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 그들의 전성시대는 현재진행형이다.

쭈니-1 2012. 2. 7. 11:49

 

 

감독 : 윤종빈

주연 : 최민식, 하정우, 조진웅, 마동석, 김성균, 곽도원

개봉 : 2012년 2월 2일

관람 : 2012년 2월 6일

등급 : 18세 관람가

 

 

우리의 80년대는 어떠했는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가 쏜 총탄에 쓰러지던 날,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 군사정권은 끝이 났고, 대한민국에도 민주화의 열풍을 불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뒤를 이어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던 최규하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에 의해 사임을 하였고, 결국 1980년 전두환이 최규하에 이어 대통령에 오름으로서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은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이 되던 1993년까지 대한민국을 장악했습니다. 

사실 제가 기억하는 80년대는 82년 프로야구 개막과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 그리고 88년 서울 올림픽과 호돌이가 전부입니다. 당시 저는 전영록에 열광하고 있었으며, 가수 이선희, 이지연과 배우 이미연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가끔 번화가로 놀러갔다가 대학생 형, 누나들의 데모에 휘말려 최루탄 가스에 콜록거렸던 기억도 나고, 학교에서는 북한에는 거지들만 산다고 배웠으며, TV에서는 전두환이 깡패들을 전부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려서 평화가 왔다고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어렸던 제게 80년대는 TV에서 떠드는 평화와 거리의 혼돈이 공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현재 국내 극장가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댄싱퀸], [부러진 화살]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국내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며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한국영화가 차지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전두환 정권 시절로 시작해서 노태우 정권 시절을 관통합니다. 그런데 제목을 보다보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범죄와의 전쟁'이 주제목인데 부제목이 '나쁜놈들 전성시대'입니다. 주제목과 부제목의 의미가 서로 상반되어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바로 그러한 주제목과 부제목의 상반된 의미로 이 영화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은 1980년 삼청교육대를 통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노태우는 1990년 10월 13일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렇게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야말로 가장 부패했었고, 나쁜 놈들이 가장 활개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80년대 대한민국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온갖 부패의 온상지 최익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부산 세관의 비리공무원 최익현(최민식)을 중심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영화의 초반 최익현이 동료들과 함께 밀수입된 물품을 가로채는 장면을 보면서 '나쁜놈'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피식'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세관 공무원의 자리를 얻기 위해 거액의 뇌물을 바친 그는 본전 생각에 열심히 자신의 몫을 챙기기에 바쁩니다. 누가 그를 욕할 수가 있을까요? 최익현은 애초부터 뇌물을 받고 자리를 판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더러운 부속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감사에 걸린 그의 팀에 희생양이 필요했고, 재수없게 최익현이 그 희생양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모두 비리를 저질렀는데, 나만 왜 해고를 당해야 하느냐? 이 자리를 얻기위해 내가 갖다바친 돈이 얼마인데...'라는 최익현의 하소연은 우습지만 응당 설득력도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당연히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이 당연했고, 오히려 혼자만 깨끗한 척 하는 이가 불이익을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만 그 댓가를 치뤄야하니 최익현으로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는 일이죠.

 

그런 최익현에게 기회가 옵니다. 최형배(하정우)라는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를 알게 된 것이죠. 이때부터 최익현은 어떻게든 최형배와 엮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와 원하는대로 최형배와 한 배를 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최익현은 혈연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최형배와 일을 하면서 그가 저지르는 온갖 비리에는 혈연은 물론, 지연, 학연, 또는 교회까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인맥을 동원해냅니다.

그러한 장면은 씁쓸한 웃음을 줍니다. 영화적으로 너무 과장되었다고요? 아뇨.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본 모습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편을 갈라놓고, 족보를 들먹이며, 학벌에 연연합니다. 최고 권력자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인물들이 정부의 요직에 배치되는 것 역시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통해 하고 있는 이야기는 [친구]와 같은 고전풍의 남성미 가득한 깡패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만연하고 있는 온갖 부정부패의 뿌리를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최익현이 있습니다. 그가 공무원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국가의 권력을 움켜잡고 있는 공무원의 비리가 윤종빈 감독이 밝히는 부정부패의 뿌리이니까요.

