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크 네빌딘, 브라이언 테일러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시아란 힌즈, 아이드리스 엘바, 바이오랜트 프라치도
개봉 : 2012년 2월 16일
관람 : 2012년 2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할리우드 영화의 굴욕?
[댄싱퀸]과 [부러진 화살]의 쌍끌이 흥행에서부터 시작한 2012년 한국영화의 박스오피스 돌풍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거쳐 [하울링]으로 옮기며 아직도 무한 질주 중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세계 영화 흥행을 주름잡고 있다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극장가의 비수기라는 2월이기에 아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본격적으로 출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영화의 놀라운 돌풍은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이 개봉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영화에 대적했던 할리우드 영화들은 [디센던트], [워 호스] 등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화들이 한국영화 돌풍에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영 힘을 못쓰고 있는 실정이니... 마블 코믹스의 다크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영화라면 할리우드의 화려한 특수효과에 목 마른 관객들에게 어쩌면 어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주 잠시...
계획대로 한국영화의 돌풍을 이어나갈 기대작인 [하울링]을 먼저 보고,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을 보기 위해 집 근처 멀티플렉스인 목동 메가박스와 CGV 목동의 주말 상영 시간표를 조회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은 없었습니다.
다수의 상영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흥행할 영화라면 결코 놓치지 않는 (그와는 반대로 흥행이 힘든 영화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냉정한) 목동 메가박스와 CGV 목동에서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을 상영하지 않다니... 이건 대한민국 대표적인 멀티플렉스인 두 극장 체인이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에 흥행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것과도 같습니다.
결국 저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CGV 공항까지 가서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을 보러 갔습니다. 평소에 CGV 목동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도 CGV 공항에서는 곧잘 상영하기 때문에 가끔 이용하는 곳인데, 그 곳 조차도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을 3D가 아닌 일반 2D로 상영하더군요. 한마디로 이 영화는 3D의 비싼 관람료로는 관객을 끌어 들일 수 없다고 CGV 공항도 판단한 것입니다.
도대체 그 무엇이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에게 개봉 전부터 이런 굴욕을 안겨준 것일까요? 한국영화의 돌풍? 아니 단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을 보면서 저는 '그래, 네가 얼마나 엉망인지 확인해 주겠다.'라는 심정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2007년의 굴욕은 오히려 양호했단 말인가?
2007년 4월 [고스트 라이더]가 국내에 개봉했었습니다. 2007년이면 할리우드의 코믹스 영웅들이 한참 활개를 치던 해입니다. [스파이더맨 3]도 그 해에 개봉했고, [판타스틱 4 : 실버서퍼의 위협]도 코믹스 영웅의 인기에 한 몫 거들었었습니다.
게다가 [고스트 라이더]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였습니다. 2007년에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티켓 파워가 아직 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해에 그는 [넥스트], [내셔널 트레져 : 비밀의 책]을 개봉시키며 식지 않은 인기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조건은 [고스트 라이더]의 흥행에 적합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스트 라이더]에 대한 국내 관객의 시선은 싸늘했습니다.(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상망에 따르면 [고스트 라이더]는 2007년 영화 흥행 TOP 5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며, Daum의 네티즌 평점은 4.4점으로 거의 최악 수준입니다.)
이러한 흥행 부진은 국내 뿐만이 아니었는데 미국에서는 1억1천5백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는데 그쳤고, 월드와이드 성적 역시 2억2천8백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가 1억1천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겨우 본전치기만 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고스트 라이더]의 흥행 부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코믹스 영웅물의 유행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영웅의 힘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을 강조했던 [스파이더맨 3]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조금은 가볍게 코믹스 영웅물을 그렸던 [판타스틱 4 : 실버서퍼의 위협]은 기대만큼의 흥행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당시 코믹스 영웅물은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영웅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스트 라이더]는? 젊은 시절 멋모르고 한 악마와의 계약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쟈니 블레이즈(니콜라스 케이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악마인 메피스토에 대한 두려움으로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영화의 설정 자체는 당시 유행하던 심각한 영웅물과 부합되었습니다.
하지만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은 [고스트 라이더]를 심각한 영웅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설정은 심각한 영웅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영화의 전개는 신나는 액션 영화였습니다. 그러한 부조화는 [고스트 라이더]를 상당히 어정쩡한 영화로 만들었는데 2007년 당시 저는 [고스트 라이더]를 본 후 '코믹스의 영웅스럽기만 했다.'며 심각한 척 흉내내기에 그쳤던 [고스트 라이더]에 실망감을 드러냈었습니다.
