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그놈은 멋있었다] - 10대 소녀의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영화.

쭈니-1 2009. 12. 8. 16:57

 


 


감독 : 이환경
주연 : 송승헌, 정다빈
개봉 : 2004년 7월 23일
관람 : 2004년 7월 7일


[그놈은 멋있었다]는 알려진대로 귀여니라는 인터넷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것입니다. 제가 구세대라서 귀여니의 소설을 단 한편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인터넷 소설이 [그놈은 멋잇었다]에 이어 [늑대의 유혹]까지 연달아 영화화되어 한꺼번에 개봉 대기중이라니 굉장히 인기가 있긴 한가보군요. ^^;
솔직히 저는 [그놈은 멋있었다]보다는 [늑대의 유혹]이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송승헌, 정다빈보다는 강동원, 조한선이라는 배우의 조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물론 인기로 따지자면 미남 스타 송승헌과 [옥탑방 고양이]로 신세대 아이콘으로 떠오른 정다빈이 휠씬 강력하지만, 배우로써의 매력으로 따지자면 [그녀를 믿지마세요]에서 의외의 열연을 펼친 강동원과 송승헌보다는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송승헌보다는 휠씬 개성있는 외모를 가진 조한선이 휠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놈은 멋있었다]의 시사회에 덜컥 당첨되는 바람에 결국 [늑대의 유혹]보다 [그놈은 멋잇었다]를 먼저 보게되었습니다.
제가 [그놈은 멋있었다]에 기대한 것은 정확히 [동갑내기 과외하기]정도의 영화적 재미입니다. 신세대적인 톡톡 튀는 개성만점인 캐릭터와 대사들... 그리고 유쾌하게 시작하여 유쾌하게 마무리짓는 영화의 일관성... 저는 [그놈은 멋있었다]를 보며 '하하호호' 실컷 웃고 나오기를 바랬던 겁니다. 괜히 [내사랑 싸가지]처럼 초반에 웃겼다가 후반엔 어처구니없는 가슴 아픈 멜로 모드로 전환되는 끔찍함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놈은 멋있었다]는 분명 [동갑내기 과외하기]처럼 시작하더니만 마지막엔 [내사랑 싸가지]처럼 끝을 맺더군요. 그러나 [그놈은 멋있었다]가 [내사랑 싸가지]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순수한 10대 소녀의 사랑에 대한 순정 만화식 환상이 이 영화에 가득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1. 여자는 쌈짱을 좋아한다?

남자들은 간혹 어울리지도 않게 터프한척 합니다. 몸에도 좋지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멋지게 연기를 내품기위해 남몰래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근육을 키우기위해 피땀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남들보다 쎄게 보이기위해 일부러 건들거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설픈 터프가이들을 보면 속으로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전 애초에 터프하고는 담을 쌓고 그냥 생긴대로 삽니다. ^^) 그들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의 그러한 허세는 결국 여자들의 남자들에 대한 환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그놈은 멋있었다]를 보면 그러한 여자들의 쌈짱에 대한 환상이 처음부터 강하게 묻어납니다. 이 영화는 지은성(송승헌)이 지하도에서 건달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는 한 여학생을 멋지게 구해주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슬로우 모션까지 동원하며 최대한 지은성이라는 캐릭터의 터프함을 부각시키는 이 영화의 오프닝은 극장에 앉은 여성 관객들의 탄성 소리가 들릴 정도로 멋집니다. 이 영화는 그 이후에도 지은성의 싸움 장면을 여러차례 삽입함으로써 지은성의 터프함을 계속해서 관객에게 각인시킵니다.
이러한 남자 주인공의 터프함은 역시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한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김지훈(권상우)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영화내내 격투를 벌입니다. 그것도 최대한 멋있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그런면에서 [그놈은 멋잇었다]와 상당히 닮은 점이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근육질로 똘똘 뭉친 꽃미남 배우인 권상우와 송승헌을 캐스팅하여 쌈짱에 대한 여성들의 환상을 부채질했다는 점과, 똑같이 아마추어 10대 여성 인터넷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된 영화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 두 영화는 같은 태생을 지닌 영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영화의 남자 주인공 모두 쌈짱이기는 하지만 싸가지는 무지 없는 철부지라는 겁니다.
"여자들이여! 진정 쌈짱이면 싸가지는 없어도 된다는 말인가요?"
지금까지 인간성을 최대 덕목으로 알고 살아왔던 제 자신의 매력이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그놈은 멋있었다]를 보며 와르르 무너져버렸습니다. ^^;


 



