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 - 아틀란티스 놀이공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쭈니-1 2012. 1. 25. 11:02

 

 

감독 : 브래드 페이튼

주연 : 드웨인 존슨, 마이클 케인, 조쉬 허처슨, 바네사 허진스, 루이스 구즈만

개봉 : 2012년 1월 19일

관람 : 2012년 1월 23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설날 연휴... 웅이만 신났다.

 

드디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4일 간의 설 연휴가 막을 내렸습니다. 시골 고향집에 다녀온 분들은 이번 설 연휴가 너무나도 짧게만 느껴졌을텐데요... 저는 모두 서울에 사시는 덕분에 조금은 길다 싶은 설 연휴를 보냈답니다.

그렇다고 저와 구피가 이번 설 연휴를 푹 쉬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학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웅이. 하지만 겨울 방학 내내 감기 기운 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한 웅이를 불쌍하게 여긴 구피는 설 연휴의 첫날인 토요일 빙어 낚기 체험을 계획했고, 그것이 저와 구피의 힘겨운 설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빙어는 해 뜨기 전에 가야 잘 잡힌다는 정보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했건만 강화도의 빙어 낚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이미 떠버린 아침 9시. 그래서일까요? 3시간 동안 그 추운 얼음 바람을 맞으며 끙끙거렸지만 저희 가족이 잡은 빙어는 고작 1마리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웅이가 어린이 맨손 빙어 잡기 체험에 참가해서 열댓마리를 잡아온 덕분에 어느 정도 체면은 세웠습니다.

 

잡은 빙어는 모두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을 기미가 보였전 제 감기 기운이 다시 도지면서 저는 비실거리며 설 연휴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그 여파가 구피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제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비실거리는 사이, 구피가 제사 음식 준비를 모두 도맡아 해야 했고, 결국 구피는 명절 증후군으로 인하여 설 제사가 끝난 이후부터 끙끙 앓으며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감기 기운으로, 구피는 명절 증후군으로 비실거리는 동안 신이 난 것은 웅이 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빠, 엄마와 하루종일 함께 보내게 된 웅이는 제게 착 달라 붙어 '아빠, 놀아줘'를 외치고 있었고, 결국 저는 웅이의 성화에 못이겨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을 보러 극장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그래도 뭔가 웅이에게 특별한 경험을 해주기 위해서 집근처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닌, 버스타고, 지하철도 2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용산 CGV의 아이맥스 상영관에 예매를 했고, 티켓도 포토티켓으로 꾸미며 나름 신경 쓴 이벤트였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구피는 비실거리며 설 연휴를 보냈지만, 그래도 웅이는 빙어 낚시 체험도 하고, 처음으로 아이맥스 영화 보기 체험도 하는 등 겨울 방학 동안 최고로 신이 난 며칠을 보냈답니다.

 

 

내게도 아이맥스는 첫 경험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니 웅이만 생애 첫 아이맥스 체험이 아닌, 제게도 아이맥스 체험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 관람비에 민감한 저는 아이맥스는 물론 3D 영화도 별로 선호하지 않거든요. 만약 웅이가 아니었다면 3D로만 상영하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을 저는 미련없이 포기했을 것입니다.

분명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은 제겐 비싼 관람료를 내며 봐야할 영화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캣츠 앤 독스 2]라는 '도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라는 의구심만 들던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 브래드 페이튼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며, 드웨인 존슨이라는 연기력 제로, 근육만 빵빵한 배우가 주연을 맡았고, 영화의 내용도 어찌 어찌하다가 아틀란티스 대륙에 불시착한 이들이 뻔한 모험을 한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어드벤처 영화의 모양새를 띄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설날 연휴 웅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영화였고, 내용은 별 볼일 없어도 아이맥스로 보면 이 영화의 3D 효과로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구피가 '그렇게 비싸?'라며 두 눈이 휘둥그래지는 관람료를 지불한 것이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일단 만족이었습니다. 제가 예상한 그대로 이 영화의 내용은 별 볼일이 없었습니다. 그냥 예상했던대로 착착 진행이 되는 아틀란티스에서의 모험담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맥스로 봐서인지 3D 효과만은 좋았습니다. 마치 3D 효과를 위해 억지로 스토리 라인을 끼워 맞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거대한 도마뱀의 공격을 다룬 지상전, 거대한 벌을 타고 새에게 쫓기는 공중전, 바다에서 거대한 전기 뱀장어에 맞서 싸우는 수중전까지... 이 영화는 놀이공원의 이벤트성 3D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재미를 안겨 줬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3D 영화를 보며 [아바타]를 제외하고는 거의 3D 효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아마도 일반 상영관에서 3D 영화를 봤기 때문인가 봅니다.([아바타]는 영등포 CGV의 스타리움관에서 봤습니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의 3D 효과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는 제 자신을 느끼며 앞으로 3D 영화는 아이맥스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런데 관람료가~)

