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내 남자의 로맨스] -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속에서의 작은 발견.

쭈니-1 2009. 12. 8. 16:59

 



감독 : 박제현
주연 : 김정은, 김상경, 오승현
개봉 : 2004년 7월 16일
관람 : 2004년 7월 16일


목요일... 휴가 3일째. 웅이는 전날 장모님께 맡기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보고 왔습니다. 집에 돌아 이것 저것 인터넷도 하고,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영화 이야기도 쓰고, 밥도 챙겨먹다보니 잠이 밀려와 그대로 쓰려져 낮잠을 잤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잔 것일까 구피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벌써 하루가 저물어가는 한밤중. '이렇게 오늘 하루도 지나가는구나'하며 허탈해할때쯤 구피가 심야 영화를 보러가자더군요. 아마도 휴가를 허탈하게 보내고 있는 제 모습이 불쌍해 영화로나마 그 허탈함을 채워주고 싶었나봅니다.
하지만 문제는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영화를 볼까 영화 사이트에 들어가 개봉작들을 살펴봐도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습니다. 집앞 극장인 목동 CGV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중에서 제가 아직 보지 않은 영화는 고작 세편뿐이어습니다. [투가이즈]와 [달마야 서울가자]와 [내 남자의 로맨스]. 그중 [투가이즈]가 가장 눈길을 끌었지만 이 영화에 대한 평이 워낙 좋지않아 왠지 극장에서 보는 것이 꺼려지더군요. 그렇다고 [달마야 서울가자]를 보자니 제가 워낙에 조폭 코미디를 싫어해서 역시 끌리지 않고, [내 남자의 로맨스]를 보자니 뻔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여서 역시 극장에서 돈주고 보기엔 돈이 아까울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구피와 처음으로 보는 심야 영화인지라 뭔가 분위기있는 로맨틱 코메디가 좋겠다는 생각에 [내 남자의 로맨스]를 선택했습니다. 김정은은 이미 [재밌는 영화], [나비], [불어라 봄바람]을 통해 실망할만큼 실망을 했으며, 박제현 감독은 그의 데뷰작인 [단적비연수]와 [울랄라 시스터즈]를 보고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터라 [내 남자의 로맨스] 역시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적인 재미만 안겨줘도 성공이다'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재미때문에 매번 엇비슷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나 봅니다.


 



[내 남자의 로맨스]는 분명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한여자가 나오고 한남자가 나옵니다. 그 두사람은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에 다른 여자가 끼어들면서 두사람의 사랑은 위태로워집니다. 하지만 두사람은 결국 마지막엔 장애를 뛰어넘고 서로간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물론 이러한 기본적인 스토리속에는 여자 주인공은 29세의 평범한 여성이며, 남자 주인공하고는 7년간을 열애했으며, 두사람 사이에 끼어든 다른 여자는 톱스타이더라식의 세세한 상황이 설정되지만 어차피 기본적인 스토리만 놓고본다면 이 세상 로맨틱 코미디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리고 [내 남자의 로맨스]역시 그런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바로 그 평범함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합니다. 물론 그 새로운 재미라는 것이 결코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내 남자의 로맨스]는 그 로맨틱 코미디의 힘과 영화가 제시한 새로운 재미가 맞물림으로써 꽤 유쾌한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이 영화의 첫번째 발견은 바로 김정은입니다. 김정은은 새로운 발견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유명한 스타급 배우입니다. 하지만 박제현 감독은 이전의 영화들이 발견하지 못한 김정은의 매력을 발견함으로써 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러디 영화를 표방한 그녀의 영화 데뷔작 [재밌는 영화]와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과 김승우가 다시 의기투합해 만든 [불어라 봄바람]의 예상치못한 흥행 실패는 바로 김정은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한것에서 기인합니다. 그녀가 코미디 연기의 대가이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무조건적으로 관객을 웃기라며 코미디의 무대로 내몰은 것이 이 두영화의 실패 요인입니다. 김정은의 코미디 연기는 바로 그녀의 평범한 외모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현실적인 상황위에서 김정은의 오버연기로 관객을 웃기려한 두영화는 관객의 공감을 제대로 살 수 없었던겁니다.
[내 남자의 로맨스]는 김정은의 매력을 살려냅니다. 김정은이 연기한 김현주라는 캐릭터는 7년동안 사귄 남자친구 김소훈(김상경)에게 프로포즈를 받기를 원하는 29살된 그야말로 평범한 여자입니다. 직장은 있지만 돈은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오로지 소훈과의 결혼뿐인 이 여자는 그렇기에 소훈에게 죽기살기로 매달립니다. 왠지 내 주위의 평범한 여자를 보는 것만같은 김현주라는 캐릭터는 김정은 이라는 평범한 매력을 가진 배우를 만남으로써 실감나게 관객에게 전해지고, 김정은은 김현주라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듯한 캐릭터를 만남으로써 오버연기를 하지않아도 자연스럽게 관객을 웃깁니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그리고 박제현 감독은 그 매력을 발견해낸겁니다.


