 인해서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의 결과가 됩니다.

첫번째 희생자를 제외하고 두번째, 세번째 희생자는 거친 자연 환경 속을 버티지 못한 육체와의 싸움에서 집니다. 네번째 희생자는 고소 공포증이라는 내적인 공포를 이기지 못했고, 다섯번째 희생자는 스스로 살기를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늑대들은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서 인간 스스로가 나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린 셈이 됩니다.

 

[더 그레이]를 보며 진정으로 오싹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부분입니다.

이 영화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늑대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효과적으로 담아 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늑대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싸움에 초점이 맞춰지고, 스스로의 싸움에서 진 인간들은 그렇게 한 명씩 늑대의 밥이 되어 가는 겁니다.

오토웨이는 어떠할까요?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오토웨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제발 도와주세요. 한번만 도와주면 평생 당신을 믿겠습니다.'라며 외칩니다. 자신 스스로 두려움에 맞서기 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을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 싸워주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오토웨이 역시 두려움에 직접 맞서기로 결심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늑대의 소굴에서 늑대에 맞서 스스로 싸우려는 오토웨이의 표정은 그렇기에 결연합니다. 영화의 초반, '여기가 지옥이다'라며 삶의 의지를 포기하려 했던 그였지만 죽음의 공포에 맞선 마지막 순간 그의 표정은 그 어느 순간보다 강렬합니다.

 

 

내 안의 지옥에 맞서라!

 

결국 이 영화는 무시무시한 늑대의 위협을 그린 영화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과의 싸움에 맞서는 결말을 택합니다. 그렇기에 오토웨이가 늑대 소굴에서 늑대 대장인 알파와의 싸움의 결말 따위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두려움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오토웨이의 그 강렬한 눈빛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늑대의 공포에 매료된 관객들은 이러한 마지막 열린 결말에서 웅성거립니다. '그래서 오토웨이가 이겼다는 거야? 졌다는 거야?'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토웨이가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이겼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스스로를 포기했던 그였습니다. 과거 아내의 따스한 손길만을 그리워하며 현실을 돌아보지 않았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깨닫습니다. 아버지의 자작시와 죽은 아내의 메시지. 그래, 까짓거 두려움을 이기고 폼나게 싸워보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오토웨이는 진정한 승자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으니 말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그 순간 지옥은 바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10년 전 회사의 그 무더운 더위 속에서의 사투 속에서 저는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것입니다.

당당하게 나도 선풍기를 써야 겠다고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당당하게 일을 잠시 멈추고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두려웠습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동료 직원들에게 미움을 살까봐... 직장 상사에게 찍힐까봐... 그래서 직장을 잃고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까봐... 이 모든 두려움은 스스로에게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오토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늑대에 대한 두려움은 일행을 늑대의 소굴로 안내했습니다. 참 아니러니합니다. 살겠다고 죽을 힘을 다 써서 찾아간 숲이 늑대의 소굴이라니... 그가 두려움을 이기고 냉정하게 판단을 했다면 혹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아내가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알래스카의 직장을 지옥으로 만들었듯이, 늑대에 대한 두려움이 일행을 죽음으로 안내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한 마지막 장면 만으로 제게 [더 그레이]는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마라.

그러는 순간 당신의 일상은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