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디센던트] -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것은 결국 가족이다.

쭈니-1 2012. 2. 3. 13:04

 

 

감독 : 알렉산더 페인

주연 : 조지 클루니, 쉐일리 우들리

개봉 : 2012년 2월 16일

관람 : 2012년 2월 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천국에 사는 그들

 

요즘 정말 춥죠? 저는 이러한 2월 한파가 시작되었던 지난 1일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이렇게 매서운 추위를 뚫으며 빙판길 위에서 종종 걸음으로 [디센던트]의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1월부터 달고 살아온 감기 기운이 아직 전부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잠시 [디센던트] 시사회에 참가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었지만 워낙 기대가 컸던 영화이기에 오들오들 떨며 시사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시사회 티켓을 받고 극장 좌석에 앉았지만 너무 추위에 떨었기 때문인지 한동안 한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온몸을 잔뜩 움츠리며 영화를 봤답니다. 그러면서 따뜻한 아랫목과 따끈따끈한 차한잔이 간절히 그리워 지더군요.

그러한 제 상태를 알고 있는지 [디센던트]의 영화 배경은 따뜻한 지상 낙원이라는 하와이입니다. 작렬하는 태양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저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하필 [디센던트]의 시사회가 있는 날이 50년 만에 최악의 한파를 기록한 날이기에 더욱 더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 시작부터 맷 킹(조지 클루니)은 관객에게 반문합니다. '사람들은 하와이를 지상 낙원이라고 하는데 하와이에 사는 사람이라고 힘든 일이 없겠느냐?'라며 추위에 지쳐 '하와이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 제게 일침을 가합니다. 어떻게 내 생각을 읽은 걸까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맷 킹은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조상을 잘 둔 덕분에 꽤 부유합니다. 하지만 아내는 보트 사고로 몇 년째 혼수 상태에 빠져 있고, 두 딸은 맷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비뚤어지기만 하고, 조상에게 물려 받은 하와이의 땅은 신탁 관리가 기간이 7년 밖에 남지 않아 팔아야할 처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총체적인 난국이 되어 맷을 압박하고, 급기야 아내의 주치의로 부터 아내가 깨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까우니 이제 생명유지장치를 떼어야할 때라는 통보까지 받습니다. 아름다운 하와이의 풍경과는 달리 이 모든 난관에 어쩔줄 몰라하는 맷의 표정은 교묘하게 맞물립니다. 그렇게 [디센던트]는 시작됩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맷의 상황은 더욱 안좋아질 뿐입니다. 기숙 학교에서 문제아 노릇을 하던 큰 딸 알렉산드라(쉐일리 우들리)는 맷에게 엄마가 바람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지금 상황만으로도 벅찬 맷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핵폭탄급 폭로인 셈이죠.

사실 이러한 설정은 [디센던트]가 처음이 아닙니다. 그 중 허진호 감독의 [외출]이 저는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배용준과 손예진을 캐스팅하며 화제가 되었던 [외출]은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다가 교통 사고로 의식 불명에 빠진 사실을 알게된 두 주인공이 서로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냈습니다.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제겐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였습니다.

그렇다고 [디센던트]와 [외출]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두 영화는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된 주인공이라는 기본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설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외출]이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된 두 주인공의 또다른 사랑이라는 약간은 멜로 판타지에 젖어든 영화라면 [디센던트]는 맷의 상황을 코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담아냅니다.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렉산드라에 의해 알게된 맷이 아내의 절친한 친구의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립니다. 맷의 표정,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내의 외도에 대한 당혹감, 그러한 사실을 주위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서 오는 분노, 그러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분출된다면 맷처럼 어쩔줄 몰라 어정쩡한, 그래서 타인이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디센던트]는 그 이후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한껏 밝아집니다. 맷은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는데, 그러한 상황은 오히려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만드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셈입니다.

