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하울링] - 늑대개만도 못한 인간들이여!

쭈니-1 2012. 2. 18. 07:00

 

 

감독 : 유하

주연 : 이나영, 송강호

개봉 : 2012년 2월 16일

관람 : 2012년 2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예상외로 이음새가 허술한 스릴러.

 

최근 몇 주동안 한국영화들이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2월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중 최고 기대작이라 할 수 있는 [하울링]이 드디어 개봉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울링]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부터 시작하여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쌍화점]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평단의 찬사를 받은 유하 감독의 신작이며, 톱스타 이나영, 송강호가 주연을 맡아 개봉 전부터 흥행은 떼논 당상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영화입니다. 게다가 일본 소설을 소재로 한 '늑대개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독특한 스토리 라인도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을 장담하는 요인으로 손꼽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개봉이 조금씩 뒤로 밀리더니 기자 시사회는 물론 일반 시사회에서조차 혹평 또는 무난한 평작이라는 실망스러운 평가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모든 조건은 완벽해 보였습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골고루 인정받은 유하 감독과 연기력과 대중적 인기를 갖춘 이나영, 송강호 조합, 그리고 탄탄한 원작소설과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스릴러 장르까지... 그러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하울링]이 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벌써부터 흥행의 적신호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걸까요?

 

평론가가 혹평을 하던 말던, 시사회로 본 네티즌들이 평작이라며 아쉬워하던 말던, 저는 회사의 회식도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로 빠지면서 [하울링]을 개봉 첫 날 보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하울링]이 기대보다 못미치는 영화라는 평이 많았던 만큼 저 역시 기대도를 약간 낮춘 상태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시사회 당시 왜 관객들이 평작이라는 평가를 내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더군요.

일단 유하 감독, 송강호, 이나영 주연이라는 너무 높아진 기대감도 문제이지만 [하울링]의 가장 큰 문제는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는 그다지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초반부터 사건의 내막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러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어떻게 저질렀는지, [하울링]은 영화의 초반부터 그 속이 뻔히 들여다 보입니다.

뻔히 들여다 보이는 스릴러라니 그건 스릴러라는 장르의 영화에서는 최악이라는 평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관객과 두뇌 싸움을 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의문점을 안겨주고 추리를 하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일단 [하울링]은 그러한 스릴러 장르의 기본적인 부분에서 불합격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스릴러 (스포 주의)

 

그렇다면 어떠한 부분에서 [하울링]은 관객과의 두뇌 싸움에서 실패한 것일까요? 영화의 오프닝씬부터 되짚어 보겠습니다.

[하울링]은 차 안에서 어느 남자의 자연발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활활 불에 타서 사람이 죽는 장면이라니... 자극적인 장면으로 영화를 보는 제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자연 발화 사건으로 죽은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영화는 급속도로 사건에 대한 의문점이 술술 풀려 나갑니다. 영화에서는 당연히 다른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몰아가지만 스릴러 영화를 조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그런 뻔한 함정에 빠질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죽은 남자가 어린 여학생들에게 매춘 행위를 시켰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범인의 동기는 쉽게 유추가 가능해집니다.

이건 뭐 아예 처음부터 사건의 의문점을 숨길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하 감독은 베테랑 형사 조상길(송강호)과 신입 여형사 차은영(이나영)이 의문점 투성이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활약상에는 애초부터 관심조차 없어 보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은영의 움직임에만 주목하면 됩니다. 영화와 복잡하게 두뇌 싸움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은영은 매우 친절하게도 관객에게 사건의 핵심을 설명하고, 사건의 핵심 속으로 직접 안내합니다. 너무 술술 풀려 나가 이것이 혹시 함정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만약 이 영화가 늑대개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라면 이렇게 속이 뻔히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최악의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 반전이라고 할 수있는 사진에 드러나지 않은  제 5의 가해자가 밝혀지는 장면 조차도 '이럴줄 알았어.'라는 아쉬움의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게끔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로서는 점수가 거의 제로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울링]은 실패한 스릴러 장르처럼 실패한 영화일까요?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영화가 의문 투성이인 늑대개 살인 사건과 그러한 사건을 파헤치는 두 형사의 활약을 그린 영화라면 저는 당당하게 '실패작'이라는 낙인을 이 영화에 찍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하 감독의 관심는 애초부터 그런 두 형사의 활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진정한 반전입니다.

 

 

인간은 과연 늑대개보다 더 나은 존재인가?

 

그렇다면 스릴러 영화의 짜임새를 포기하면서까지 유하 감독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고통입니다.

