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알폰소 쿠아론
주연 : 다니엘 래드클리프, 루퍼트 그린트, 엠마 왓슨, 게리 올드만
개봉 : 2004년 7월 15일
관람 : 2004년 7월 15일
2001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개봉되었을때 저는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를 보기위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극장에서 보는 것을 포기했었습니다. 2002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 개봉되었을때에도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만 극장에서보고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은 그냥 비디오로 출시되면 볼 생각이었지만 구피가 해리포터의 팬이었기에 어쩔수없이 극장에서 봤습니다. 2003년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은 예정대로 개봉되었으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개봉시기가 늦춰졌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저는 결국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피하기위해 개봉시기를 늦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하게도 [해리포터]는 자꾸 [반지의 제왕]과 연관을 짓게 됩니다. 이 두 영화는 환타지 소설을 영화화했으며, 1,2편의 개봉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 외엔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대도 말입니다. 그러나 제겐 이 두 영화는 뗄래야 뗄수없는 라이벌 관계처럼 보였으며 그래서 매번 영화를 보고나서 서로 비교하며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승자는 [반지의 제왕]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제 인생의 최고의 영화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해리포터]는 그저 평범한 시간 떼우기용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에 머물러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이미 [반지의 제왕]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전편격인 [호빗]이 영화화된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어찌되었건 [반지의 제왕]은 이미 시리즈의 막을 내려버렸습니다. 하지만 [해리포터]는 아직도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제외하고도 4편의 영화가 더 남았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제게는 최고의 영화이지만 이미 시리즈를 끝낸 [반지의 제왕]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아직 시리즈가 한참이나 남은 [해리포터]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 편이 지금으로썬 더욱 유익합니다. 결국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피해 개봉일정을 조정한 보람이 있습니다. 만약 같은 시기에 개봉되었다면 전 또다시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과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비교했을 것이며 당연히 승자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었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미 떠난 [반지의 제왕]보다는 앞으로 올 [해리포터]가 제겐 더욱 소중하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과의 비교보다는 순수하게 [해리포터]를 즐기기로 한겁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그리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경우는 너무 어린 관객들을 겨냥한탓에 성인관객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듯 보였고,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의 경우는 원작의 재미를 전혀 뛰어넘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남았었습니다. 하지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부터는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다분히 헐리우드적인 가족용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에서, 유명한 문학 작품인 [소공녀], [위대한 유산]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해석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최고 영화는 당연히 [위대한 유산]이지만, 그의 최근 연출작 [이 투 마마] 역시도 인상깊은 영화였습니다. 두명의 소년과 한명의 유부녀가 '천국의 입'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해변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이 영화는 어린 소년과 유부녀의 금지된 섹스를 그린 에로 영화이며, 암울한 멕시코의 정치 상황을 그린 사회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투 마마]는 여행을 통해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두명의 소년의 모습을 담은 성장 드라마입니다. 에로 영화에서 사회성 짙은 드라마로, 그리고 마지막엔 깊이있는 성장 드라마로 막을 내리는 [이 투 마마]는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성장 드마라보다도 파격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러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려낸 [해리포터]는 어떤 모습일까?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해리포터]는 영화를 보지않아도 쉽게 예상이 가능했지만, 알폰소 쿠아론의 [해리포터]는 전혀 예상이 불가능했습니다. 단지 영화 개봉전 공개되었던 짤막한 예고편과 주인공들의 각각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통해 해리(다니엘 래드클리프)는 물론이고, 헤르미온느(엠마 왓슨)와 론(루퍼트 그린트)까지도 외적으로 부쩍 성장했다는 사실만이 이 영화가 예전의 [해리포터]와는 확실하게 다른 영화일것이라 예상할 뿐입니다. 과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외적으로 성장한 해리를 내적으로도 성장시킬수 있을런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영화입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분명 해리를 성장시켰습니다. 이제 더이상 용감한 꼬마 영웅일 수 없었던 해리는 반항적인 소년으로 성장해 있었던 겁니다. 부모님의 욕을 하는 더즐리 가족을 혼쭐내주고는 과감하게 짐을 싸서 가출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항적인 해리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분명 대단한 변화입니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듣고 괴로워하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디멘터라는 존재앞에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해리의 모습은 고난과 두려움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던 영웅의 모습 그 자체에서, 두려움에 떨며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위해 몸부림치는 불안정한 소년의 모습으로 탈바꿈한겁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해리의 내적 변화를 위해 가장 먼저 취한 것은 바로 호그와트 마법학교 세트의 분위기입니다. 이전의 [해리포터]에서는 호그와트는 즐거움이 가득찬 밝고 활기찬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호그와트는 음울하고 왠지 공포스러운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비밀과 디멘터라는 두려움의 존재가 상존하는 곳이며, 더이상 해리는 호그와트에서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호그와트는 밝고 활기찬 곳에서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이전의 [해리포터]에서 왠지 음습한 분위기가 느껴졌던 해그리드(로비 콜트레인)의 오두막은 오히려 아름다운 자연 공간이 돋보이는 밝은 장소로 탈바꿈했다는 겁니다. 참 묘한 아이러니죠.
