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독 : 알렉스 프로야스
주 연 : 윌 스미스, 브리짓 모나한
개 봉 : 2004년 7월 29일
관 람 : 2004년 7월 30일
2035년 가까운 미래, 인간은 로봇 덕분에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로봇도 진화한다'고 주장하던 가정용 로봇 개발의 창시자 래닝 박사가 자살을 하고, 래닝 박사의 유언에 따라 심각한 로봇 혐오증에 시달리는 시카고 경찰 스프너(윌 스미스)가 사건에 뛰어듭니다. 스프너는 인간들이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로봇이 래닝 박사를 죽였을것이라 확신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로봇들에겐 인간을 해칠 수 없다는 '로봇 3원칙'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스프너는 다른 헐리우드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거대한 음모에 맞서 비밀을 벗기고 진실을 밝혀내야합니다.
[아이, 로봇]은 2036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하여, 인간의 새로운 동반자로 급부상한 로봇과 컴퓨터를 소재로한 SF스릴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자본이 들어간 SF 블럭버스터답게 미래의 모습을 멋지게 구현해 냈으며, 스릴러답게 진실을 향해 전진하는 주인공의 위험한 모험을 긴장감있게 잘 포착해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재미있는 SF 블럭버스터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영화적 완성도입니다. [크로우]와 [다크시티]로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영화라는 점과 미국의 SF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철학적 원작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아이, 로봇]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영화적 재미만으로 만족되지 않는 겁니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그 암울한 미래의 묵시록적 영상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에 담긴 철학적 문제제기를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블럭버스터라는 다분히 상업적인 장르내에서 얼마나 잘 융합시켰는지 관객들은 너무나도 커다란 기대를 이 영화에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대로라면 이 영화는 기대에 한참이나 못미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환한 영상은 [다크시티]보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닮아있으며, 이 영화에 담긴 철학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답게 영화적 재미를 헤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살짝 비춰지기만 할뿐입니다. 하지만 너무 커다란 기대를 버린다면 이 영화는 시각적 효과만을 즐기길 원하는 다른 블럭버스터와는 달리 꽤 진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1. 감성을 선택한 인간 - 스프너
[아이, 로봇]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로봇과 감성에 치우쳐 이성적인 판단을 잃어버리는 인간 사이의 괴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스프너는 로봇의 이성에 따른 행동덕분에 생명을 구했지만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로봇에 대한 혐오를 키워나갑니다. 그는 로봇의 이성적인 행동을 증오하며 감성적인 판단으로 사건을 수사해나감으로써 '감성'이라는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를 관객에게 제시합니다.
솔직히 저는 맹목적으로 로봇을 증오하는 스프너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신뢰하는, 그리고 '로봇 3원칙'에 따라 완벽하게 통제되는 로봇을 그는 왜 증오할까? 이러한 스프너의 캐릭터 성격에 대한 몰이해는 이 영화를 단지 평범한 블럭버스터로의 재미만을 즐기게하는 주요 원인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역시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그리 만만한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화의 오프닝씬에서부터 스프너의 죄책감를 숨겨놓음으로써(영화의 후반부까지는 도대체 오프닝씬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영화의 후반에 가서는 효과적으로 스프너라는 캐릭터를 이해시킵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에게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이성적인 행동을 할것인가? 감성적인 행동을 할것인가?' 영화의 초반부터 [마이너리티 리포트]적인 하이테크한 SF블럭버스터의 재미만을 제시하던 이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서며 '이성과 감성'의 선택에 따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짐으로써 원작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문제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짧은 러닝타임이 '감성'을 대표하는 스프너에게 집중되어 '이성'을 대표하는 로봇의 선택을 관객에게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함으로써 이 영화의 질문은 답이 뻔히 보이는 블럭버스터다운 질문으로 전락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은 블럭버스터의 법칙에 따라 수잔(브리짓 모나한)이라는 미모의 여성을 스프너에게 짝지워줌으로써 함께 로봇의 음모에서 인간를 구해내는 블럭버스터적인 클라이막스로 치닫게 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이 영화의 화려한 블럭버스터의 재미에서 조금 벗어나 질문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본다면 과연 로봇의 이성적인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그러한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부터입니다.
2. 이성을 선택한 로봇 - 비키
자! 그렇다면 영화가 끝나고 우리가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로봇의 이성적인 행동의 논리는 무엇일까요?
