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 교육 다큐멘터리가 상업 영화로 변신하기 위해서...

쭈니-1 2012. 1. 30. 10:40

 

 

감독 : 한상호

나래이션 : 이형석, 신용우, 구자형

개봉 : 2012년 1월 26일

관람 : 2012년 1월 28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2008년 [한반도의 공룡]의 추억

 

2008년의 11월의 어느날. 장래희망이 공룡박사인 웅이는 제게 EBS에서 방영하는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교육 다큐멘터리를 녹화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웅이는 저녁 9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했기에 늦은 밤에 하는 [한반도의 공룡]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고편으로 [한반도의 공룡]의 방영 소식을 접하고 제게 녹화를 부탁한 것이죠.

저는 웅이를 위해 술 약속은 뒤로 미루고, 영화 보러 가는 것도 포기하고, [한반도의 공룡]을 녹화하기 위해서 TV 앞에 앉아야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한반도의 공룡]에 대해서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공룡 다큐멘터리라니... 분명 [티라노의 발톱] 수준의 특수효과와 다큐멘터리 특유의 지루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공룡]을 보면서 저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쥬라기 공원]의 퀼리티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공룡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고, 교육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점박이라는 이름의 타르보사우루스를 등장시켜 극의 재미를 이끌어냈습니다.

 

어린 타르보사우루스 점박이가 엄마 타르보사우루스와 함께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1부와 성인이 된 점박이가 엄마의 곁을 떠나 가정을 꾸리지만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2부. 그리고 [한반도의 공룡] 제작 과정을 다룬 3부로 이루어진 EBS 교육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은 어린 웅이에게 경이로운 다큐멘터리였지만 성인인 제게도 두 입이 쩍 벌어질 대단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후 저는 EBS에서 시청소감 리뷰를 작성해서 이벤트에 당첨됨으로서 [한반도의 공룡] DVD 세트를 선물 받았고, 웅이와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곤 합니다.(이번 영화를 보고나서도 역시 [한반도의 공룡] DVD 시청 시간을 가졌습니다.)

볼 때마다 놀라운 것은 [한반도의 공룡]은 놀라운 특수효과 외에도 교육 다큐멘터리로서 완벽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점박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공룡 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백악기 후기의 지각 변동으로 인한 공룡들의 비극을 담담하게 담아냈습니다. '한반도에는 어떤 공룡이 살았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백악기 후반의 공룡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입니다. 

 

 

2012년 장편 3D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점박이'는?

 

[한반도의 공룡]의 성공으로 제작진은 곧바로 영화화에 돌입했습니다. 교육 다큐멘터리라고는 하지만 캐릭터와 영화적 재미를 갖춘 [한반도의 공룡]으로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교육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이 장편 3D 애니메이션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으로 재탄생하며 한상호 감독은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교육적이던 [한반도의 공룡]의 색깔을 벗겨내고 좀 더 영화적 재미에 충실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우선 장남이었던 점박이를 막내로 탈바꿈 시킨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점박이라는 캐릭터에게 막내라는 이미지까지 덮어 씌움으로서 귀여움을 극대화시킨 것입니다. 그러한 설정은 점박이가 성장하고 암컷 타르보사우루스인 푸른눈과의 사이에서 세마리의 새끼 타르보사우루스를 갖게 되면서도 드러나는데 이 영화는 굳이 막내에게 리틀 점박이라는 애칭을 안겨주며 마지막까지 막내에 대한 편애를 드러냅니다. 주관객층인 어린이 관객에게 캐릭터를 더욱 부각시키려는 설정인 셈입니다.

그 외에도 3자의 입장을 고수했던 [한반도의 공룡]의 나래이션을 점박이의 성장에 맞춰 점박이의 나래이션으로 바꾼 것 역시 점박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한 영화의 장치입니다.

 

하지만 역시 [한반도의 공룡]과 비교해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애꾸눈이라고 불리우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등장입니다.

공룡 애호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공룡 시대의 제왕으로 알려진 티라노사우루스를 영화에 등장시킨 것은 철저하게 영화적 재미를 위한 장치입니다.