암튼 해리의 성장에 촛점이 맞춰진 이 영화는 그러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부쩍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이상 이 영화에서 어린 영웅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들 그의 이름조차 말하길 두려워하는 볼드모트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감한 영웅 해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모님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에 괴로워하고, 분노하며, 두려워하는 연약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겁니다.
모두들 더이상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해리를 연기하기엔 너무 커버렸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엔 해리가 어린 영웅에서 불안정한 소년으로 성장한 이상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성장이 해리를 연기라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 영웅의 모습을 가진 해리를 원한다면 당장 [해리포터와 불의 잔]부터 귀여운 외모를 가진 연기자로 교체해야겠지만 제가 읽어본 조엘 K.롤링의 원작 자체가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해리의 내적 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성장이 오히려 성장한 해리의 모습을 담아내기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그러한 해리의 성장의 첫걸음을 띄운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이유는 해리의 성장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블럭버스터의 본연의 임무인 영화적 재미는 많이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해리포터]는 너무 유아적이기는 했지만 온가족이 함께 앉아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블럭버스터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재미난 영화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따릅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해리의 성장을 잡아내기위해 오히려 영화적 재미를 어느정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립겁니다.
그러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결정은 [해리포터]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인 퀴디치 장면은 대폭 줄어들게 만들었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던 마법 수업 장면 역시 필요한 몇몇 장면만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생략되어버렸습니다.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과 디멘터를 둘러싼 해리의 모험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영화엔 모험따위는 없습니다. 증오와 공포의 존재를 앞에 두고 그것을 극복하는 해리의 내적 성장만 있을 뿐입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이었으며,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의 러닝타임은 2시간 40분이었습니다. 크리스 콜럼버스는 원작에 담겨진 방대한 재미들을 최대한 살려내지기위해 헐리우드 제작자들이 두려워하는 러닝타임을 대폭 늘리는 모험을 감행했었습니다. 하지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러닝타임은 고작 2시간이 조금 넘습니다. 원작은 이전의 [해리포터]보다 분량이 늘어났지만 영화는 오히려 이전의 [해리포터]보다 러닝타임이 줄어든 겁니다. 그것은 그만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원작의 소소한 재미를 거의 포기하고 해리의 성장에만 촛점을 맞춰 진행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것 저것 모두 담아내려 욕심을 부리다가 이도저도 아닌 지루한 영화가 되는 것보다 휠씬 나은 선택이지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썸머시즌을 겨냥한 블럭버스터임을 상기한다면 영화적 재미 역시 해리의 성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블럭버스터를 연출한 경험이 없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한계이겠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해리포터와 불의잔]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도니 브래스코], [모나리자 스마일]등을 연출한 명감독 마이크 뉴웰 감독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는다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해리는 첫사랑을 겪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꼬마 영웅으로 알고 있던 해리도 어느새 소년이 되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겪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로맨틱 코미디에 재능을 보여던 마이크 뉴웰 감독에 의해 얼마나 [해리포터]와 어울리게 연출될지가 관건입니다. 하지만 마이크 뉴웰 감독은 그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지닌 감독입니다. 게다가 마이크 뉴웰 감독은 알폰소 쿠아론에 의해서 성장의 변화에 성공한 [해리포터]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해리의 성장을 위해 영화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과연 마이크 뉴웰 감독이 만들어낸 [해리포터]는 또어떤 모습일지... 내년 여름을 다시한번 기대해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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