 



이 영화의 또다른 발견은 바로 우리 평범한 서민들의 진솔한 모습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기위해 현실을 너무 미화시키고 단순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지나치게 이쁜 여자 주인공과 지나치게 멋진 남자 주인공. 마치 이슬만 먹고 살것같은 이 주인공들은 우아하게 사랑을 하고 우아하게 역경을 헤쳐나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러지못합니다. 우아하게 사랑을 하기엔 현실의 장벽은 너무 높습니다.
[내 남자의 로맨스]는 로맨틱 코미디가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이 현실의 높은 장벽을 그려내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표적인 캐릭터들이 수유리 5총사들입니다. 29살 동갑내기 친구들로 구성된 김현주와 그녀의 친구들은 무엇하나 잘난것 없는 소시민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각자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을 이룰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그 꿈을 이루기위해 피땀나는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구질구질한 현실속에서 웃고 즐기며 현실에 안주할 뿐입니다. 저도 29살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바로 그들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지금도 크게 달라진것은 없지만...)
현주 역시 그들과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녀에게 꿈과 희망은 단지 소훈과의 결혼입니다. 그를 잃게되면 그녀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죠. 29살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멋진 사랑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멋진 독신 여성이 될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소훈을 잡기위해 죽기살기로 덤비다가 결국 직장에서 쫓겨나고 새로운 직장에 취직을 하지만 그녀가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남자 사원들의 뒤치닥거리입니다. 우리네 평범한 소시민에게 우아한 사랑 놀음은 남의 이야기인겁니다.
현주에게 나에게만 매달리지말고 너 자신을 찾으라는 소훈의 충고는 그렇기에 신선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사랑은 결국 현실로의 도피를 위한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소훈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다른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바로 그 현실에서의 도피적인 사랑을 하고 있을때 [내 남자의 로맨스]는 현실속에서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정말 작지만 대단한 발견이죠.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남겨진 사람을 위한 배려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주인공들을 삼각관계에 빠뜨려놓고는 정작 마지막에 가서는 주인공들에게만 관심을 가집니다. 남겨진 사람은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나쁜 놈(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지만 [내 남자의 로맨스]는 그러지 않습니다. 소훈과 현주의 사랑에 끼어드는 톱스타 은다영(오승현)이라는 캐릭터를 이 영화는 끝까지 챙기고 마지막엔 위로를 해줍니다. 다영은 주인공들의 사랑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마지막에 가서는 악역이 될수도 있고, 아니면 은근슬쩍 잊혀질 수도 있지만 박제현 감독은 그러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있으면 주인공의 편에 서야할 저조차도 다영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어릴때부터 연기자 생활을 해서 생활속 작은 행복을 느껴볼 기회조차 없었던 그녀는 처음으로 찾아온 이 소박한 사랑에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어찌보면 현주보다도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7년동안 이루어진 쉽게 깨질수 없는 소훈과 현주의 사랑이라는 단단한 벽에 부딪혀 상처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또다시 혼자 남겨진 그녀의 외로움을 영화는 끝까지 지켜부고 위로해준겁니다.
이렇게 남겨진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게 되면 마지막에 결국 이루어진 주인공 커플의 사랑에 관객들은 힘찬 박수를 보낼수 없기에 대부분의 영화들은 남겨진 사람을 동정의 여지없이 매도합니다. 그럼으로써 주인공의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하죠. 최소한 [내 남자의 로맨스]는 그런 뻔뻔한 결말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영화가 끝나도 여운이 남습니다. 소훈과 현주의 사랑에 박수를 보내지만 다영도 결코 잊을 수 없기에 생기는 여운. 저는 그런 여운이 좋습니다.
이렇듯 [내 남자의 로맨스]가 발견한 것들은 정말로 아주 작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이러한 작은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렸기에 이 영화의 발견은 꽤 값져 보입니다. 그래봤자 어차피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에 불과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행복감이 밀려드는 것은 그 평범함속의 작은 발견 덕분이 아닐지...


 

 





IP Address : 221.139.41.184 
아랑
^^; 정말 요즘 볼만한 영화없던데.. 거의다 본 영화구.. 끌리는 한국영화없고.. 이건 괜찮을것 같네요.  2004/07/20   
쭈니 제가 워낙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서 평이 우호적일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이 영화를 보다가 극장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는 분도 계시니... ^^  2004/07/20   
준형
이 영화 정말 재미있었어요 ~ 특히 친구들이 제일 재밌었어요 ㅋㅋㅋ 아무튼 강추 ~~  2004/07/27   
쭈니 수유리 5총사말씀이시죠? 저는 왠지 그들의 모습이 제가 29살적 모습같아서 무척이나 친근했었답니다. ^^  2004/07/27   
투야
저두 참 재밌게 본 영화인데..쭈니님도 재밌께 봤따니..왠지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이네요..^^
전..이영화 보면서..엄청 울었답니다..극장에서 말이죠
같이 간 동생..쪽팔린다며..절 외면하더군요..--;;
글쎼요..쭈니님 말씀처럼..다른 로맨틱 코메디와 다를거 없는 설정이죠.. 진짜..기본에 충실한..그런 영화.
근데..쭈니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왜 그렇게 이 영화에 가슴이 와 닿는 느낌을 가졌는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알거 같네요.
주인공 3명다 제가 참 좋아라하는 사람들이지만..
이영화에서 김상경은..그리 튀는 존재가 아니더군요.
두 여자.. 김정은과 오승현의 연기가 맘에 와 닿았어요.
특히..후반부에 두 여자가 만나는 장면이 있죠. 결판내러..
그때 김정은의 우는 연기...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이 영화보면서 그런 생각 했었어요.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ㅋ
 2006/05/27   
쭈니 우셨다니...
굉장히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군요.
전 정말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나저나 이 영화에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오승현은 요즘 뭐하나 모르겠네요. ^^
 2006/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