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허인무
주연 : 권상우, 하지원, 김인권
개봉 : 2004년 8월 6일
관람 : 2004년 8월 9일
극장가의 대목이라는 썸머시즌을 맞이하여 유난히도 올해는 우리 로맨틱 코미디가 눈에 많이 띕니다. [아는 여자], [내 남자의 로맨스]와 같은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에서부터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과 같은 하이틴 로맨스 영화까지... 이러한 로맨틱 코미디는 공포 영화와 더불어 헐리우드의 거대한 블럭버스터에 맞서는 우리 영화의 생존 전략으로 이젠 자리매김한듯이 보입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우리 영화도 한국형 블럭버스터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와의 맞불작전으로 과감하게 나선다면 더욱 썸머시즌의 극장가가 흥미진진하겠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우리 블럭버스터 영화들에겐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 보이는 군요. 하지만 아기자기한 로맨틱 코미디로 블럭버스터에 지친 관객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때리고 부수는 영화만 반복적으로 볼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신부수업]은 모범적인 신학생 규식(권상우)과 못말리는 말괄량이 봉희(하지원)의 티격태격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이며, [동갑내기 과외하기], [말죽거리 잔혹사]의 근육질 스타 권상우와 [가위], [폰]으로 호러퀸에 오른후 [다모], [발리에서 생긴일]로 TV를 평정하고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하지원을 내세운 스타스시템에 의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폭력적인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에 맞서 무공해 영화임을 내세운 틈새시장 공략형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 [신부수업]은 최근에 보았던 영화중에서도 가장 재미없었던 영화였습니다. [신부수업]과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인 [내 남자의 로맨스], [아는 여자]에 열광했고, 관객들의 악평에 시달렸던 귀여니 원작의 두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조차도 재미있게 보았던 저였지만 도저히 [신부수업]만큼은 재미있게 볼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1. 난 하지원을 좋아한다. 하지만...
6개월전 저는 [신부수업]과 비슷한 류의 영화인 [내사랑 싸가지]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영화의 다른 요소들은 전혀 고려하지않고 무작정 하지원이라는 이름하나만으로 [내사랑 싸가지]를 본겁니다. 저는 그만큼 하지원을 좋아합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하지원의 카리스마를 좋아합니다. 제가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영화 데뷔작인 [진실게임]에서부터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의 대선배인 안성기와 연기하면서 결코 주눅들지 않고 날카로운 연기를 선보였던 그녀는 안병기 감독의 공포 영화인 [가위], [폰]에서는 더욱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결국 저는 여배우로는 드물게 카리스마를 가진 그녀의 연기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가 코미디 영화들을 선택하며 그녀의 카리스마는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색즉시공], [역전에 산다]등의 영화에서 이미지 변신을 선언했던 그녀는 [내사랑 싸가지]에서 결국 파격적인 망가짐으로 호러퀸이라는 닉네임을 털어버렸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쉬웠습니다. 국내에 몇안되는 카리스마를 지닌 여배우가 스스로 그 카리스마를 내던지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호러퀸으로 머물수 없다면 그녀의 연기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연기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내사랑 싸가지]라는 최악의 영화에서조차 하지원의 연기 변신에 만큼은 박수를 보냈었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죠. '이젠 할만큼 했으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다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신부수업]이라는 영화로 다시한번 제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내사랑 싸가지]에서는 그녀의 망가짐에 박수를 보냈을지 모르지만 이젠 그럴 수 없습니다. 그녀는 확실하게 호러퀸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성공했지만, 가벼운 코미디 영화에서 출싹되는 철부지 아가씨라는 달갑지않은 또다른 고정된 이미지를 얻은 겁니다. 이제 이러한 가벼운 하지원의 연기는 더이상 연기 변신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영화가 싫습니다. 하지원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기에 그녀에게 어울리지않는 고정된 이미지의 올가미를 씌운 이 영화가 싫습니다. 그녀가 호러퀸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위해 [색즉시공], [역전에 산다]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쳤듯이, 이젠 가벼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기위해 또 몇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것입니다. 하지원의 연기변신은 [내사랑 싸가지]에서 멈췄어야 합니다. 그 점이 아쉽습니다.
2. 권상우의 연기변신은 시도만 좋았다.
