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용기
주연 : 김유미, 임은경, 심형탁, 옥지영, 천호진
개봉 : 2004년 7월 30일
관람 : 2004년 7월 26일
언제부터인지 여름시즌이 되면 우리 영화는 공포 영화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와 맞섭니다. 작년엔 [장화, 홍련]과 [여고괴담 3 : 여우계단]이 쟁쟁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속에서 당당하게 좋은 흥행 성적을 올리더니, 올해는 [페이스]를 시작으로 [령], [거미숲], [인형사], [분신사바] 등 작년보다 휠씬 풍성한 공포 영화들이 관객들을 유혹합니다. 이렇듯 양적으로 풍성해진 공포 영화들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유혹합니다. 이미 실패작 판정을 받은 [페이스]와 [령], 그리고 공포 영화 전문 감독인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는 익숙한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 공포 영화입니다. [거미숲]은 스릴러의 형식을 빌린 공포 영화이며, [시실리 2km]와 [귀신이 산다]는 공포와 코미디를 혼합한 퓨전 장르의 공포 영화입니다. 일본과 홍콩 그리고 우리나라의 단편 공포 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공포 영화 [쓰리 몬스터]도 올 여름에 개봉될 예정이니 공포 영화의 팬이라면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어진 셈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제 눈에 띄는 것은 색다른 소재의 공포 영화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씻을 수 없는 상처인 베트남전을 공포 영화의 소재로 활용한 [알 포인트]와 예쁜 인형을 무시무시한 공포의 존재로 둔갑시킨 [인형사]는 분명 새로운 소재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귀신이라는 존재에만 얽매여 있던 공포 영화들의 소재의 폭을 다양화시키므로써 [알 포인트]와 [인형사]는 흥행 성공의 여부에 따라 우리나라의 공포 영화 수준을 한단계 높인 작품으로 평가받을 기회를 움켜잡은 겁니다.
저는 그 중에서 [인형사]의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겁이 많아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우리 공포 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영화로 평가받을지도 모를 [인형사]의 시사회를 결코 뿌리칠 수는 없었습니다.
[인형사]는 정말 특이한 공포 영화입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인형사]는 무서웠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뇨'라고 대답할 겁니다. 공포 영화라면 TV에서 해주는 주말의 영화에서조차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반쯤 가린채 보는 제게 [인형사]는 영화의 눈한번 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본 첫번째 공포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인형사]가 재미없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공포 영화가 무섭지 않다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전 분명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인형사]는 다른 공포 영화보다는 무섭지 않지만 화면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닌 영화입니다. 그 매력의 정체는 아름다움이며, 슬픔입니다. 공포 영화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매력이죠. 하지만 [인형사]는 그러한 매력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로하여금 눈을 가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영화의 단 한장면 조차도 놓치기 싫게끔 만든 요인입니다.
1. 사람보다 아름다운 인형들의 향연.
[인형사]는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당당한 매력의 김유미와 인형보다 더 인형같은 신비한 매력을 지닌 임은경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속에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인형들이 아름답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부터가 그러합니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들은 관객과의 기선제압을 위해 영화의 오프닝씬부터 무서운 장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포 영화들은 곧바로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급반전시켜 관객들을 안심시킨후 서서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다시 클라이막스의 공포를 위해 관객들을 올가미속에 몰아넣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공포 영화의 방식이죠.
하지만 [인형사]는 처음부터 자신을 창조해낸 주인을 사랑한 인형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왠지 공포 영화의 오프닝씬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영화의 오프닝씬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공포를 맞이할 준비를 해둔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합니다. 그 이후에도 영화는 인형이라는 아름다운 피조물들을 이용하여 공포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화면들을 준비해둡니다. 비록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어느정도 알고 간 관객들에겐 그 아름다움조차 공포로 느껴졌을테지만 영화를 보며 단 한번이라도 '저 인형 예쁘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분명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공포 영화에서의 아름다움이라... 정용기 감독은 신인 감독으로는 드물게 대담한 도전을 성공시킨 셈입니다.
2. 공포로 돌변하는 아름다움의 양면성.
하지만 이 영화는 공포 영화입니다. 만약 아름다움만을 관객에게 전해주고 싶었다면 차라리 인형를 소재로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초자연적인 멜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멜로 영화가 아닙니다. 관객들에게 무서움이라는 쾌감을 안겨줘야하는 공포 영화인 겁니다.