[고스트 라이더]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니콜라스 케이지는 티켓파워가 예전같지 않은 그저 평범한 다작 배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 코믹스는 '고스트 라이더'를 포기하지 못했고, 마크 네빌딘과 브라이언 테일러 감독에게 [고스트 라이더]를 맡겼습니다. 그들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놔두고 2007년 [고스트 라이더]에서 모든 것을 바뀌버립니다.
일단 그러한 변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부쩍 줄어든 제작비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1억1천만 달러가 투입된 [고스트 라이더]와는 달리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의 제작비는 3D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5천7백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전편의 제작비에 비해서 반토막이 난 셈이죠. 5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까지 계산한다면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졌는지 알 수있는 대목입니다.
마크 네빌딘과 브라이언 테일러 감독은 출연진에서도 대푝적인 교체를 시도했는데 전 편에서 영화를 밝게 이끌어 나가는데 한 몫을 했던 글래머 여배우 에바 멘데스는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에서는 조용히 사라졌고, 그 자리를 전혀 생소한 배우인 바이오랜트 플라치도가 메꾸고 있습니다.
악당도 단출해졌습니다. 전 편인 [고스트 라이더]에서는 악마에게 반기를 든 타락 천사 블랙하트와 각자 특이한 능력을 가진 블랙하트의 부하들과 쟈니 블레이즈의 대결로 블록버스터의 풍모를 자랑했었습니다. 하지만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에서 악당이라고는 손에 대면 모든 것을 썩게 만드는 참 지저분한 능력을 지닌 블랙아웃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 영화의 분위기입니다. [고스트 라이더]의 흥행 부진 이유를 코믹스의 다크 히어로 영화와 맞지 않은 밝은 분위기임을 간파한 두 감독은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을 밝은 분위기를 싹 거둬낸 어두운 영화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아뇨... 앞에서 언급했지만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은 오히려 [고스트 라이더]보다 더 부진한 흥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개봉 첫 주 성적은 2천2백만 달러로 3위에 불과하고, 국내 주말 흥행 성적은 더욱 처참한데 6만명으로 8위에 겨우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 편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만 놔두고 모든 것을 바꾸었는데 왜 흥행 성적은 오히려 전 편보다 더 부진한 것일까요? 바로 그러한 점이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의 문제입니다. 전 편에서 거의 모든 것을 바꾸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결과 이 영화는 정체성이 모호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네 정체가 뭐냐?
[고스트 라이더]는 분명 당시 유행을 쫓아가지 못했던 너무 가벼은 코믹스 영웅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미국에서만 1억1천5백만 달러를 벌여 들었다는 것은 그러한 가벼운 코믹스 영웅물을 선호하는 관객층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코믹스 영웅물을 좋아하는 관객이 무조건 영웅의 고뇌를 보며 환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은 그러한 점까지 바뀌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대폭 줄어든 제작비에 맞춰 이 영화는 액션이 아닌 공포에 초점을 맞춥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예언의 날 자신의 아들인 대니의 몸에 들어가려는 악마 로크(시아란 힌즈)의 의식 장면인데... 이 장면은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이 미국 공포 영화의 한 장르인 엑소시즘 영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마크 네빌딘, 브라이언 테일러 감독은 티켓 파워가 떨어진 니콜라스 케이지 대신에 활활 불에 타는 해골의 몰골을 한 '고스트 라이더'를 더욱 자주 등장시키는데, 그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는 한층 어두워졌고, 공포 영화다운 섬뜩함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크 네빌딘, 브라이언 테일러 감독이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포 영화가 아닌 코믹스 영웅물이고, '고스트 라이더'의 이야기가 아닌 악마에게 영혼을 판 쟈니 블레이즈의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에서 쟈니 블레이즈는 단지 모로(아이드리스 엘바)가 대니를 데려오면 악마의 계약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에 흔들리는 모습만이 잠깐 나올 뿐입니다. 그만큼 쟈니 블레이즈의 역할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엑소시즘 공포 영화와 다크 히어로 액션 영화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전 편이 너무 가벼웠지만 그래도 코믹스 히어로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었다면 [고스트 라이더 : 복수의 화신]은 도저히 코믹스 영웅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당황스러웠습니다. 액션은 전 편에 비해 줄어든 제작비만큼이나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쟈니 블레이즈의 고뇌하는 모습대신 '고스트 라이더'의 음흉한 웃음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악당의 존재감은 거의 제로 수준입니다. 그나마 오랜만에 보는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모습만 반가웠던, 제겐 오히려 [고스트 라이더]가 그리웠던 영화였습니다.
미국판 티져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의 의도가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건 불타는 해골의 악마퇴치 영화가 아닌
악마와 계약을 한 쟈니 블레이즈에 대한 영화란 말이다.
도대체 쟈니 블레이즈가 보이지 않는 [고스트 라이더]를 뭐라 이해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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