 

 

쫄았지?

 

그저 비리 세관원에 불과했던 최익현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부산 최대 조직폭력배 두목 최형배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권력자와 뒷골목 깡패의 만남. 그러한 조합이 낯설지 않습니다. 부패한 권력자와 뒷골목 깡패의 조합은 이미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존재임이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그때부터 이 영화는 최익현과 최형배의 불안불안한 동거와 그들의 배신의 드라마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이 단지 이익을 위해 뭉친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배신하기를 밥먹듯이 합니다.

최익현에게 최형배와의 만남은 처음엔 날개를 단 것과 같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불안불안한 관계가 지속됩니다. 능글맞은 최익현은 그때마다 특유의 입담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그 덕분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킵니다.

그러한 긴장감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영화적 재미를 이끌어 냅니다. 이 영화가 단지 80년대를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의 근원을 그리는 영화라면 영화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상업영화로서의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최형배의 존재는 바로 그렇게 자칫 반감될 수 있는 영화적 재미를 살린 것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쩜 저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만 모아 놓았을까?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물론 최민식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지만 하정우를 비롯한 뒷골목 깡패를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마저 '헉'소리가 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론 하정우가 있습니다. 말끔한 외모의 그는 [두번째 사랑], [멋진 하루], [국가대표] 등으로 약간은 찌질한 남자 역을 주로 맡았었습니다.

하지만 [추격자]의 냉혹한 살인자, [황해]의 잔혹한 조선족처럼 카리스마를 발휘할땐 여지없이 칼 같은 카리스마로 영화를 휘어잡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도 그랬는데 그의 눈빛, 목소리 하나하나에 저는 영화를 보며 쫄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쫄지 않고 혈연을 들먹이며 덤비는 최익현이 모습이 그래서 더욱 긴장하게 만듭니다.

하정우 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명품 조연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조진웅을 비롯하여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성균, 악덕 검사역의 곽도원, 그리고 여배우이면서 유일하게 카리스마를 발산시키는 김혜은 등 이 영화의 명품 연기는 끝도 없습니다.

 

 

살아있네!

 

하지만 역시 그 중의 최고는 최민식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최민식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연기력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관객 입장에서도 쫄 수 밖에 없는 최형배의 위험한 매력에 오히려 능글맞게 대처하는 최익현의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예기치않은 웃음도 안겨줍니다.

어느 영화 평론가가 이 영화의 최민식 연기를 보고 그를 인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좀 과장이다 싶었는데 보고나니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군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명백히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재미의 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구피에게 이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줬는데 내용을 유심히 듣던 구피가 '재미없네.'라고 일축하더군요. 하긴 영화의 내용만 늘어뜨리면 특별한 내용이 없으니까요. 배우들의 연기력은 제 입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1990년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최익현과 최형배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위기 속에서도 최익현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은 2012년 현재. 최익현의 전성시대는 아들이 물려 받아 여전히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80년대 이야기를 하던 영화가 2012년 현재를 이야기하면서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라고 선언할 때의 당혹감.

배우들의 명품 연기에 젖어 가끔은 웃고, 긴장감을 놓치 못하며 영화를 보던 저는 마지막 윤종빈 감독의 예상하지 못했던 카운트 펀치에 한방 맞은 표정으로 극장을 나서야 했습니다. 80년대는 나쁜놈들의 전성시대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80년대보다는 투명한 공정한 사회라고 믿고 싶지만 그러한 제 믿음은 역시나 씁쓸한 미소 속에 먼지처럼 사라집니다. '80년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시대적 공기가 현재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서다.'라는 윤종빈 감독의 연출변은 그래서 더욱 제 마음을 아프게 후벼팝니다.

 

 

80년대를 바라보며 현재를 생각한다.

30년이 지났건만 두 시대의 시대적 공기가 비슷하다는 감독의 말이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