사실 영화가 끝나고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에도 저는 '로봇 3원칙'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로봇의 반란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로봇 스스로 '로봇 3원칙'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데 과연 어찌된 일일까요?
오늘 아침에야 깨달은 해답은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성'입니다. 이기적인 자연 파괴등의 행위로 인간 스스로 멸망을 초래한다고 판단한 인공지능 컴퓨터 비키는 '로봇 3원칙'에 따라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인간을 헤치는 오류를 범하기 시작한 겁니다. '인간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라는 논리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비키의 그러한 논리가 로봇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하이테크한 블럭버스터의 영화적 재미로밖에 표현되지 않아 아쉽지만 다른 한편으로 따지고 본다면 꽤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멀리 볼것도 없이 아직도 우리 국민 사이에서 아련한 그리움(?)을 간직하게 만든 박정희 대통령만 하더라도 어쩌면 비키의 '이성'을 선택한 대표적인 인간일 겁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독재 정치를 폈습니다. 그러한 그의 선택은 분명 후진국에 불과하던 우리나라의 경제에 대단한 성공을 일으켰지만, 그와는 반대로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독재의 상처를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 후반의 로봇 대반란은 군사 쿠데타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통제하려한 비키의 선택은 분명 인간의 방종에 의한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로봇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것이 비키가 이해하지 못한 '감성'의 맹점입니다. 이성적인 기계에 불과한 비키에게 행복은 분명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한 단어에 불과했을 겁니다. 비키는 행복이라는 불합리한 단어를 배제하고 인간의 생존이라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것이죠.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이러한 비키의 논리가 이해되는 그 순간 저는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과연 제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선택해야할까요? '자유를 박탈당한 생존인가? 아니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자유인가?'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3. 이성과 감성의 조화 - 써니
이 영화는 '이성'과 '감성'사이에서의 선택과 함께 로봇 써니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시도합니다. 래닝 박사에 의해 창조된 이 로봇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느낌으로써 비키가 이해하지 못한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로봇의 이성적인 판단과 인간의 감성적인 행동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써니는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미래의 희망입니다. 감성에 의한 인간의 방종이 스스로의 멸망을 초래하고, 이성에 대한 로봇의 선택이 인간의 자유를 박탈해야하는 상반된 입장에서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지닌 써니는 이상적인 미래 인류의 모습인 겁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폐기처분 직전의 로봇들을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한 써니는 그 로봇들에게도 인간의 감성을 심어주려 할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의 감성을 부여받은 로봇들은 인간의 틈바구니속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해 나갈 겁니다. 그러한 제 예상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또다른 원작을 영화화한 [바이센테니얼 맨]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른 SF영화들과는 달리 인간을 닮으려는 로봇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 [바이센티얼 맨]은 로봇과 인류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러한 공존은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로봇의 대립이라는 스토리 라인을 지니고 있는 [아이, 로봇]의 마지막 장면과도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인 인류를 닮으려한 로봇과 그러한 로봇을 폐기처분하려고한 인간의 대립을 암울하게 그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인 필립 K.딕과 비교한다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미래관은 상당히 낙관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 우리는 과연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에서처럼 인간을 닮은 로봇과 공존하며 살고 있을지, 아니면 필립 K.딕의 작품에서처럼 인간을 닮은 로봇과 대립하며 살고 있을지... 정말 궁금해지는 군요.
분명 [아이, 로봇]은 철학적인 주제의식과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암울한 영상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블럭버스터에 맞게 영화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블럭버스터라는 무게에 짓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스타일을 잃어버리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 로봇]에서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이전의 모습과는 180도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변신을 비판만 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되었건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거대 자본이 들어간 블럭버스터를 만들기로 결심을 했으니 일부 매니아를 위한 자신의 스타일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좀 더 넓은 관객층을 위한 스타일의 변신은 블럭버스터를 선택한 감독에겐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단지 선택은 우리 관객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스타일과 진지한 철학적 질문을 원한다면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평범한 블럭버스터 감독으로 전락했다며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볍게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한편을 감상한다는 자세로 이 영화를 보게된다면 의외로 영화적 재미와 함께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쯤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철학적 질문과 마주치게 될것입니다.
이 영화속 써니처럼 감성과 이성을 모두 지닌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기에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선택은 특별한 답이 없습니다. 이성을 선택한 로봇도, 감성을 선택한 인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볼것인가에 대한 여러분의 선택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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