 

 

철저하게 영화적 재미에 맞춰진 부실한 캐릭터.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을 보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스토리 라인 구축보다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좋아할까? 라는 고민부터 하고 그에 맞춰 캐릭터를 구성하고, 영상을 기획하고, 스토리 라인을 끼워 맞췄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캐릭터만 봐도 딱 티가 납니다. 어드벤처 영화에서 관객이 선호하는 근육질의 히어로 행크(드웨인 존슨)가 당연히 그 중심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뭐든 뚝딱 할 수 있는 해병대 출신입니다. 그 옆에는 행크와 티격태격할 두 캐릭터 알렉산더(마이클 케인)와 숀(조쉬 허처슨)이 배치되어 있고, 관객이 좋아할만한 글래머 여성 캐릭터 카일라니(바네사 허진스)는 시종일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한 의상을 입고 활약합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웃기는 감초 캐릭터 역시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헬기 조종사이자 카일라니의 아버지인 가바토(루이스 구즈만)가 그 역할을 해냅니다.

 

이렇게 관객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를 모아 구성한 이 영화는 이제 이들을 아틀란티스라는 재미있는 놀이 공간에 떨어뜨려 놓고 3D 카메라가 찍어낼 수 있는 온갖 모험을 하게끔 만듭니다.

네, 맞습니다. 내용은 뻔하고 캐릭터들도 다소 허접합니다. 숀은 다짜고짜 행크에게 반항을 합니다. 영화에서는 숀의 반항에 단지 그가 어머니와 결혼한 의붓 아버지라는 이유 하나만 던져 줍니다. 

숀과 행크 캐릭터를 탄탄하게 구성하려면 이들의 이야기에 좀더 실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영화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냥 관객들에게 반항적인 숀, 그런 숀에게 아빠로서 인정을 받고 싶은 행크라는 단서만 던져 주고 이들의 캐릭터를 따라오라고 강요합니다. 가바토와 카일라니 캐릭터도 마찬가지인데 무능력한 아빠 가바토가 카일라니의 대학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는 단서 하나로 이들의 캐릭터를 몽땅 설명하려 합니다.

이렇게 캐릭터가 부실하니 숀이 행크를 아버지로 인정하는 장면의 감동은 느낄 수가 없고, 카일라니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행을 위기에 빠뜨리는 가바토의 선택도 생뚱맞습니다. 하지만 진정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캐릭터 따위는 개에게나 던져주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아틀란티스 놀이공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화를 볼 때 캐릭터 위주로 보는 제게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의 부실한 캐릭터 설정은 분명 불만 요소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부실한 캐릭터와 급조한 티가 나는 스토리 라인을 무시해도 좋을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신나는 모험입니다.

거대한 도마뱀의 습격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털이 복실복실하게 나있는 귀여운 벌을 타고 무시무시한 새에게 쫓기는 모험은 하이라이트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벌에게서 떨어지는 카일라니를 구해주는 숀의 장면으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설정의 극치를 보여주긴 하지만 애초부터 캐릭터도, 스토리 라인도 포기하고 이들의 모험담에만 집중을 할 생각이었다면 애교로 봐줄수도 있습니다.

네모 선장의 일기을 꺼내들때 튀어나오는 거대한 지네, 네모 선장의 노틸러스호에 가기 위한 모험과 거대한 전기 뱀장어의 습격 등 이 영화는 단 한시도 쉴 틈이 없이 3D 효과를 강조한 장면들을 배치해 놓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봤다는 생각보다는 무슨 신나는 놀이공원에서 한바탕 신나게 뛰어다닌 느낌입니다.

이건 다시 말해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은 영화로서는 불합격이지만 어린 자녀와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이벤트성 영화로서는 합격점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영화 자체가 철저하게 영화적 완성도를 포기하고 3D 영화로서의 재미에만 매달린 결과입니다. 이럴 경우도 제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도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웅이는 '우와'라며 놀란 표정을 짓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3D 효과를 느낄 수 있는 화면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그렇게 철저하게 이벤트성 영화의 장점을 발휘합니다. 어쩌면 일반 극장에서 봤다면 하품을 했을지도 모를 이 영화, 제게는, 그리고 웅이에게는 아이맥스 영화관이 첫 경험으로 너무나도 알맞은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웅이에게 '저런 신비의 섬이 있다면 넌 갈래?' 라고 물었다.

하지만 웅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모험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해요.'라고 하더라.

이런 위험한 모험을 직접 체험이 아닌 간접 체험하고 싶은 소심한 관객이 있기에 

이 영화와 같은 이벤트성 영화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