하지원이 [신부수업]을 통해 가벼움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얻었다면, 권상우는 [신부수업]을 통해 순진남이라는 새로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였습니다. 솔직히 권상우에게 순진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의 문제아가 권상우라는 배우에겐 맞춤옷과 같은 이미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영화의 초반 그는 순진남 연기를 함으로써 어느정도 연기 변신에 성공하긴 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의 순진남은 영화의 후반 폭발적인 반항아 연기를 내제하고 있었기에 절반의 연기변신만 이루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신부수업]에서 권상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진남을 연기합니다. 권상우로써는 제대로된 연기 변신의 기회를 붙잡은 셈입니다.
하지만 제게 권상우의 연기변신을 평가하라면 70점정도의 점수밖에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의 순진남 연기는 분명 색달랐지만 그리 썩 어울렸다고 말할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세상에서 가장 착한 표정으로 모범 신학생 연기를 하는 권상우의 연기를 보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지훈이 생각나기도 하고,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권상우가 연기를 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권상우의 연기력이 문제였다기 보다는 권상우가 연기한 규식이라는 캐릭터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관객을 휘어잡을 별다른 매력을 가지지 못한 규식이라는 캐릭터는 시종일관 착함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만을 강요당함으로써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듯 규식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약하다보니 규식을 연기하는 권상우의 모습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이미지인 지훈과 현수라는 캐릭터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수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권상우의 연기 변신은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좀더 멋진 영화에서, 좀더 멋진 캐릭터를 만날 다음 영화를 말입니다.
3. 전형적인... 너무나도 전형적인...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스타 시스템이 이렇게 별다른 영화적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자 [신부수업]은 곧바로 그 취약한 약점을 드러냅니다.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가 서로 엇비슷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신부수업]의 스토리 라인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정말 지루하고 진부합니다.
이 영화가 새롭게 제시한 것이라고는 남자 주인공이 신학생이라는 것 뿐입니다. 여자가 아닌 하느님을 사랑하기로 맹세한 신학생과 사랑을 찾아 미국에서온 아무도 못말리는 말괄량이의 사랑 이야기. 얼핏보기엔 뭔가 이전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색다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전혀 그러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범주안에서 영화는 진행되며, 예정된 해피엔딩으로 어김없이 마무리합니다.
그래도 이 영화가 공감이 가는 캐릭터와 내실있는 스토리 라인만 구축했다면 이런 예상 가능한 스토리 라인과 뻔한 해피엔딩은 결코 약점이 되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캐릭터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고 스토리 라인은 너무나도 부실합니다.
먼저 규식이라는 캐릭터. 모범적인 신학생이지만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수없이 신학생이 되었음을 아주 잠시 영화는 말해줍니다. 그야말로 아주 잠시... 스치고 지나가듯이... 하지만 그것만으로 규식이 신부가 되기를 포기하고 봉희를 선택한 것을 이해시키기엔 부족합니다. 뭔가 규식이 신부가 되기를 마지막에 포기한 이유를 좀더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했기에 규식의 마지막 선택은 해피엔딩을 위한 억지 설정에 불과한 겁니다.
봉희라는 캐릭터는 좀 더 심합니다. 영화의 초반 그녀는 이해가되지 않을정도로 대책없는 말괄량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어느사이 요조숙녀로 변합니다. 하느님의 힘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리가 많죠.
봉희가 요조숙녀로 변하며 영화의 분위기도 갑자기 최루성 멜로로 변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관객들은 전혀 슬프지 않는데 영화속 캐릭터들은 눈물을 짓습니다. 규식이 신부가 된다고해서 이 두사람의 사랑이 영원히 끝나는 것은 아닌데 마치 두사람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처럼 눈물지으며 안타까워합니다. [내사랑 싸가지]의 어이없는 후반부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신부수업]은 아무리 막강한 스타시스템이라도 부실한 영화를 살릴수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입니다. 이쁘고 잘생긴 스타급 배우가 울고 웃는다고 해서 관객들도 그 장단에 춤을 출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빨리 버려야할것입니다. 제가 허인무 감독에게 바라는 것은 빨리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다음 작품에선 스타에 기대지 않아도 재미있는 진정한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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