 

 

이것이 가족의 힘이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되면서 최악의 상황에 빠진 맷. 그러나 그러한 맷의 상황을 표현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초반과는 달리 밝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던 것은 말썽쟁이 큰 딸이었던 알렉산드라의 존재가 컸습니다.

첫 등장에서부터 한밤중에 기숙사를 빠져나와 해변가에서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맷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알렉산드라. 그녀는 맷에게 이유없는 반항을 하며 맷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알렉산드라가 맷에게 엄마의 외도 사실을 털어 놓으며 오히려 맷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내의 외도에 당황하던 맷과는 달리 침착하게 아빠를 달래며, 엄마의 불륜 상대자인 브라이언을 찾아 나서는 여행에 동행하는 알렉산드라. 영화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든든해 보이던지...

 

특히 맷의 깐깐한 장인인 스콧(로버트 포스터)이 맷에게 내 딸에게 좀 더 잘하지 그랬냐며 몰아부치는 장면에서 알렉산드라가 맷의 편에 서서 스콧에게 항변하는 장면은 든든함을 넘어서 아주 속까지 시원해 지더군요. 마냥 사춘기의 반항아인줄 알았던 알렉산드라는 엄마의 부재 속에서 이제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입니다.

맷을 가장 힘들게 한 것도 가족이지만, 결국 맷에게 가장 큰 힘을 준 것 역시 가족입니다. 어쩌면 가족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디센던트]는 감정을 최대한 자제시키며 영화를 이끌어 나가지만 그러한 이 영화를 바라보는 저는 웃음과 눈물, 감동까지 얻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맷과 두 딸이 쇼파에 편안하게 앉아 TV를 보는 장면은노련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찾는 천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죠.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저런 소소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것. 맷은 천국과도 같은 하와이에 살지만 아내의 사고로 지옥을 맛보았고, 다시 딸들과의 일상을 통해 또 다른 천국의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족의 힘입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디센던트]를 보고나니 새삼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역량이 돋보입니다. 저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이 [어바웃 슈미트]라는 영화를 통해서입니다.    

[어바웃 슈미트]는 평생 몸담았던 보험회사에서 은퇴한 워렌 슈미트(잭 니콜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퇴직후 자신의 심통을 받아주던 아내가 갑자기 죽고, 혼자가 됩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이상한 놈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딸의 결혼이라도 막아보겠다며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죠.

결국 젊었을 땐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패기를 지녔던 워렌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감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워렌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미소를 안겨준 것은 그가 탄자니아의 소년에게 후원했던 77센트라는 푼돈이었습니다. 그 푼돈으로 소년의 인생은 바뀌었고, 워렌은 비로서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어바웃 슈미트]는 잭 니콜슨의 능글맞은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면서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와 마지막 장면의 찡한 감동이 돋보였던 영화였습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연출력은 [어바웃 슈미트]에 멈추지 않습니다. [사이드웨이] 역시 그의 기가 막힌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이혼한 부인을 잊지 못하는 마일즈(폴 자이매티)와 결혼을 앞뒀지만 새로운 사랑에 전혀 망설임이 없는 잭(토마스 해이든 처치). 이 상반된 두 사내의 여행을 통해 [사이드웨이]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두 주인공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마일즈는 여전히 전부인을 잊지 못하는 찌질이이고, 잭은 여전히 확신이 없는 결혼을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신부를 맞이하며 잭과,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뒀던 와인을 허름한 식당에서 마셔버리며 짓는 마일즈의 미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보였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닌 셈이죠.

그러한 삶에 대한, 행복에 대한, 사랑에 대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깊은 성찰은 [디센던트]에서도 이어지는데 맷과 그의 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이드 웨이]를 보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탐난다라고 생각했던 저는 [디센던트]를 보며 이제 그의 영화를 필수적으로 꼭 봐야하 거장의 위치까지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갓 마흔을 넘긴 감독인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와이라는 천국도 개인의 사정에 따라 지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러한 지옥도 다시 천국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