이쯤에서 정용기 감독은 인형의 아름다움을 공포로 돌변시킵니다. 외딴 숲속의 작은 인형 미술관에 초대된 다섯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처절한 모습으로 죽음을 당하며 미술관의 인형들은 아름다움의 존재가 아닌 인간을 위협하는 공포의 존재로 돌변합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영하의 끔찍한 죽음에서부터 시작한 이 영화의 공포 분위기는 고풍스러운 자태를 자랑하던 미술관과 기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던 인형들의 모습이 갑작스럽게 무시무시한 존재로 느껴지게 합니다. 사람과 너무나도 닮은 인형. 정용기 감독은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람을 닮은 피조물들을 공포의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꽤 효과적으로 아름다움을 공포의 순간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른 공포 영화들보다 공포의 강도가 약해지는 약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다른 공포 영화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 분위기로 관객들을 몰아넣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시작하여 공포로 전환하려니 자연스럽게 관객이 느끼는 공포는 그 강도가 약해져 관객에게 전달되는 겁니다. 공포 영화의 매니아적인 관객이라면 초반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약해진 공포가 이 영화의 약점이 될수도 있었겠지만, 저처럼 겁이 많은 관객에겐 아름다움과 공포라는 상반된 감정을 하나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행운을 잡음과 동시에 약해진 공포덕분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영화를 보는 수고를 줄일 수도 있었으니 오히려 최대 강점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3. 잊고 있었던 가슴속 깊은 곳의 죄책감을 후벼파는 슬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링]의 TV에서 기어나오던 귀신씬과 [여고괴담]의 점프컷을 응용한 최고로 무서웠던 바로 그 장면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자신을 버린 주인을 용서할 수 밖에 없는 분노에 찬 인형의 회한에 찬 눈물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제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제 절친한 친구가 되어주던 수많은 장난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땐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것들인데 성장하면서 그 어느순간에 기억에서 지워지고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그 장난감들도 제게서 버림을 받고 슬퍼하며 분노했을까요? 물론 말도 안된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조용히 사라져갔던 그 수많은 제 장난감들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인형사]가 노린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김으로써 우리가 버렸고, 잊어버렸던 그 존재들에 대한 죄책감을 슬픔이라는 감정에 담아내고자 했는지도...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려진 존재의 슬픔.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진 것에 대한 슬픔. 이 영화가 그토록 슬픔을 이야기하는 동안 관객들은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영화의 슬픔에 동참하고 맙니다.
정용기 감독은 인형이라는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아름다움과 공포, 그리고 슬픔이라는 세가지 감정을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4. 그러나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들.
그러나 그러한 정용기 감독이라 할지라도 그가 풀어내지 못한 숙제들은 아직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바로 캐릭터들의 비현실성입니다. 미술관에 초대된 5명의 손님들을 보면 해미(김유미)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비정상적으로 보입니다. 너무 쾌활한 여고생 선영과 사진작가 정기,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너무 어두운 소설가 영하와 뭔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직업모델 태승(심형탁)까지... 선영과 정기는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버 연기로 영화의 분위기를 깨는 과오를 저지릅니다. 그들의 오버 연기는 이 영화의 아름다움과 공포, 그리고 슬픔, 그 어느것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영하는 뭔가 가슴 아픈 과거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이다가 그 과거의 상처가 채 드러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영하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보였던 관객들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캐릭터를 구축했다면 좀 더 그 캐릭터에게 애착을 갖고 관객에게 그 캐릭터를 이해할 시간을 주던가, 그렇지않으려면 아예 평범한 캐릭터를 만들어 그 캐릭터를 따로 이해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영화가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캐릭터마저 비현실적이 되어버린다면 관객들은 영화에 감정이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정용기 감독은 알아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아쉬운 것은 사건의 비밀이 풀어지는 장면입니다. 뭔가 큰 비밀을 감추고 있는듯한 관장(천호진)과 인형 작가 재원(옥지영). 미술관에 초대된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고 이제 관객들은 주인공인 해미와 함께 이 미술관에 숨겨진 비밀들을 캐야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비밀을 캐는 쾌감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비밀들을 재원이 술술 털어놓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 영화가 마지막 반전을 중요시하는 스릴러 영화가 아닐지라도 이런 식으로 관객의 추리력을 얍잡아 봐서는 안됩니다. 분명 이런 식으로 영화의 비밀들을 털어놓는다면 손쉽게 관객들을 이해시킬 수도 있지만 그러한 손쉬운 방법은 관객의 재미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완벽한 공포 영화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꽤 독창적인 공포 영화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반의 아름다움과 공포로의 전환, 그리고 슬픔이라는 감정의 적극적인 개입까지... 이 상반된 세가지 감정의 묘한 공존만으로도 이 영화는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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