[한반도의 공룡]에서는 선과 악의 구별이 없습니다. 물론 점박이를 위기에 빠뜨리고, 2부에서는 점박이의 새끼들을 잡아 먹었던 벨로키랍토르와 테리지노사우루스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 공룡에게 악당의 굴레를 씌우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벨로키랍토르와 테리지노사우루스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행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꾸눈은 전형적인 악당입니다. 비열한 수법으로 점박이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마지막에도 끈질기게 점박이를 괴롭힙니다. 여기에는 자연의 법칙 따위는 없습니다. 단지 일반 상업 영화에서 통용되는 단순한 선악 구도만 있을 뿐입니다.

 

 

유일한 옥의 티는 애꾸눈

 

사실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영화입니다. 2008년보다 더욱 발전한 특수효과는 공룡들의 모습, 표정, 움직임을 더욱 세세하게 잡아냅니다. [한반도의 공룡]에서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던 움직임이 영화에서는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반도의 공룡]에서 고작 여덟 종류의 공룡을 부활시킨 것에 반에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에서는 좀 더 다양한 공룡들을 선보입니다.(홈페이지를 보니 17종류의 공룡이 등장했더군요.) 이러한 다양한 공룡들의 등장은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애꾸눈의 등장은 분명 영화의 극적 재미를 더해줍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바다 속에서 리틀 점박이를 살리기 위한 점박이와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는 애꾸눈, 그리고 바다의 제왕인 틸로사우루스의 등장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답게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저는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전혀 아쉬움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이런 공룡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고, 영화적 재미도 갖추고 있으니 영화를 보면서 뿌듯함마저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공룡]과 비교한다면 역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상업 영화로서의 변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은 [한반도의 공룡]이 가지고 있던 교육적인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점박이와 애꾸눈을 내세운 단순한 이분법적 선악구도는 영화적 재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어린 관객들에게 쓸데없는 편견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이렇듯 애꾸눈의 존재는 이 영화의 유일한 옥의 티였는데 애꾸눈이 바위를 이용해서 적을 제압하는 장면은 두 장면이나 배치되었지만 억지 설정이었고,(애꾸눈은 볼링왕?) [한반도의 공룡]에서 초식 공룡이었지만 점박이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선사했던 테리지노사우루스는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에서는 애꾸눈과의 결투에서 싱겁고도 우스꽝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애꾸눈이 초식 공룡들을 몰아서 점박이 가족을 위기에 빠뜨리는 장면 역시 초반에 한번, 후반에 한번 사용함으로서 긴장감을 떨어뜨렸는데 아마도 수 많은 초식 공룡들이 몰려 뛰어다니는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억지 설정인 듯이 보입니다.

 

 

포기하기 전까지는 실패가 아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이 [한반도의 공룡]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 가치를 포기한 것은 비단 애꾸눈의 존재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여러 장면들은 애초에 [한반도의 공룡]이 가지고 있던 교육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만 같아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 공룡 박사를 꿈꾸는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한반도의 공룡]과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을 비교했을 때의 경우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본다면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은 나무랄데없는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가운데 주목해야할 한 명의 스텝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CG 총책임자인 민병천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아마 잘 아시는 분이 드물 것입니다. 저처럼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관심이 많은 분이 아니라면 말이죠. 왜냐하면 그는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두 편을 남겨두고 홀연히 영화계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1999년 최민수와 정우성을 캐스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 액션 영화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유령], 2003년 유지태, 이재은을 캐스팅하여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서 인간 남성와 사이보그의 사랑을 그렸던 [내츄럴 시티]가 바로 민병천 감독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부실한 스토리 라인으로 실패를 겪었습니다. [유령]은 [크림슨 타이드]를, [내츄럴 시티]는 [블레이드 러너]를 따라하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죠.

특히 [내츄럴 시티]는 제작 일정이 늦어지며 제작비가 급상승했고, 결국 투자자들 사이에선 '뇌출혈 시티'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영화입니다. 이들 영화의 실패 이후 민병천 감독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몰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민병천 감독은 경험을 쌓았고, 결국 그 경험은 [한반도의 공룡]과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으로 이어졌습니다. 단기적인 시선으로 볼때 민병천 감독은 실패한 영화인이지만 장기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의 경험은 우리 영화계에 큰 도움이 된 셈입니다. 포기하기 전까지는 결코 실패가 아니다...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은 그러한 교훈까지 우리에게 선사한 고마운 영화입니다.

 

 

'한반도에는 어떤 공룡이 살았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한반도의 공룡]을 탄생시켰다.

그들이 만약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외국의 공룡 다큐에 만족했다면

우리는 결코 이 경이로운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