2. 여자들은 아픈 과거가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이 영화의 지은성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내사랑 싸가지]의 남자 주인공들과 다른 것은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사에 자신있고 터프한 지은성이 간혹 반항적인 눈매로 이유모를 분노를 터트리고, 가슴아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릴때마다 한예원(정다빈)은 점점 지은성에게 매료되어갑니다. 처음엔 '뭐 이런게 다있어?'식의 표정으로 지은성을 바라봤던 한예원에게 지은성의 아픈 과거는 그녀를 사랑에 빠지게하는 묘약이며, 그의 철부지같은 싸가지조차 매력적으로 보이게하는 콩깍지입니다. 한예원이라는 캐릭터가 귀여니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러한 남자들의 감춰진 상처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묘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지 뻔히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이 영화는 그러한 지은성의 아픈 과거를 이용하여 영화를 갑작스런 슬픈 멜로로 만들으려 하지않습니다. 그러한 의도가 원작에 충실하다보니 그렇게 된것인지는 원작을 읽지 않은 저로써는 알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이 영화의 선택이 너무 좋았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지은성의 과거를 이용하여 영화를 슬프게 만들으려 했다면 아마 전 그 뻔뻔스러운 의도때문에 도저히 이 영화를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제가 [엽기적인 그녀]를 재미있게 봤으면서도 그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엽기적인 그녀]가 원작과는 달리 그녀(전지현)의 과거를 이용하여 가증스럽게 슬픈 멜로로 영화를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앞뒤 연관성도 없이 '과거때문에'라며 편한 방법으로 관객의 눈물을 빼앗으려하는 그러한 불순한 의도를 저는 싫어합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은성의 과거는 한예원에게 사랑이라는 콩깍지를 씌워주는 역할만할뿐 영화의 라스트엔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여자들이여! 과거는 과거일뿐 현재, 또는 미래에 영향을 끼칠수 없습니다. 그 남자의 과거에 나름대로의 환상을 만드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과거가 현재를 혹은 미래를 지배하는 남자들은 조심하세요. 그런 못난 남자에겐 아름다운 사랑따위는 없습니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지은성의 과거의 상처에 집착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은성이라는 캐릭터가 못난 남자가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합니다. 탁월한 선택이죠.


 



3. 여자들은 슬픈 사랑을 좋아한다?

솔직히 저도 사춘기때엔 슬픈 사랑을 동경했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운명적이면서 죽음으로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그런 슬픈 사랑을 말입니다. 나이가 들며 슬픈 사랑보다는 유쾌한 사랑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사랑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10대 소녀에겐 아직은 슬픈 사랑이 더욱 매력적인가 봅니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유쾌하게 시작하여 10대의 톡톡 튀는 사랑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다가 갑작스럽게 가슴 아픈 사랑으로 영화의 후반부를 전개시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기전에 가장 경계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일관성없는 영화의 진행입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처럼 기왕에 유쾌하게 시작한 영화, 유쾌하게 끝내면 영화를 보는내내 실컷 웃으며 즐길텐데... 꼭 마지막엔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하겠다며 어슬픈 멜로로 변신하여 초반부의 유쾌한 웃음마저도 퇴색시키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내사랑 싸가지]가 그런 만행을 저지른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도대체 강하영(하지원)과 안형준(김재원)의 가슴아픈 사랑이 영화에 어울리기나 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놈은 멋있었다] 역시 그러한 어슬픈 멜로로 영화의 후반부를 채워나갑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놈은 멋있었다]는 [내사랑 싸가지]보다는 어슬프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에는 10대 소녀의 슬픈 사랑에 대한 순수한 동경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첫눈오는 날 만나기로한 약속때문에 수능시험을 박차고 일어서는 한예원의 모습은 여지없이 수능시험의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고3 여학생이 그 스트레스를 멋진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보상받으려는 순수한 상상이 느껴집니다. 마치 마지막 장면의 그 동화같은 배경처럼 그러한 만남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도 이루고 싶어하는 10대 소녀의 순수한 환상이기에 가증스럽기 보다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여자들이여! 슬픈 사랑보다 가치있는 사랑이 행복한 사랑이랍니다. 슬픈 사랑은 상상만 하세요. 그리고 현실에선 행복한 사랑을 즐기세요."
이 영화의 슬픈 사랑은 10대 소녀의 순수한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오히려 이 영화가 갑작스럽게 슬픈 멜로로 변신하는 것이 그토록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답니다.


 



이 영화는 솔직히 제가 싫어하는 류의 영화입니다. 초반엔 정신없이 웃기다가 마지막엔 갑작스럽게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정말 가증스럽죠. 게다가 송승헌은 외모에 비해서 연기력이 그 뒤를 쫓아가지 못하고, 정다빈은 초반엔 그녀 특유의 재치로 관객을 실컷 웃겼지만 마지막에 멜로 모드로 전환될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만을 남겼습니다. 젊은 조연 연기자들도 오히려 어색한 연기로 영화의 진행을 방해하며, 정준하, 박노식, 박윤배등 카메오들도 너무 튀는 바람에 영화를 너무 가벼운 코미디로 전락시켜 후반부의 멜로를 더욱 어색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럼에도불구하고 흐뭇햇던 것은 마치 10대 소녀의 사랑에 대한 환상이 가득 담긴 일기장을 들춰보는 것만 같은 풋풋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도 어린 시절 저런 사랑을 꿈꾸었기에 이 영화가 귀여니라는 어린 인터넷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모든 어색함이 덮여졌습니다. 만약 전문 시나리오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라면 아마도 절대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없었겠죠.
"하지만 여성들이여! 쌈짱에 보다는 마음씨가 착한 남자를... 과거의 상처로 우수에 찬 눈빛을 간직한 남자보다는 티끌없는 행복함으로 가득한 맑은 눈빛을 가진 남자를... 슬픈 사랑보다는 행복한 사랑을 찾으세요. 사랑에 대한 환상과 현실에서의 사랑은 다릅니다. 행복하고 싶으다면 환상은 환상으로 끝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