[하울링]이 영화의 중반 이후에 스릴러와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의 과잉으로 치닫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사건의 의문이 해소되고 의외의 범인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 중반에 이미 늑대개를 통해 살인을 저지른 이의 정체와 동기가 설명되고 남은 시간 동안 그들의 아픔을 감정의 과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이야기의 초점은 갑자기 살인에 이용된 늑대개에게 맞춰집니다. 무시무시한 살인견인줄 알았던 늑대개의 애절한 모습은 과연 우리가 무서워해야할 것은 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늑대개인지, 아니면 선한 얼굴 뒤에 가려진 악마의 본성을 가진 인간인지 헷갈리게 만듭니다.

늑대개가 마지막까지 남은 가해자의 목덜미를 물었다가 상길에게 사살당하는 장면에서 유하 감독은 자신이 할 수있는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늑대개의 최후를 비장미가 가득 넘치게 표현해냅니다. [하울링]의 진정한 주인공이 바로 늑대개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죠.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여준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한 늑대개. 아무도 늑대개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늑대개가 죽인 인물들은 죽어 마땅했으며, 늑대개에게 살인의 본능을 심어준 것 역시 스스로가 아닌 인간들이었으니까요.

 

그와 반대로 인간들은 어떠한가요? 어린 가출 소녀들에게 마약을 강제로 투여하고 성매매에 이용했던 파렴치한 인간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상길과 은영의 동료 경찰들 역시 늑대개와 비교해서 하나도 나아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여성이라는 상대적으로 약한 신분을 가진 은영에게 폭력을 가하고 뜻대로 되지 않자 전출시키려는 이 영화 속 경찰들의 모습은 추악하기만 합니다.

이에 대항하는 상길과 은영은 무기력합니다. 상길은 어떻게든 자신도 그들과 같은 힘을 갖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은영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며 경찰이라는 직업에 최선을 다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상관의 온갖 폭력과 무시일 뿐입니다.

그러한 상길과 은영의 모습은 늑대개를 이용해 딸의 복수를 하려던 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힘이 없는 자의 무기력... 영화를 보는 내내 제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러한 무기력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했지만 상길에게는 지방으로의 승진이고, 은영은 다시 기동대로 전출가는 것입니다. 딸의 복수를 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범인과 사건을 해결했지만 역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상길과 은영의 처지는 개만도 못한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세상 위에서 부질없이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외침처럼 보였습니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만든 세상을 위한 영화

 

이건 관점의 차이입니다. 되돌아보면 유하 감독은 이런 식으로 장르를 이용하여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말죽거리 잔혹사]는 얼핏 보면 청춘 드라마입니다. 잘생긴 남녀 주인공이 학교 내에서 서로 사랑하고 다투는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의 골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학교라는 공간에 내제된 계급사회와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비열한 거리]에 와서는 아예 당시 유행하던 조폭 영화의 외형을 빌립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이어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해냈습니다. [쌍화점] 역시 마찬가지인데, 겉보기에는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야한 사극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국가 권력 안에서 갇힌 이들의 슬픈 사랑을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유하 감독은 꾸준히 장르 영화의 특성 안에서 다른 장르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데 그것은 권력의 폭력과 그러한 권력에 대항하지만 결국 굴복하고 마는 힘 없는 주인공의 비극입니다.

 

유하 감독이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하울링]의 메가폰을 잡은 것 역시 원작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영화 역시 이전의 유하 감독의 영화가 그러했듯이 외형은 스릴러라는 장르에 충실한 영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가진 자, 혹은 권력을 거머쥔 자가 있고, 주인공들은 그러한 이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합니다.

늑대개를 이용해서 딸의 복수를 하려했던 이는 결국 딸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고, 상길은 원하던 승진을 했지만 지방으로 밀려 났으며, 은영은 여전히 형사라는 조직 안에 융합되지 못하는 아웃 사이더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인공에게 집중되었던 영화의 비극성은 비록 늑대개가 모두 안고 떠났지만 남은 상길과 은영의 쓸쓸한 모습 역시도 충분히 비극적이었습니다.

분명 [하울링]은 유하 감독의 전작보다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영화입니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는 장르 영화를 효과적으로 비틈으로서 유하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충실했었고, 비록 상영 당시에는 송지효의 2시간짜리 영상 누드집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쌍화점]은 영화 자체는 유하 감독의 영화중 가장 극적인 비극으로 잘 포장되어 여운이 남았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하울링]은 유하 감독의 메시지가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엔 스릴러라는 장르의 틀이 너무 견고했고, 너무 일찍 터져나온 감정의 과잉은 영화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에 만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늑대개만도 못한 [하울링]속 인간 군상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아팠고, 여운이 짙게 남았습니다. 

 

 

미안하다... 질풍아!!!

우리 인간들이 너처럼 순수하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